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수면 위대장내시경을 받았다.
어제.
아침은 반찬 없이 누룽지 죽,
점심은 간 안 한 순두부를 먹고
간식으로는 밀크티 두 잔을 마셨으며
5시부터 금식에 들어갔다.
그리고 저녁 6시, 대망의 내시경 약 먹을 시간.
워낙 악명 높기로 유명한 놈이라
눈 질끈 감고 코 꽉 막고 처음 입에 가져다댔는데
'어...? 생각보다 괜찮은데?'.
사람들이 말하던 토할 것 같다거나
미끈거리는 점액질 느낌은 전혀 없었다.
레몬향이 강하게 나는 게토레이 맛이랄까.
약 4봉과 찬물을 섞어 500ml 한 통을 15분씩 나누어 마셔야 한다. 절반을 먹고 기다렸다가 15분 후에 나머지 절반을 다 마시는데 이때부터 마시기가 정말 고역스러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심상치 않다.
식도와 위 사이가 울렁거리기 시작하더니
배에서 부글부글 가스가 차올랐다.
토할 것 같은 기분에 소파에 실신하듯 앉아 있었다.
한 시간쯤 흐르자 천둥번개 치는 배는
'나 지금 당장 화장실 갈래'를 요구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변기와의 한 몸.
밑에서는 쉼 없이 물총을 쏴댔다.
19:17 1차
20:08 2차
21:53 3차
23:09 4차
잠은 자야 되는데, 신호 올까 봐 불안하고
자정 다 돼서 겨우 잠들었다.
그리고 새벽 4시. 한번 더 약을 먹어야 할 시간.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이땐 정말 먹고 싶지가 않다ㅠ_ㅠㅠㅠㅠㅠ
그러나 검사를 위해서는 마셔야만 한다(주먹 불끈)
또 눈 질끈 감고 코 꽉 잡은 채 500ml 한 통을 비우고, 물도 연거푸 마셨다. 내가 평소에 물 많이 마셔서(하루 2리터 이상 마시는 물순이) 그나마 넘기는 게 쉬운 거지 보통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먹은 지 30분 만에 신호가 왔다. 또 다시 시작된 물총 타임~
4:41 5차
5:23 6차
6:17 7차
6:42 8차
7:15 9차
7:45 10차
내시경 준비된 상태는 맑은 노란 상태라는데 마지막까지 탁한 노란빛을 띄어서 이대로 검사못받는건 아닌지 걱정하며 병원으로 갔다.
설명했더니 괜찮다고 했다.
바지와 속옷도 벗고 병원에서 주는 남사스러운 바지로 갈아입고 나와 팔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이 안으로 수면마취제가 들어오겠지(긴장)
"김아라님~ 들어오세요"
불려 들어간 내시경실에서는 간호사 두 분이 계셨고
옆으로 누우라더니 빠른 속도로 입에 튜브를 물리고 몸을 고정시켰다.
"금방 마취 들어갈 거예요."
이 말을 듣는 걸 마지막으로 순식간에 나는 기절했고 잠시 뒤 수면에서 깼다. 엉덩이 뒤에서 쑤시는 느낌이 났고 배가 콕콕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 대장내시경 안 끝난 거구나... 그러다 스르륵 다시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앞에 엄마가 있었다. 내가 하도 안 나와서 들어왔다고. 시간을 보니 한 시간이나 지나있었네? 체감은 5-10분이었는데. 헤롱헤롱 몸을 못 가눌 줄 알았던 예상과는 달리 맨 정신이다. 몸도 가뿐하고. 그래서 간호사분들이 일어나라 하기 전에 먼저 일어나 환복을 하고 걸어 나왔다.
로비에서 잠시 기다리다가 진료실로 들어가 원장님을 뵈었다. 진단 결과 얘기 듣는데 심장이 막 방망이질 해댔다. "검사를 해보니까요..."
위염 증세만 약간 있고요
장은 아주 깨끗하네요 문제없습니다^^
"하..!"
그동안 걱정으로 설친 나날들과 혹시 대장암은 아닐까, 선종이 발견돼서 6개월마다 추적검사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불안에 떨었던 지난 새벽이 스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안전불감증인 나라서 그간 숱하게 오고 가는 변비 설사나 복부팽창감과 불쾌감, 복통 등의 여러 증세에도 무신경하다 요 근래 반복되는 심한 혈변에 그때부터 불안감에 내시경을 택한 건데 역시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다.
그저 예민한 장이라고, 변비와 설사를 오가니까
오늘 하루 정도는 자극적인 거 먹지 말라고 한다.
네에 슨생님ㅜ_ㅜ 오늘만 참고 내일부터
떡볶이랑 다 먹을거에오...헤헷
이로서 장트러블러의
첫 위&대장 내시경 검사기 끝-
bgm. In love in vain - Eddie Higins Tr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