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의 이야기꾼

by 오연




1.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레시피는 없다




나는 오랫동안 삶의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완성된 나'를 위한 완벽한 레시피가 주어질 거라 믿었다. 높은 점수를 얻으면, 학위를 따면,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마침내 나는 근사하고 완벽하게 완성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하나의 요리를 끝내고 나면 또 다른 낯선 재료가 주어졌고, 나는 영원히 레시피를 완성하지 못하는 초보 요리사 같은 기분에 시달렸야했다. 마치 미슐랭 별점을 받아야만 끝나는 요리 경연처럼, 점점 지쳐갔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존 듀이는 예술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완벽한 조화' 그 자체가 아니라, "혼란의 상태로부터 조화의 상태로 나아가는 그 과정" 에 있다고 말이다. 예술의 진짜 아름다움은 완성된 요리가 아니라, 서툰 솜씨로 재료를 다듬고, 간을 보며 쩔쩔매는 그 치열한 움직임 속에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삶의 목적도 마찬가지겠구나 싶다. '완성된 요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부엌에서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어가는 그 과정 자체가 아닐까.












2. 천재들의 부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리는 종종 천재들의 화려한 결과물에만 집중한다. 헤밍웨이의 간결한 문장, 플로베르의 완벽한 묘사. 하지만 그들의 부엌을 들여다보면, 그들이야말로 누구보다 지독하게 '과정'에 집착했던 요리사들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우리의 낭만적 환상을 여지없이 깨부수는, “성실한 배신자들”이었다. 그들에게 글쓰기는 신비로운 창조가 아니라, 매일 부엌에 출근해 재료를 다듬는 '훈련'이었다.


그런데 왜 그토록 '오늘 하루의 과정'이 중요했던 걸까? 그저 성실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까? 여기에는 우리의 뇌와 시간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놀라운 비밀이 숨어있다.


신경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에 따르면, 우리의 좌뇌에는 지칠 줄 모르는 '이야기꾼'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꾼은 온갖 경험의 파편들을 모아 '나'라는 일관된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나는 원래 내성적인 사람이야", "나는 숫자에 약해" 와 같은 이야기들과 같이 말이다. 문제는 이 이야기꾼이 때로 고집불통 거짓말쟁이가 된다는 거다.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야'라는 스토리를 한번 믿기 시작하면, 누군가에게 칭찬받았던 경험은 "그냥 예의상 한 말이겠지"라며 왜곡하고, 작은 실수에도 "역시 나는 안돼"라며 이야기의 근거로 삼아버린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미래란, 좌뇌의 이야기꾼이 지금 이 순간 써 내려가는 '다음 문장'에 불과하다. 헤밍웨이와 플로베르가 매일 글을 썼던 것은, 단순히 원고를 채우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는 어제 실패했지만, 오늘 다시 쓰는 작가다'라는 새로운 문장을, 그들 뇌 속의 이야기꾼에게 매일 들려주는 치열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3. 지도 없이 항해하는 지혜




"인간의 발달 과정이란 끊임없이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메모장에 적힌 이 문장처럼, 나는 이제 제 삶을 '완성'시켜야 할 과제가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레시피를 실험하는 즐거운 '과정'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과정이 늘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길을 잃고, 때로는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불안해지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글로 쓸 수 없는 실천적 지혜를 '메티스(Metis)'라고 불렀다고 한다. 노련한 뱃사공이 폭풍우를 헤쳐나가는 감각, 위대한 요리사가 레시피 없이도 손맛을 내는 노하우처럼, 반복과 실천을 통해서만 체득되는 직관적인 지혜를 말한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삶에는 정해진 지도나 완벽한 레시피가 없다. 매일의 경험 속에서 길을 잃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면서 우리만의 '메티스'를 터득해나갈 뿐이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씩 내디뎌 보며 길을 찾아가는 것. 어쩌면 이것이 과정을 살아내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4. 내가 가는 길의 잡초를 뽑고 가겠다는 자부심




지도 없는 항해가 불안할 때, 우리에게는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닻이 필요하다.


괴테 연구의 대가 전영애 교수님의 인터뷰를 보았다. 거기서 나는 그 닻에 관한 한마디를 발견했다. "당신의 자부심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내 자부심은 내가 만드는 거다. 아무도 만들어주지 않는다. 예를 들면, 내가 걸어가는 길에는 잡초가 없게 하겠다. 내가 옆으로 치워서 이 길은 반듯하게 하겠다. 그 정도의 선택이다." 이 말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과정의 가치란, 바로 이 '정도'의 선택을 매일 반복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오늘 내 길 위의 잡초 하나를 뽑아내는 작은 자부심. 그것이야말로 흔들리는 과정 속에서 나를 지탱해 줄 가장 단단한 닻인 것이다.












5. 당신의 하루는 그 자체로 하나의 레시피다




존 듀이는 일상과 예술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장인이 나무를 깎고, 운동선수가 몸을 단련하는 그 모든 과정이 혼란으로부터 조화로 나아가려는 '예술적 경험'이라고 보았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서툰 솜씨로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그 모든 평범한 순간들이야말로, '나의 삶'이라는 가장 위대한 레시피를 만들어가는 성스러운 과정인 것이다.


때로는 그 과정이 버거워 겁쟁이가 되고 거짓말쟁이가 될지라도, 그 하루를 살아남았다면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당신의 레시피에 소중한 한 줄을 더한 것이다. 우리의 삶은 완벽한 코스 요리가 아니라, 매일의 순간들이 더해져 만들어지는, 단 하나뿐인 거친 질감의 집밥과 같다.





마무리: 완벽한 레시피는 없다, 계속되는 요리가 있을 뿐




우리는 완벽한 레시피를 찾아 헤매는 미식가가 아니다. 삶이라는 주방에서, 때로는 서툴게, 때로는 자신감 넘치게,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어가는 셰프에 가깝다. 완벽한 마지막 요리는 없다. 주방의 불이 꺼질 때까지, 우리의 요리, 우리의 과정은 계속될 뿐이다. 그러니 부디, 결과에 대한 불안은 잠시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의 재료를 온전히 즐기기를.



★ 생각의 도구상자: 어쩌면 당신의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떠들던 목소리의 정체를 조금은 알게 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목소리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꼭 진실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놀라운 자유를 선물합니다.


이 생각의 도구를 당신의 일상으로 가져와보는 건 어떨까요? 당신의 뇌 속 이야기꾼이 자주 들려주는, 당신에 대한 부정적인 스토리는 무엇인가요? (예: "나는 늘 시작만 하고 끝을 못 내.") 오늘 하루, 그 스토리가 거짓말이라는 증거를 딱 하나만 찾아보는 겁니다. (예: '그래도 오늘 이 글은 끝까지 읽었잖아?')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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