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well-dying)에 대해 생각하다.
아름다운 죽음이라는 말처럼 모순적인 말이 있을까. 일명 웰다잉(well-dying). 웰빙이 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이라면 웰다잉은 반대로 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평안한 삶의 마무리. 삶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길이라 할 수 있는 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맞이'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
만약 내가 오랜 투병생활로 고통스럽거나 일상생활이 아예 불가능하게 되면, 무의미한 연명치료보다는 존엄한 죽음이 낫겠다는 생각은 어렴풋이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기왕이면 수목장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땅도 좁은 우리나라에서 굳이 묘지에 묻혀 묘지 부족에 일조할 필요는 없겠다 싶고. 또 대개 접근성 좋지 않은 곳에 후손들이 먼길 와야 하거나 벌초로 산소 관리하는 수고로움을 덜어주면 좋겠다 싶어기도.
건강한 삶을 살다가 떠날 때 누군가에겐 절실할 장기와 각막 기증을 오래전 신청해 두었다. 이십 대 중반쯤이었을 거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 누구에게도 말 안 했었는데 지금의 남편과 몇 년 전 재회 후 어쩌다 서로의 신분증에 붙어있는 기증 스티커를 보고 "엇, 너도..?" "너도!?" 했던 일이 일었다. 다행히 그와 결혼해서 망정이지 이해 못하는 사람을 남편으로 맞이했다면 길길이 반대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웰빙을 고민하게 하는 자기계발서를 주로 다루던 책모임에서 이번엔 죽음에 대한 책 「죽은자의 집 청소」를 읽게 되었다. 안 그래도 얼마 전 BBC코리아에서 저서 김완 작가의 인터뷰(나는 고독사 청소부입니다)를 본 후 책도 읽어보고 싶던 참이었다. 화요일 아침 열 시, 처음 순백색의 표지를 접하고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겨 갔다.
꽤 속독하는 편이다. 시험 지문을 빨리 읽어 언어영역 칠 때는 시간이 많이 남았고. 모임에서도 한 시간 묵독이 끝나고 나면 그때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진도가 3~50페이지는 더 나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차마 속독할 수가 없었다. 긴 호흡으로 곱씹어 읽어야만 했다. 그것이 사례로 나온 고인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인 것만 같았다. 그리고 소설이길 바랬다. 픽션보다 더 픽션같은 논픽션이라니.
한 시간 책 읽기를 마친 후 누구도 쉽게 말을 못 꺼냈다. 찰나의 침묵 끝에 책방 사장님이 가장 먼저 "그동안 우리가 읽었던 책은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까 고민하게 했다면, 이 책은 잘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네요. 그런데 결국 둘 다 일맥상통하는 일 같아요." 나의 말, "차라리 소설이라면 좋겠어요." 패브릭 사장님의 말, "차마 줄을 긋질 못했어요." 문구 사장님 왈, "우리 남편 잘 챙겨줘야겠어요(웃음)."
죽음을 소재로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무엇보다 '삶', '살아야 한다.'는 것 같았다. 모임이 끝날 무렵 표지를 덮는데 처음엔 보지 못한 제목 텍스트 옆 그림자가 선명하게 들어온다. '죽 은 자 의 집 청 소'. 아무나 할 수는 없지만 그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 특수청소부라는 분들이 하고 있다.
작가도 이 책을 읽다 보면 마음이 가벼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한다. 그렇지만 스스로 아직 죽음에 대한 무게를 덜어내지 못해 진중한 어조가 됐다고. 문예창작과를 졸업했고 원래는 고스트라이터로 오래 활동해왔다고 한다. 어쩐지 필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담담하지만 강인한. 쓰는 단어나 비유가 책을 많이 읽거나 글을 많이 쓴 사람임이 분명하다 싶더니.
이 책을 읽다 보니 알랭드보통의 「인생학교(The school of life)」 시리즈도 다시 읽고 싶고, 빅터 프랭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도 다시 펼쳐보고 싶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고 했으니. 살아가는 데 있어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의미를 찾는 것에 더 집중해야지.(*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원제도 'Man's Search for Meaning'(인간의 의미에 대한 탐구)이다.)
어제는 오랫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아는 동생을 만났다. 공기업을 발로 차고 나와 준비해 몇 년째 연거푸 고배만 마시다 우울증에 빠져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두겠다는 생각으로 최후의 시험을 쳤는데, 생각보다 잘 보았고 면접까지 무리 없이 본터라 합격은 따놓은 당상. 연락을 거의 안 하고 지내던 작년 사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해왔다. 견뎌주어 다행이고 합격해서 진심으로 기쁜데 다시 돌아온 미친 텐션이 감당 안되기도 하다ㅋ.ㅋㅋ
그리고 요 며칠 내내 생각나는 한사람. 몇달 전 사고로 돌아가신 선배. 결혼식 전 선배를 보러 갈까 했던 바로 그날에 돌아가셨고, 결혼 후 찾아뵙자 했는데 아직까지 못 가고 있었다. 오는 주말에는 꼭 가자고 남편에게 말했다. 마침 내일 우린 부산에 갈 일이 있고, 선배가 계신 곳을 알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계시단다. 다행이다.
어떤 내일이 와도
어제의 나에게 실망하지 않도록
오늘을 살아야지
bgm. 오늘의 나 - 킨츠크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