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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Aug 19. 2020

우리가 자꾸 떠도는 건 어쩌면 도시 살아서 일거야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을 때


노지에서 자는 거에 익숙해질 줄야. 하루라도 안 씻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나인데.


어젯밤 공중화장실에서 양치와 세수를

마치고 나오며 그에게 한 말이었다.

주말에 함양의 설이네 하우스에서 보내고 돌아와

신혼집에 들어서면서 "역시 집이 최고야"가 아닌

"차박을 안 하니 정리할 게 없네." 했던 우리.

아닌 게 아니라 차박을 하고 나면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귀찮고 고된 일이 훨씬 많다.

펼쳤던 쉘터나 테이블, 의자를 씻고 닦고 말리는 일이라든지, 자잘하게는 사용했던 스토브와 그릇, 컵을 설거지하는 일, 되가져온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심지어 담아온 음식물쓰레기를 비워내는 일까지.

비라도 오는 날이면 빗물과 흙 범벅이 되어버린 쉘터와 방수매트를 씻고 말리는 일까지 추가된다.

낭만=고행이란 말은 동의어임이 틀림 없다.


남양주에 1박 2일 교육이 잡혀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재택교육으로 바뀌면서 대구에서 교육을 듣게 된 구남친. 덕분에 주말 아닌 평일에 신혼집에서 지내는 일도, 작업실에서의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도 처음 겪게 되었다. 잼 생산작업을 하니 불가마(33도)되는 여름의 작업실을 하루 겪더니 혀를 내두르며 내일은 카페에 간다던 그였다.


쉬는 시간, 뻗은 교육생ㅋㅋㅋㅋㅋ


우리는 눈빛만 보고도 "오늘 차박?" "ㅇㅇ콜"이라는 사인을 주고받았다. 나는 잼을 만들고 그는 교육을 듣는, 그렇게 흘러간 하루의 끝. 6시 땡 하자 말자 퇴근하고 우리는 찾아둔 대구 내 차박 추천지로 출발했다. 한 시간여 달려가서 도착한 달성노을공원. 아쉽게도 일몰은 간발의 차로 놓쳐버렸지만 곧 빛이 들어온 형형색색의 다리가 밋밋할 수도 있는 강가 모습을 예쁘게 수놓았다.


일몰이 예쁘다는 곳인데, 다음에 다시 오자!


오색 찬란한 다리.


초행이라 생각했는데 몇 해전 강정고령보에서 달성보까지 자전거종주길을 따라 나는 이미 와봤던 곳이었다. 어쨌든, 준비해온 페페로니 피자와 맥주 한 캔(나는 눈에 난 다래끼로 금주해야 해서), 씨유에 들러 떡볶이와 컵누들로 저녁을 먹었다. 크루즈 위에 있는 것만 같은 다리를 산책하고 전망대에 한 번 올라가 보는 걸로 오늘 일과 마무리. 신혼여행 때 배운 공중화장실에서 양치와 세수하기 스킬을 시전 했다.


샤워 생각이 간절했지만 또 막상 차가운 물에 얼굴과 목을 씻어내고 나니 개운했다. "발은?" "안 씻었는데. 차에서 물티슈로 닦지 뭐." 그럼 나도." 이런 대화를 하는 내가 문득 신기했다. 나라고 하면 엄마가 '유난스럽다' 표현할 정도로 매일매일 샤워하고, 씻은 후엔 절대 밖에 나가지 않으며, 입었던 옷도 다시 입는 일 없고, 또 밖에서 입은 옷으로 침대 위에 눕거나 앉는 일은 결코 없다. 그런 내가, 노지 차박이라니. 밖에서 샤워 대신 고양이 세수로 대신하다니. 그래서 그에게 그랬다.


"내가 이렇게 노지에서 자는 게 익숙해질 줄이야."

역시 넌 차박이 체질이라며 "아무래도 우리가 이렇게 자꾸 떠나는 건 도시에서 살아서 인 거 같다. 함양 가면 안 그러겠지?"라고 돌아온 그의 대답. 정말 도시에 살아서 조금이라도 더 자연에 가까이 가고자 산에 올라 등산을 하고, 강가나 계곡에 가 차박을 하는 건가 보다. 몸은 좀 고생하지만 기꺼이 할 각오가 늘 되어 있는, 사고커플(사서 고생하는) 상아부부 아니겠나.


잘보면 쓰레기봉투 대롱대롱


교육과 출근을 위해 다시 돌아온 이른 아침,

'역시 집이 최고'라든가 집 떠나면 고생.'

이라는 말은 우리 입에서 안 나온다. 대신

"이번 주말엔 어디 갈래?"라고 주고받는 우리.

하여간 사귈 때나, 결혼해서나 너무 잘 맞아서

큰일이다.








p.s.

그저 예쁘다고만 생각했던 달성보였다.

그런데 떠나려는 오늘 아침 7시,

119 구급대원들이 우리 차 옆으로 왔다.


이틀 전 투신한 두 분이 떠올라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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