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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Aug 18. 2020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머물러 본 함양, 살아볼 함양



결혼을 하고 처음 갖는 쓰담쓰담 모임날. 쓰담쓰담은 '쓰레기를 주워 담다 산을 쓰다 듬다.'라는 의미로 구남친 현남편이 만든 등산모임이다. 올해 1월에 시작해 한 달에 한 번 정도 서울, 부산, 대구, 김천, 영덕 각지에서 모여 함께 산행을 하고 있다.


예전부터 벼르던 지리산둘레길을 함께 걷기로 했다. 날짜는 8.15 광복절. 계곡 물놀이를 먼저 하고 다음날 둘레길 4코스(금계-동강)를 걷기로. 마침 함양에 멤버 설이의 친가댁이 있어 그 집에서 숙박을 하기로 하고 용추계곡에서 모두 모였다.


날이 좋아서, 더 설렌 함양으로 가는 길


가는 길에 만난 우두산(1,046m) 다음에 오르리


대구팀인 우리가 장을 보고, 부산팀이 게스트 수근커플을 픽업해오고, 서울김천팀이 좋은 자리를 맡았다. 출발 전날부터 설레서 잠 못 이루고... 심지어 나는 전날밤 미리 함양가서 우리 먼저 차박하면 안되느냐 했었지ㅋㅋㅋㅋㅋ


짐들을 나르거라
용추계곡.


계곡에 도착했는데 와... 이렇게 크고 긴 계곡 처음 봤다. 사람이 꽤 많았는데도 하나도 혼잡함 없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킬 수 있었다. 준비해 간 테이블과 파라솔, 캠핑체어들을 설치하고 물안에 들어갔다. 처음엔 낮은 수위부터,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폭포수 아래서 몸을 완전히 입수했다.




신혼여행 때 하지 못한 물놀이를 이제야, 게다가 잠영까지 할 수 있는 깊은 수위의 물이라 더 좋았다. 놀리듯 자꾸만 발을 스치는 손 크기만 한 물고기는 정말 잡고 싶었는데 맨손으로 잡기는 쉽지 않았고, 남자들이 다슬기만 한 주먹 건져 올렸다. 더 오래 놀고 싶었는데 얼음장 같은 물에 체온이 많이 떨어져서 그만 나왔다.


물놀이도 했겠다 이제 뭐할 시간? 컵라면 타임 :)))) 사온 육개장컵면에 피순대에 산대장과 내가 챙겨온 구스아일랜드 한 캔씩 먹고 보드게임 한 판 했다.


먹고 마시고 놀고
피순대와 맥주. 꾸르맛


이제 설이네 집으로. 상콤한 민트색 대문이 우릴 가장 먼저 반겼다. 나중에 들으니 태설커플이 직접 셀프로 페인팅한 거라고. 숙소 와서도 펭귄 얼음깨기 카탄 등의 보드게임 삼매경에 한참 빠져 있었다 후히


기분 좋아지는 민트대문.


창을 내어주오


파라솔 잘 챙겨왔다. 옆엔 문제의 그릴.


그러다가 수박반통 먹고, 해가 좀 뉘엿뉘엿 저물어갈 즈음 마당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산대장과 내가 대구에서 실어 간 애증의(...) 바베큐그릴에 고기를 굽고, 짠수가 싸온 어머니표 신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이고, 소쿠리 가득 모둠 야채를 씻어가지고 저녁을 먹었다. 자꾸 몰려드는 벌레와 길고양이들에 시골정취 느껴가며- 타임머신 타고 대학 시절 MT에 다시 온 것만 같았다.



수박 너모 마싯었...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있지



더 이상 들어갈 틈새 하나 없을 정도로 고기와 막걸리로 부른 배 두들기며 설거지팀(2명)과 치우는팀(2명), 쉬는팀(2명), 열외 1명(고기 구운 짠수친구)을 정하기로 했다. 이마저도 해적왕 보드 겜으로ㅎㅎㅎ

쉬는 팀은 게스트 수근커플이 되었고, 태설커플과 우리 부부의 대결이었는데 마지막 구멍 2개를 남겨놓고 박빙의 승부를 벌였다. 결과는 우리가 졌고, 그렇지만 내가 바라던 치우는 팀이 되었다.


씻고 나오니 다들 사라져있..."별 보러 빨리 나와." 전화를 받고 나가니 칠흑 같은 어둠에 빛나는 별로 수놓아져 있었다. 때마침 bgm담당 짠수가 튼 적재의 별 보러 가자 곡은 분위기에 딱 맞는 선곡이었다. 다들 한참을 넋 놓고 보다가 나중엔 매트까지 가져와서 길바닥에 누워서 감상했다. 여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쏟아지는 별 본 이 밤은 앞으로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다, 참말.



starry starry night


날이 밝고서 두 번째 날 아침.

수근커플은 다른 스케줄로 부산으로 떠나고 우리는 지리산둘레길 4코스의 시작점, 금계로 향했다. 햇빛은 뜨거웠지만 파란 하늘과 이따금 볼에 닿는 시원한 바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출발할 때의


의탄교 저 너머 지리산 능선



시작부터 나무데크 계단으로 시작되더니 산을 하나 올랐다. 둘레길이라는 이름 아무래도 잘못 지었다며, 쉬운지 알고 가벼웁게 왔다가 뒤통수 맞기 십상이다. 지쳐갈 때 쯔음, 서암정사에 도착했다. 일주문 대신 돌기둥이 맞이하고 작은 돌 터널을 지나 비로소 대웅전과 법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쁘장한 정원은 별도고. 서암정사는 '지리산에 펼쳐진 화엄의 세계'란 별칭이 말해주듯, 온 도량이 불교의 화엄세계를 상징하는 갖가지 마애불로 채워져 있었다. 그중 바윗굴 안에 자리한 석굴법당은 가장 신비롭고 웅장했다. 여기 좋다, 정말 좋다 중얼거리는 나에게 "네가 좋아할 줄 알았어. 그래서 데려왔지."라는 산대장 남편... 내 취향 잘 알고 둘 취향 비슷함은 이제 말해 뭐해. 반면 아예 안들어오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짠총무를 비롯 태설커플을 생각해 구경을 마치고 나갔다. 다시 둘레길 여정을 계속해봅시다.



굴법당 사진을 못찍는 건 아쉬웠다


나는 아침을 먹지 않아 배가 고팠고, 뒤늦게 찾아온 생리통으로 배가 아팠고, 여러모로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서 맨 뒤에서 산대장이 날 독려해가며 가고 있었다. 그러다 일어난 일이었다. 일순간 엄지손톱만 한 벌들이 나를 애워싸더니 턱과 어깨를 여러 방 쏘였다. 소리 지르는 나를 보고 뒤에서 "빨리 가!" 하며 손수건을 휘두르던 그에게도 예외란 없었다. 얼굴을 많이 쏘인 그ㅜㅜ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나마 말벌이 아니었는지 뽑아야 할 침도 보이지 않았고, 열 오름과 욱신거림만 있을 뿐 위독해지진 않았다. 천만다행이지.




계곡을 찾았고 우린 자리를 잡고 뒤늦은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오늘의 메뉴는 비빔면. 먼저 컵라면 두 개로 에피타이저를 하고 준비해온 찬물(벌에 쏘인 우리 얼굴과 몸에 뿌리느라 많이 소진됐지만)로 헹군 비빔면에 여수 개도막걸리를 한잔씩 했다. 부은 발을 계곡물에 담근 채, 천국이 따로 없다 :^>



둘레길에서 비빔면을 먹게 될줄은, 크


쓰담쓰담 전용 포즈 _/\_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중간에 자꾸 따라와선 배를 발라당 까보이던 시선강탈의 시고르자브종도 만나고, 정말 어떠한 영업이나 숙박하는 집이 아닌데 무료로 믹스커피를 제공하는 고마운 쉼터도 마주했고, 계곡물에 이미 한 번 빠진 짠총무가 흙길에 슬랩스틱 몸개그를 또 선보여줘서 웃음도 터지고.



옆에서 고구마줄기를 손질하며 여행자에게 믹스커피와 물을 제공하던.



가파른 오르막길과 뜨거운 아스팔트 길의 연속에, 가끔은 험난한 수풀 길도 지나는 하이킹이 쉽진 않았다. 6시간에 걸친 둘레길은 동강마을에 도착함으로써 끝이 났다. 혼자 지리산둘레길을 걷던 산대장이, 때론 친구나 때론 나와 둘이서 걷다가, 여러 명이서 오고 싶다던 바람을 이번에야 풀었다. 함께라서 생긴 에피소드도, 나눌 추억들도 더욱 찌인하게 생겼다.



지리산 둘레길 금계-동강 4코스 15킬로 완주


그리고 우리는 이번 여정으로 막연하게 생각한 함양살이에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일년 전 그를 따라 처음 함양에 놀러 왔을 때는 전혀 상상도 못했지. 우리가 이곳에 살 생각을 하게 될 줄이라고는. 대구로 돌아오기 전 함양집을 둘러보았다. 집 구성은 어떻게 할지, 필요한 가재도구는 무엇인지 구상하였고, 머지않은 미래의 함양 라이프를 떠올려보았다. 잘 준비하고 대구와 영덕에서 각자의 삶 갈무리해서 잘 떠나봅시다. 기다려지는 '스테이 인 함양-'




지리산 능선 앞 상아부부 •︠‧̮•︡






bgm. 보통날의 기적 - 스텔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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