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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Jan 13. 2020

'등친막친' 결성의 날.

등산으로 친해지고 막걸리로 더 친해지고




등산을 했다.

원래는 그와 그의 절친인 규암씨의 금오산 행에 낄 계획이었다. 며칠 전 그의 동아리 친구와 연락이 닿았는데, 마침 주말에 남자친구랑 둘이 금오산에 갈 계획이란다. 그래서 그냥 다섯명이서 다 같이 가기로.


일요일 이른 여섯 시, 생각보다 좋은 컨디션으로 일어난 나는 콩맨과 함께 동대구복합터미널로 향했다. 역사 안의 이삭토스트를 사서 부산에서 버스를 타고 온 규암씨를 만나 동대구역으로. 카페에서 블루베리요거트스무디만 마신다는 남자에게 우리가 미리 편의점에서 사둔 덴마크드링킹요거트를 쥐어주며 기차에 오르기 전 토스트를 나누어 먹었다.


기차 안에서 기절한 듯 잠이 든 지 30분, 구미역에 도착했고 그 앞에서 우릴 기다리던 태관 & 설 커플

(이하 태설)을 만났다. 다섯 명의 묘한 조합. 콩맨의 절친인 규암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그러나 서로 처음 만난 사람들. 참 나는 이 사람들을 두 번째 보는 거였다. 규암씨는 지난 앞장에서 주차 앞장이로 활약해주었었고, 태설은 전전 앞장에 놀러 와서 인사를 나누었었다. 규암씨와 태설은 잘 아는 듯하지만 알고보면 초면인 사이.



9시. 구미역 앞에서 완전체



태관친구 차를 타고 9킬로여를 달려 산행의 들머리인 금오랜드에 도착했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린 후 올려본 하늘은 맑고 산은 깎아지른 듯 험준하면서도 멋있어 보였고, 우리는 약간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금오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굉장히 잘 닦여져 있던 등산로. 초입에 성문이 하나 나왔는데, 워낙 흘림체라 다들 못 읽은 성문의 현판엔 '大惠門(대혜 문)'이라 적혀있었다. 왜적을 막아 낼 수 있었으니 은혜를 입었다 생각해서 붙인 건지 '크게 은혜를 입은 문'이라는 뜻의.



구미 시내 뷰



완만한 오르막길을 1킬로여 걷다가 대혜폭포를 마주했다. 떨어지는 물이 튀긴 자리가 모두 얼어붙어 장관을 이루던. 그런데 금오산은 아이들이 많이 오르기에 신기했다. 이 동네는 등산 조기교육을 시키나 하면서. 더 신기했던 건 슬리퍼를 신고 등산을 하는 어린이를 두 명이나 본 것. 위험해 보였는데 등산의 달인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겨울이라 주위가 얼어버린 폭포



커플 사이에 낀 규암씨는 가장 먼저 오르고 제일 먼저 내려갔다. 하산할 때 "날쌘돌이씨는 벌써 가고 안 보이네." 했더니 바로 내 앞에 있었다. 있는 사람 투명인간 만든 거 나야 나ㅋㅋㅋㅋ 우릴 뒤따라오던 태설이 보이지 않을 땐 설 친구가 쓰고 온 모자의 방울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 일명 암호 이즈 솔방울. "솔방울 온다. 이게 가자"


정상을 단 50m 남겨두고서, 남해 보리암을 떠올리게 하는 약사암에 도착했다. 구름 위에 떠 있는 절. 그곳에서 해우소도 들리고 절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스위트아메리카노도 마시고 그리고 규암씨가 기다리고 있을 정상으로 : )




바위 사이 있는 절이 남해 보리암을 닮았다.


태설 커플 그리고 솔방울ㅋㅋㅋㅋ



정상에 당도하니 지독한 칼바람이 우리를 맞이했다. 상상 이상으로 춥고 바람이 매서웠다. 사진은 거의 찍는 둥 마는 둥 하고, 바람을 피해 바위 뒤에서 바나나와 초코팝콘, 그리고 대망의 하이라이트 맥심커피를 마셨다. 평소 믹스커피를 전혀 먹지 않는 나인데 해발 976m 고도 정상 위에서 먹는 그 맛은 어찌나 좋던지. 오늘의 음식들이 생각나서라도 또 산을 오를 것 같다.




해발 976m 금오산 정상


태관친구 물이 너무 많아요..




기념으로 남길 단체사진을 몇 컷 찍은 후, 드디어 하산길.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도 훨씬 더 길고 험난했다. "이 길을 우리가 올라왔다고? 대견해. 칭찬해 우리." 셀프칭찬을 하면서 3.3km를 내려왔고, 금오랜드 주차장에 도착하고야 마침내 오늘의 산행이 종료되었다.




저 멀리 보이는게 우리가 오른 봉우리라니.



이제 우리를 기다리는 건 막걸리와 파전. 설 친구가 미리 찾아온 '선녀와 나무꾼' 대신 어느 식당 밖에 쓰여진 닭도리탕 네 글자에 이끌려 '산 따라 물 따라'에 들어섰다. 해물치즈파전으로 에피타이저를, 닭도리탕으로 본격 먹방을. 기대가 컸던 금오산막걸리도 함께. 금오산막걸리는 어쩐지 금오산을 닮아 청량감이 크고 탄산이 셀 것 같다는 내 예상을 그대로 적중했다.


술을 못 마시는 태관 친구는 사이다를 술처럼 받고 나머지 넷은 금오산막걸리 세병과 은자골막걸리 한 병, 조껍데기술 한 주전자를 기울이며 오늘 등산의 회포를 풀었다. 이로서 '등친막친(등산으로 친해지고 막걸리로 더 친해진 사이)' 또는 '선산후막(산 오르고 막걸리 마시기)' 결성!


이제 각자의 자리인 대구로, 김천으로, 부산으로, 서울로 돌아갈 시간. 우리의 대구행 기차나 규암씨의 부산행 버스가 한 시간 반 남짓 남아 그사이 스타벅스로 향했다. 여전히 기프티콘 부자라 본인이 쏜다는 콩맨. 블랙그레이즈드라떼(나) 해피치즈모카(콩맨) 시그니처 초콜릿(규암) 바닐라라떼(설) 화이트모카(태관)를 마시고_쓸데없이 좋은 기억력_등산의 마무리를 한 뒤 콩맨과 나는 구미역, 규암씨는 구미버스터미널로.


그동안 커플로, 단체로 등산을 꼭 해보고 싶었는데 오늘 이루었다. 비록 솔로인 규암씨가 홀로 였다는 게 아쉽지만(그래서 더 날쌘돌이였던 게 아닌가 싶다). 다음엔 우리가 김천으로 가서 황악산에 같이 오르기로. 등산과 막걸리와 사람들로 채운 일요일 참으로 알차디 알찼다.







에피타이저. Bon appetit!


닭도리탕의 맛은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오늘의 일등은 금오산막걸리. 이등이 은자골탁배기.


그리하여 결성된 등친막친


오늘 무려 3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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