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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터치 우주 Sep 18. 2022

내가 수원사람이라고?

마음터치 우주 테이션  

"내가 수원사람이라고?"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남편의 직장에 맞춰 다소 급하게 아파트를 구해야 했다. 그렇게 살게 된 터전이 수원이었다. 살다 보면 계획에 없던 많은 것들이 내 인생에 일어나곤 했지만, 아무 연고도 없던 수원이라는 곳에 내가 살게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대학원까지 수학을 전공한 내가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것처럼. 

마음터치 우주작가 그림에세이

수원에 살기로 결정이 된 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 친구가 나를 보러 수원으로 오기로 했다. "난 아무거나 좋아. 어디 갈지 수원 사람이 정해."라는 말에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아, 내가 수원 사람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남편의 직장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그대로 따랐지만,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수원이라는 곳에 살고 싶지 않았고, 피하고 싶기도 했다. 수원에 살고 있는 가족이나 지인이 없었을뿐더러, 수원에 대한 안 좋은 인식마저 있던 상태였다. 이유는 수원 화성 연쇄 살인 사건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 들었던 충격적인 뉴스들은 어른들이 된 후 경험하는 것들보다 더 강력하게 기억되곤 한다. 수원 화성 연쇄 살인 사건도 그랬다. 장기간 미제로 남아 있던 수원 화성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한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된 어린 시절의 나는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지역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된 것이다. 수원은 강력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야, 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에 자리 잡게 되었고 수원에 살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강한 반감이 일었다.

낯섦을 넘어 무섭기까지 했던 수원이 생각보다 매력적인 도시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화성 성곽길과 그 일대 행궁동, 재래시장 등을 알게 되면서부터이다. 도심에 자리 잡은 커다란 성벽과 그 주변으로 옛날 풍경을 간직한 공방 거리와 행궁동 그 어디에도 무서움은 당연히 없었고 정겨움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수원에 산다는 것이 너무 좋다, 이 정도는 아니었고 기회가 온다면 서울로 이사해야지, 하는 생각은 여전했다. 수원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서울과 수원 사이 광역 버스 노선이 몰려 있는 사당과 강남으로 집을 알아보러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 어디를 가든 차가 막히고 사람이 북적이는 것을 감수할 만큼의 간절함은 없었는지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수원에서 살아가는 시간들이 쌓여 갔다. 


어느덧 수원에 살게 된 지 10년이 흐른 지금, 나는 누구보다 내가 살고 있는 수원을 사랑한다. 수원에 대한 나의 애정이 깊어지고, 누구보다 수원을 사랑한다고 말하게 된 것은 수원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분야의 작가님들과 특색 있는 책방, 공방을 운영하시는 대표님들을 만나면서부터다. 엄밀히 말하면 나만의 동굴에 갇혀 지독한 집순이로 지내던 와중에 우연한 기회로 시작하게 된 그림을 그리면서부터다. 

마음터치 우주작가 그림에세이

내가 그린 그림으로 연결된 기회와 인연은 나를 집 밖으로 끌어냈고 모든 것을 서서히 바꿔 놓았다. 수원을 기반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내 안에 갇혀 있던 나의 우주는 넓어졌고 그제야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나를 둘러싼 수원이라는 곳이 갖고 있는 매력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수원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으로 수원의 풍경들을 그림에 담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가는 요즘이다. 


마음터치 우주작가 그림에세이

눈이 오면 눈이 땅에 쌓이는 것을 보고 싶고, 비가 내리면 비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싶다.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는 일상일 수 있지만, 아파트 고층에 살고 있는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다. 하늘에 붕 떠서 살고 있는 나에게 땅 가까이에 발 딛고 살아야 느낄 수 있는 자연의 소리는 아득히도 먼 곳의 이야기다. 


삶이 고되고 힘겹다 느껴지는 날에는 아파트 숲이 유난히 더 빼곡하게 느껴지면서 답답한 닭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그 수많은 닭장들 중에 하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자연 속에 푹 파묻혀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데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데로, 바람이 불어오면 불어오는 대로 흔들리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해지곤 했다. 

마음터치 우주작가 그림에세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산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공중에 붕 떠서 사는 삶보다는 늘 땅 가까이에 발 딛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오다 내 바람을 그대로 닮아 있는 작업실을 갖게 되었다. 수원의 오래된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는 낡고 작은 공간이지만, 쌓이는 눈을 볼 있고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한정된 예산으로 내가 만날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다. 내 작업실은 수원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고 내 작업실 덕분에 수원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졌다. 나만의 케렌시아를 찾았다.

마음터치 우주작가 그림에세이
“원래 케렌시아는 스페인어로 ‘애정, 애착, 귀소 본능, 안식처’ 등을 뜻하는 말로, 투우(鬪牛) 경기에서는 투우사와의 싸움 중에 소가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영역을 이른다.

이는 경기장 안에 확실히 정해진 공간이 아니라 투우 경기 중에 소가 본능적으로 자신의 피난처로 삼은 곳으로, 투우사는 케렌시아 안에 있는 소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

투우장의 소가 케렌시아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음 싸움을 준비하는 것처럼, 현대인들도 남에게 방해받지 않고 지친 심신을 재충전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마음터치 우주작가 그림에세이

삶이 한없이 치열하게 돌아가더라도,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실망을 하게 되더라도, 내가 원하지 않는 곳에서 삶을 시작하게 되더라도, 지친 내 한 몸 누울 수 있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각자의 케렌시아 하나쯤 갖고 있다면 고되고 힘든 삶에 단비가 내린다. 

마음터치 우주작가 그림에세이


치열했던 삶은 열정이 가득 한 곳으로, 상처받은 마음은 더 단단해진 내면으로, 원하지 않던 곳은 빛나는 보석으로 보답할지 모른다. 케렌시아를 갖는다는 것은 내가 알지 못했던 숨어 있는 가치를 발견하고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시공간 케렌시아는 깊은 한숨과 안도의 숨을 몰아 쉬어도 끄덕없는 커다란 숨구멍이 되어 준다. 

마음터치 우주작가 그림에세이

내게 최고의 케렌시아는 작업실이지만, 꼭 물리적인 공간만이 케렌시아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집과는 분리된 나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며, 모두에게 필요한 것도 아니다. 시간과 돈을 들여 꼭 일상을 탈출 하지 않아도, 내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각자의 상황에 맞는 나만의 시공간 케렌시아는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노력 없이 저절로 갖게 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때로는 단단한 알을 깨어 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마음터치 우주작가 그림에세이

가족들 끼니 걱정을 뒤로하고 나 홀로 여행을 떠날 용기, 아이를 위한 외출 대신 오롯이 나를 위해 집 밖을 나설 용기, 업무를 뒤로 하고 책 한 권 들고 좋아하는 카페로 향할 용기, 휴대폰의 알람을 잠시 꺼두고 나 홀로 고요해질 용기, 실행하지 못했던 새로운 운동에 도전해 볼 용기, 어쩌면 후회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호기심 해결을 위해 돈과 시간을 쓸 용기, 자유를 선택한 대가로 찾아올 외로움에 마주 해볼 용기, 

마음터치 우주작가 그림에세이

용기를 내어 마련한 내 작업실을 나는 "우주 테이션"이라고 부르곤 한다. "마음터치 우주" 아티스트명에서 따온 우주, 그리고 영어로 정거장을 뜻하는 스테이션을 합친 단어 "우주 테이션" 즉, 내 작업실은 우주정거장이다. 임무를 수행한 우주선이 정박하며 더 나아갈 연료를 채우듯, 나도 우주테이션에서 에너지를 충전한다. 

마음터치 우주작가 그림에세이

지금 이 글을 읽는 모두가 나만의 케렌시아를 찾는 것을 미래의 일로 미루지 않기를 바라본다.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시간, 강아지와 나 사이에 연결된 리드 줄이 에너지를 충전하는 케이블이 될 수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우주를 만나는 일이라 했다. 집에서 커피 한잔과 함께 책을 읽는 시간 역시 완벽한 몰입의 시간으로 에너지가 차오르는 나만의 시간이 된다. 인생이란 도처에 가득한 빛나는 케렌시아를 하나씩 찾아가며 그 시공간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여정이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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