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월이 왔다.
난생처음의 합동 생파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태어난 계절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태어난 가을,
사계절 중에 하늘이 가장 높고 푸르고 맑을 때라.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달은 10월.
순우리말도 예쁜 '하늘연달'이라서 특히 좋다.
계절은 돌고 돌아 그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생일 주간이 되면 떠난다는 마음을 진즉에 먹고
10월 9일부터 12일까지 기차여행을 계획했다.
친오빠야 생일은 나와 며칠 차이 안 나는 8일.
우리랑 비슷하게 3일 간격으로 생일이 있다는
이모와 외삼촌은 늘 같이 묶어서 한 번에 생일파티를 하셨다는데,
엄마는 그 며칠간에 미역국도 두 번 끓이고
생일파티도 늘 두 번씩 해주셨다.
그러나 이번 생일은 내가 대구를 떠나 있을 예정.
그래서 엉겁결에 오빠와 합동 생일파티를 난생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전날 오빠와 내가 동네 투썸에 가서 Best.1이라는 스트로베리 초콜릿 케이크 한판을 주문했고,
다음날 영덕에서 근무를 마친 남편이 대구에 돌아올 무렵 데리러 가서 가족들이 먼저 가 있는 뉴욕 가재 식당으로 향했다. 그는 우리 결혼식 이후 수성못 처음 간다고 신기해했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도 아니고
부담될 수 있으니 그에겐 절대 생일인 거 알리지 말라는 오빠의 부탁으로 그에겐 그저
"내 생일날 내가 없다고 미리 가족들이 밥 먹재. 랍스터 사준대."
말했더니 그가 "근데 랍스터까지? 굳이?"라고 의아해했다.
나중에 식당에 들어서서 사실은 오늘 오빠야 생일이야 하고 결국 이실직고했지만.
그렇게 아빠 엄마 오빠 나 그리고 박서방은
남매의 합동 생파로 한글날 전야를 보냈다.
한창 랍스터 살을 발라내 먹는데 통유리창 너머로 야경과 함께 수성못에 분수쇼가 시작되는 것이 보였다.
"수성못 분수쇼 남자친구랑 보는 게 로망이었는데." 내 말에
"영영 못 이루게 되었네" 하는 그. 얄미워우씨.
엄마는 오빠와 나를 가졌을 때의 고충을 얘기했다.
우리 둘다 예정일을 한참 지나 나왔다고.
홍옥 한 박스를 다 먹어갈때쯤 오빠가 태어날 줄 알았는데, 나올 생각을 안해서 다시 또 한 박스를 사서 드셨다고 한다. 저희 둘 도합 스무 달 넘게 품어
배 아파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엄마
아 그리고 이벤트로 노마하우스에서 촬영했던
가족 사진 결과물이 나왔다.
얼른 한 장 픽해서 아크릴 인화 말씀드려야지.
세상엔 세 종류의 여자가 있다.
오랜만에 꽃길멤버 은정언니를 만났다. 한때는 내 작업실 한편에 공간을 쉐어해서 쓰던 사이. 원래라면 얼마 전 출산한 송이의 조리원에 같이 가기로 한 날인데 송이가 날짜를 착각하여 바로 퇴소하는 날이라서 만날 수가 없게 되었고 언니랑 둘이 밥이라도 먹기로 했다. 점심시간 무렵 아들 지한이를 데리고 작업실로 왔고, 결혼식 이후로 세 달 만에 보는 지한이는 훌쩍 커서 영유아에서 어린이가 되어있었다. 자주 가던 브런치 집에 가서 앉아서 몇 가지를 시켰고, 언니와 나의 주제는 늘 그렇듯 일과 사랑, 사랑과 일이었다.
"아라 너도 혹시 딩크야?"
라는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언니. 최근에 만난 친한 동생들이 다 딩크족이랬단다. 결혼을 한 동생 부부도, 결혼을 앞둔 동생커플도 모두. 이유는 아기를 좋아하지 않거나, 본인들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라고. 양가부모님께는 심지어 남자가 고자라고 한다는 거짓말까지 할거라고 했다는 웃픈 이야기.
"음.... 글쎄요 전 반반?"
최근 주변 지인들 가운데 임산부만 다섯 명,
그중 두 명은 얼마 전 출산을 했다.
아이 생각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경제적인 문제나,
미래 인류의 생존 문제 등 여러 가지로 주저하게 돼서 남편이랑 의논하기도 했다. 아직은 시기상조지만 언젠가는 내 혈육이 있었으면 하는 남편 말을 듣고 나도 반은 동의 반은 비동의한 상태.
그리고 언니가 말했다.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여자가 있대.
엄마가 될 여자, 이모가 될 여자, 그리고 전방 10미터 이내에 아기는 없다는 여자."
아, 너무 공감. 나는 일단 아기를 좋아하니 3번은 아니고. 주변에 조카가 이미 많고 앞으로는 더 많아질 테니 2번. 그리고 1번은 아직 미정.
마지막 내일로 이야기 : 생일마다 봉화가는 사람
일 년에 한 번인 내 생일이 다가온다.
한글날부터 생일날까지
3박 4일의 언택트 여행을 계획했다.
장소는 봉화에서 정선까지.
방법은 코로나로 조심스럽지만
올해가 마지막 기회인 내일로 기차여행으로.
원래 만 25세 이하까지 일주일간 프리패스로
기차를 이용할 수 있던 코레일 내일로가
올해 만 34세까지로 확대되었다.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닌가.
내일로 기차여행은 대학교 4학년 때 두 번,
여름에 강원도 일주일, 겨울에 전라도 일주일을
다녀왔었다.
구남친 현남편과도 한 번 다녀온 적 있었고.
내 국내여행에서 가장 많은 분량과 농도 진한 기억을 선사하는 건 내일로. 내일로로 한 기차여행의 지분이 가장 크다.
어쨌든, 그래서 한글날인 오늘 우리는 기차를 타고 봉화로 향하고 있다.
자가용으로 다니는 게 익숙해진 탓에
기차 안에서 줄곧 벗으면 안 되는 마스크가 꽤나 답답하고
또 체감 20 킬로 되는 배낭이 벌써부터 어깨를 짓누르지만.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백두대간 협곡 트레킹(분천역~승부역 구간)을 걷고
민둥산 억새밭 산행을 할 이번 여행.
작년 생일엔 무얼 했나 기억을 되짚어보니 그때도 봉화에 갔던 우리. 그때는 백두대간 수목원을 가고 외씨버선길 트레킹을 걸었었네. 봉화랑 인연인가 보다. 아무튼, 씩씩하게 잘 다녀와야지.
bgm. 흘러간다 - 이한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