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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Oct 05. 2020

새댁의 첫 명절 외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하는 것보다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좋겠어요



어제와 다른 오늘, 전과는 다른 명절
-며느리의 첫 명절 나기

긴 추석 연휴 5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동안 나에게 명절이라면
일 년 중 세 손가락에 꼽게 바쁜 잼머의 시간을
몇 주간 보내다가 명절 당일부터는
손목 보호대를 차고 오롯이 休休休 로 점철되는,
그런 시간인데 이번은 좀 다를 예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제는
누군가의 딸로서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며느리로

역할이 곱절로 늘어난 명절이기 때문에.
부산에 계시는 시어머니는 바쁘고 힘들 거 생각해서 당일에 오라 하셨고, 그래도 연휴가 시작되는 첫 날인 추석 전날에는 가기로 하고 잼머일을 오전 중에 모두 마무리했다.


양가 부모님께 드린 첫 용돈 •︠‧̮•︡






명절을 앞두고 양가 집안의 상.
-죽음 앞에서 그 누구도 초연해질 수는 없다.


일주일 전, 남편의 고모부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셨고. 우리는 장례식장에 갔다.
그리고 며칠 후 명절 연휴 첫날, 나의 이모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고 우리는 또다시 장례식장에 갔다.
하필 추석을 앞두고, 하필 명절 첫날에 돌아가신 두 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모할아버지 장례식장은 코로나 지정병원인 경대병원이었어서 오가며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분들을 많이 봤다. 거기다 입관식 날 코로나로 돌아가신 분이 안치된 곳에 바로 뒤따라 입관하시게 되어 소독하는데 시간이 소요되었다.
또 그 사이엔 좋아하던 선배가 잠들어 있는 묘원에 찾아갔다. 그러다보니 지난 며칠 죽음을 생각하던 시간이 많았다.



아빠가 페이스북에 올렸던 추모글.
선배를 만나러 가던 길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고 버겁지 않은 시댁에서의 시간

-부산에 가면

잼머 off, 며느리 모드 on
부산에 갔다. 준비한 소액의 용돈과, 엄마가 사돈께 드리는 송이버섯, 또 잼머인 내가 드리는 여름의 끝자락 복숭아잼&자두잼 그리고 파인애플식초 대대대용량, 그리고 아버지 옷 선물을(처음으로) 드렸다. 명절 앞두고 집안에 상을 치르고 나면 차례를 지내는 게 아니라는(?) 처음 들어보는 관례로 차례를 지내지 않고 우리끼리 밥을 해 먹고 드라이브 나들이를 떠났다. 청도 운문사를 갔다가 맛있는 순두부집을 갔다가 카페에 가는 코스로. 그곳에서 아버지 어머니와 함양집에 대한 구상을 나누었다.


송이버섯과 술파티. 소주는 아버지, 막걸리는 우리, 맥주는 어머니.
노브랜드 사과라임에이드인데 빠져버렸다.
무화과 러버.
너모 마싰었던 가지산 순두부집. (feat. 오그락지)





작업실 대청소와 세차

-셀프세차 입문한 날


미뤄둔 과제들을 수행했다. 우선 남편의 차 셀프 세차. 인생 첫 손세차 입문, 발들 이기와 동시에 은퇴하겠다며^^ 그리고 이어진 작업실 대청소. 택배용 스티로폼박스 보관 선반과 앞치마 행거 설치가 가장 큰 수확. 거의 남편이 다 하긴 했으나 하필 손가락이 아파서 퉁퉁 부었던 날, 손을 더 혹사시켰네 X'D 종일 노동으로 기진맥진한 저녁엔 서울 간 엄마를 빼고 우리집 남자들 세명과 아나고 회와 구이, 왕새우 회를 먹었다.


때 빼고 광낸 토닉이.
아나고 회랑 구이. 운전해야하는 나만 빼고 술 마시니 좋냐며(꿍시렁)





딸과 사위의 도리

-어쩌다 서울까지.


이모할아버지의 장례 3일, 발인하고 엄마는 서울에 또 바로 가셨다. 요양원에 계신 외할머니가 음식 섭취를 전혀 못하셔서 강동경희대병원 응급실로 모시러, 엄마의 강행군. 그리고 다음날엔 나와 남편이 합류하기로 했다. 겉으로의 이유는 외할머니 뵙고, 외삼촌이 나 주기로 한 자전거 받으러. 속 이유는 혼자 내려올 엄마를 보좌?해 드리기 위해. 올라갈 때는 엄마차에 부산 이모와 서울 외삼촌이 타고 같이 가는데 돌아올 때는 혼자이니 운전 부담도 크실 터, 우리가 함께 내려오기로. 토요일 아침 6시, 마스크를 꼭 낀 채 동대구터미널에서 동서울로 출발했다. 응급실 대기실에서 만난 할머니는 많이 여위셨고 전보다 더 기력이 쇠하셨다. 오래전 서울에서 같이 살 때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나 결혼할 때까지 꼭 건강하기로 했는데. 그때 약속은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반은 지켜주셨고 (치매에 못 알아보니) 반은 안지켜주신 사랑하는 우리 할모니. 얼마만인지 모르겠는 서울에서 우린 그저 딸과 사위-손주와 손주 사위로서의 역할과 임무를 하고 왔다.


서울로 가는 경부고속도로 위에서
천호대교 오랜만!
강동경희대병원. 반나절을 이곳에서.






그리고 자연으로 떠날 거야,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을 때


'나 이번 명절 연휴 5일 동안 영남알프스 5곳 오를 거야.'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한 건 하나도 못 이뤘다ㅠㅠ 워낙에 해야 할 일들이 많았으니까. 대신 마지막 날인 일요일 하루는 떠나기로 했다. 온전하게 자연 속으로. '가을'과 '억새'가 내가 바라는 것이었던 터라 억새를 볼 수 있는 정선 민둥산이나 광주 무등산을 갈까, 아니면 남해 바래길을 걸을까, 우리의 지리산 둘레길 트레킹을 할까 여러 후보지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지난밤 대구로 돌아와 했던 산책길에서 드림산악회 리플렛에서 발견하고 눈이 번쩍한 곳으로 최종 결정 땅땅. 낙동정맥 트레일 봉화 제2구간’인 분천역~승부역까지 12.1㎞길을 걷다 오기로 했다.

낙동정맥은 옛 산경표(山經表)에 의해 우리나라 산줄기를 ‘1 대간 1 정간 13 정맥’으로 구분하는 13정맥(正脈)중 하나로 태백산 줄기에 있는 구봉산(九峰山)에서 부산 다대포 몰운대(沒雲臺)에 이르는 산줄기를 말하며 ‘낙동정맥 트레일’(trail·산줄기나 산자락을 따라 조성하여 시점과 종점이 연결되지 않는 길)은 경북 봉화에서 청도까지 10개 시. 군의 특색 있는 자연과 테마를 연결한 총 594㎞의 자연친화적 숲길을 뜻한다.


2014년 구남친이 가이드해준 백두대간 칙칙폭폭 언상투어에서의, 그리고 V-train(협곡열차)를 타고 분천역에서의 막걸리 추억을 떠올릴 겸 우리는 다시 한번 V-train을 타고 분천역으로 가서 낙동정맥 트레일 길을 걸을 거다. 그곳에서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고 돌아와야지.


2014년 그때당시의 가이드, 남편의 메일ㅋㅋㅋㅋ



그러나. 철저한 계획돌이이자 좋은 건 하나도 포기 못하는 남편이 나 자는 사이에 또 행선지를 바꿔놨다. 그래서 떠난 '성주 가야산 선비산수길'. 그 가운데 1코스 성주호 둘레길 23.9km를 걷기로. 어쩌다 3일 연속 새벽 6시에 일어나 집을 나섰네. 언택트 성주호 둘레길 에피소드는 따로 올려야지.




이번 5일간의 추석 연휴는 [해야 할 일-해야 할 일-해야 할 일-해야 할 일-하고 싶은 일] 이렇게 보낸 느낌. 그래서 꽤 긴 연휴였음에도 아쉬움 가득하고 너무 순식간에 지나갔다. 브런치에 글 쓸 심적 여유도 없었으니 말 다했지. 그러니 다음주에 한글날을 끼어서 나의 생일주간 3일은 온전히 휴가를 보내기로. 원래는 혼자서 훌쩍 떠나려 했는데 물가에 내놓은 아이 느낌에 동행하겠다는 남편(어휴). 아무튼, '내일로 두 번째 이야기 : 백두대간 협곡 트레킹' 하게 될 다음주가 무척 설레고 기다려진다.






bgm. 무엇을 해야할까 - 멜로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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