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맞닿은 우주
"사람은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아니다." 등 지금 생각하면 말도 되지 않는, 어딘가 정신적 문제 또는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한 문장들을 검색했던 때가 있었다.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아닐 수도 있다고 느끼는 익명의 누군가의 심정을 담은 글을 찾고 싶었다. 나와 같은 누군가가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광활한 디지털 세상에 존재하기를 바랐다. 단 한 명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위로를 받아 안도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나는 이대로, 사람과의 연결 없이 살아도 괜찮을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가 나를 조바심 나게 했다. 나의 결핍에 큰 부담감으로 다가와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언제 이런 문장들을 생각했는지 그 시작점은 또렷하게 생각이 나지만, 끝점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림을 만나면서 서서히 나도 모르는 사이 회복되고 괜찮아진 것 같다.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위한 정답과 같은 이런 명제들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된 것은 더 이상 그것이 맞는 말인지 틀린 말인지 생각하지 않게 된 무렵,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이다.
그림으로 나의 생각과 감정을 말하면서 나를 둘러싼 바깥 사회보다 나를 중심으로 연결된 나의 우주에 집중하게 되었다. 나의 우주는 작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건강한 하나의 사회가 되어 나를 사회적인 동물로, 사람들과 어울려 잘 살아가는 존재로 느끼게 해 주었다. 사회성, 사교성, 외향성 등의 말들로부터 점차 해방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쌓여 나의 우주는 조금씩 깊어지고 넓어져 간다. 나의 우주와 연결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내 우주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나의 우주가 더 많은 사람들의 우주에 닿아 연결되고 싶고, 그 연결은 그림과 글을 통한 연결이었으면 좋겠다. 말로는 하지 못하지만 그림 안에서 나는 누구보다 자유롭고 편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그림으로 연결되고 싶다는 바람은 그림을 그리면 그릴수록 커져갔다. 아무도 나의 그림을 보지 않았던 시기에도 나는 분명히 누구보다 행복하게 그림을 그렸고 그리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 그리고 그림에 몰입한 나 자신이 좋았다. 하지만 그토록 좋아하는 그림도 아무도 봐주는 사람 없이 그림을 그리는 시간만 쌓였다면 이내 흥미를 잃어버리거나 취미로 하는 수준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그림 속에서 좀 더 솔직한 내 이야기를 꺼내 놓으며,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내 그림을 봐주는 사람들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 분명하다.
그림을 그리기 전 나는 SNS를 멀리하던 사람이었다.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SNS에 보여주는 행위를 이해하지 못했고, 심지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내가 가지 않는 길 위에 펼쳐져 있는 기회와 이유에 대해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그림을 시작한 이후 나는 SNS 사냥꾼이 되었다. 소위 '관종'이라 불리는 삶을 살고 있으며 그림과 일상을 이곳저곳 다양한 SNS에 공유한다. 디지털 세상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시간과 노력을 쓰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시간과 노력들은 그림과는 전혀 관련 없는 삶을 살았던 이공계 수학 전공자인 나를 그림을 그리며 살 수 있는 작가로 살 수 있게 했다.
'관종'이란 사람들에게 내 것을 자랑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이 아니라, 누구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만나기 전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누구보다 사랑하기에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고, 그 원동력으로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추억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들며 글을 쓰며 기록하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작업실 안에만 존재하는 그림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위 창작의 고통 끝에 탄생한 자식과 같은 내 창작물을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면 외롭다 느껴지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그린 그림과 글에 머문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은 나의 창작물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가 만든 창작물에 대한 애정이 깊은 만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나에게 있다. 나를 드러내는 그림과 글을 오늘도 이곳저곳에 노출하며 연결한다.
SNS 사냥꾼이 되어 열정적으로 관종의 삶을 살아가다가도 'SNS 권태기'가 찾아오기도 한다.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연결되고 싶다가도 그 연결이 부담스럽다며 싫어지기도 한다. 스스로 맺은 연결로 나는 더 특별해지고 고유해졌으면서 남과 같아지려고 애쓰고 남과 비교하며 나를 괴롭힌다. 그런 나를 끄집어내 다시 움직이게 하는 힘 역시 나와 연결된 사람들의 존재다. 보이지는 않지만 나의 우주에 맞닿아 연결된 그들의 우주가 보내주는 에너지로 오늘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그 에너지를 자원 삼아 그려낸 그림과 써내려간 글이 누군가의 삶에 작은 행복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감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