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happy-happy life :]
잼머 일도 집안일도 많이 했던 토요일이 지나고
어김없이 자연 속으로 가는 쉼날이 찾아왔다.
내 마음속 0순위는 블로그에서 우연히 발견하고선
단숨에 반해버린 김천 수도산. 그러나 그는 코로나 2단계 격상 시기라 타지에 가서 쓰담쓰담 모임을 하는 건 조심스럽다 했다. 둘이서 가까운 비슬산 산행을 하든지, 아니면 우리가 다시 사귀게 되었던 군위에 가서 아미산을 오르든지, 그것도 아니면 제3의 지역을 가자며 여러 의견으로 분분하다가 일요일이 밝았다. 아홉 시가 훌쩍 넘어서야 눈 뜬 나로 인해
가깝지만 산행시간이 오래 걸리는 비슬산은 패스.
비가 온다 해서 김천행은 아예 마음 접고 있었는데
김천 사는 태관이가 실시간 맑은 날씨를 알려줬다.
그 순간 다시 잠자고 있던 수도산행의 욕구가 스멀스멀 일어났고.
졸랐노라, 설득했노라, 가기로했노라.
"우리 김천 갈 건데 수도산 같이 오를래?"
기다렸다는듯이 오케이하는 태가이.
10시 10분. 11:17 기차를 예매하고 준비 시작했다.
10시 50분. 준비를 마치고 집에서 출동
11시. 지하철을 탔다.
11시 14분. 동대구역에 하차한...다?
분명 8분 만에 간다고 생각했는데
무려 14분이 걸린다네?
하차하면 3분 만에 플랫폼까지 가야 한다.
뛸 수 있다고, 충분히 가능하다고 자신감 보이며
호기롭게 전속력으로 달렸지만 동대구역 광장 앞에다다라서 나는 포기를 선언했다.
(열차 출발까진 1분 남짓 남아있었다)
지하철 역사에서 기차역 승강장까지
한 600미터쯤 되고, 계단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어떻게 3분 만에 갈 수 있겠느냐고
애초에 승산 없는 게임이었다고 합리화해보지만
"할 수 있다며? 달리면 된다며?" 하며 돌아오는
그의 구박.......힝
어쨌든, 10%의 수수료를 주고 30분 후에 오는
다음 기차 예매를 다시 해야 했다.
오후 1시 반. 김천구미역에서
우리를 데리러 나온 태가이를 만났다.
정상에 올라 점심으로 먹을 김밥 세줄과 함께
간식으로 먹을 과자와 젤리를 사서 수도산으로 고고. 차로 40분 여를 달려가 만난 수도암.
수도산 중턱에 위치한 암자이자,
정상에 오르는 시작점이다.
수도암을 한 바퀴 둘러본 후 산행을 시작했다.
해발 1,317m의 수도산 정상까지는 2킬로 여.
이미 꽤 높은 위치에서 시작하기에
높은 위치에 비해 큰 힘이나 오랜 시간 안 들이고
산행할 수 있었다. 거의 다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때 보인 '정상 70m' 팻말. 700미터도 아니고 고작 70미터 남았다는 것에 놀라고, 산행한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벌써 다와간다는 것에 더 놀랐다.
이윽고 완전히 탁 트인 수도산 정상에 다다랐다.
사간 바르다김선생 김밥 3종과
태가이가 준비해온 아아, 레몬에이드와 같이
꿀맛 같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지난겨울에 금오산 정상에서 뜨거운 믹스커피 마시는 묘미를 태설커플이 알려주었는데, 여름 되니 얼음까지 텀블러 가득 담아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게 해주는 준비성 철저한 이 사람들ㅋㅋㅋㅋㅋ
그와 난 가방에 하나씩 짊어지고 온 캠핑의자를 조립해 앉았다. 디딤돌 위에 두고 앉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자리를 정리하고 막 일어나려는데,
부부로 보이는 아저씨 아줌마께서
"의자 어디 갔어요???" 하며 해체해서
등산가방 안에 들어간 의자를 신기해하셨고.
두분은 블랙야크 100대 명산 이미 다 완등 후
완주뱃지를 들고 100+명산을 오르시는 중이면서
우리 보고 멋있다고 연발하셨다.
저희 아직 100대명산 다 안오른 꼬맹이들인데여...
산에서 만나는 분들은 대개 4-60대 어른들인데,
'젊음'이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오며가며 우리에게 엄지척을 내미신다ㅋㅋㅋㅋㅋ감사합니다?
짧았던 등산이라 아쉬움에 단지봉(4.5km)까지
오르고 싶었지만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무리기에 하산을 결정했다. 걸으려던 인현왕후 길은 다음에 쓰담 멤버들과 함께 걷기로 했다.
"누나 오르실 때보다
거의 3배 속도인데요?"
그래요 내리막길이 가장 쉬웠어요
나는야 하산 왕ㅋㅋㅋㅋㅋㅋㅋ :')
키에 육박할 정도로 무성하게 자란 조릿대들을 지나고, 또 한참 내려오다가 좋아하는 자작나무숲을 마주했다.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고 해서
자작나무가 된. 순백의 몸통이 눈이 내려앉은 것 같기도 하고 백호를 연상하게 하기도 한다. 좋아해서 몇 해 전 kj산악회를 이용해 나 혼자 강원도 인제 자작나무숲에 가기도 했었다. 추억이 몽글몽글해지는 순간.
자작나무 숲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임도가 나왔다.
거의 마을로 다 내려왔다는 뜻. 산림청에서는 임도에 포장을 하면 흙 유실이 덜 되고 산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고 좋아하는데, 환경부에서는 생태계가 훼손된다고 반대한다는 산림맨의 설명을 들으며 치유의 숲까지 내려왔다. 이제 우리의 원점 회귀지인 수도암까지는 1km 남은. 하산은 다 했는데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로만 이루어진 1킬로. 좀 더 힘을 내보자 무브무브. 내려오면서 앞으로의 함양집 이야기도, 설이와 나의 비슷한 점 이야기를 했다. 설이는 태관이한테, 나는 콩맨한테 각자 거의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는 신기한 일도. 확실히 코드가 잘맞고 편한 두사람이여.
다 내려왔고,
약수물에 목을 축였고,
태가이 슬리퍼를 빌려 등산화랑 바꿔 신었고,
저녁을 먹고 대구로 돌아가기로 했다. 우리와 함께 비대면 쓰담모임(?) 중이던 서울 설이가 추천한 추어탕집으로. 술 취향 비슷한 그녀가 막걸리 무한 리필집이라고 특히 강조했다. 주린 배를 참아가며 40여 분간 달렸고. 들어선 추어탕집에서는 정갈한 반찬부터 이미 합격점. 뼈가 곱게 갈려 부드럽고, 들깨를 많이 넣어 걸쭉한 추어탕과 살얼음 띄어진 막걸리는 꿀 조합이었다. 역시 '믿먹설추(믿고 먹는 설이 추천)'.
우리는 다시 김천역에서 대구로. 다음에 쓰담멤버들이랑 와서 오늘 못 걸은 인현왕후 길도, 용추계곡에서의 물놀이도 하기로 했다.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다시 다 함께 마주할 수 있기를.
bgm.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 가을방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