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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터치 우주 Oct 23. 2022

고양이의 뒷모습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것

사람이 만들어 내는 모든 소음이 싫었던 때가 있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운전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사람 목소리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입으로 흥얼거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듣던 노래가 소음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이유는 하나였다. 그 음악을 만들어 낸 존재가 바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사람이면서 사람 자체가 싫어졌던 그때, 가사가 있는 노래를 듣는 대신 파도 소리, 숲 속 바람 소리, 떨어지는 빗소리, 장작불 타는 소리 등 사람 아닌 자연이 만들어 내는 소리를 유튜브에서 찾아 듣곤 했다. 

나의 외출은 집 앞에 있는 편의점으로 간식거리를 사러 가는 것이 전부였다. 어느 날 편의점 사장님은 내가 매일 똑같은 초콜릿을 사는 것을 보고 "매일 드시네요."라며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날부터 그곳에 발길을 끊어 버렸다. 나를 아는 척하는 것이 화가 나고 불편했다. 사장님이 건넨 관심이 내게는 친절이 아니라 무방비 상태로 공격을 받은 것이라고 느껴졌다. 그 당시 나는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날이 서 있는 상태로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그야말로 아픈 상태였다. 


집에서 조금 더 멀리 떨어진 새로운 편의점을 찾았다. 사장님이 편의점을 운영하던 집 앞 가게와 달리 파트타임 직원분이 있는 곳이었다. 내가 매일 무엇을 사던지 관심을 두지 않았고 내가 들어서는 순간부터 카드를 내밀 때까지 눈이 마주치지 않아서 안전했다. 사람의 조그마한 관심마저 받아 드릴 수 없을 만큼, 말을 걸어오는 것이 화가 날만큼 얼어붙어 있던 아픈 나에게 딱 맞는 안전하고 친절한 편의점이었다.  


나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

나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갈 것인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와 같은 질문을 떠올리지 않았다. 이런 류의 질문들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충분히 행복했다고도 말할 수 있고, 아무 생각 없이 큰 문제없는 삶을 살았다고도 할 수 있다. 철없던 그 시절을 되돌아보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생각하기 전에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을 이미 하고 있었고, 이 일이 나에게 맞는 일일까를 고민하기 전에 이미 나는 그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늦어도 한참 늦은 나이에 나는 나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행복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삶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나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부터 나는 행복하지가 않았다. 삶의 의미를 찾기 시작하던 순간부터 살아간다는 것이 지루하고 무의미하며, 나 자신이 한없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몇 년 전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에서 누군가 툭 하고 던진 질문이 불현듯 생각난다. "다시 태어 날 수 있다면 인간으로 또 태어나고 싶은 사람?" 하고 누군가 물었다. 그 자리에는 대여섯 명의 친구들이 있었는데  "나! 난 꼭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데!"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고래를 절래 절래 흔들고 있었다. 과거 속의 나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무기력하고 덤덤한 표정의 나는 과거 속의 내가 낯설면서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은 내가 뒤늦게 하고 있는 고민을 그때 이미 하고 있었다는 것을 몇 년이 지난 후 알게 되었다. 인간으로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을 만큼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고된 일일 수 있음을 나보다 수년을 먼저 깨달았다니. 


인생이란 언젠가는 마주 하게 될 끝을 향해 가는, 어쩌면 슬픈 여정이라는 것을 그때 내 친구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누구에게나 인생의 굴곡이 있으니, 그 당시의 내 친구들은 나 보다 먼저 힘든 일을 경험하고 있었나 보다. 그 당시로 다시 돌아간다면 말없이 꼭 껴앉아 주고 싶다. 친구들보다 늦게 찾아온 인생, 행복, 삶, 나에 대한 고민의 깊이와 강도는 깊고 강했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숙성 단계를 거쳤는지 내가 뒤집어쓰고도 남을 만큼의 악취를 내뿜으며 나를 집어삼키는 듯했다. 

이제껏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고민들에 파묻힌 2018년 12월 겨울은 유난히 춥게 느껴졌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추운 것이 당연하듯, 내 마음도 어느새 춥고 힘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치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는 사람처럼, 행복이 어떤 감정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무기력한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서는 하루도 견뎌 내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야말로 살기 위해 책상에 앉았고 손을 움직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해가 전혀 반갑지 않았던 나는 한없이 길게 느껴지던 하루를 또다시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아침마다 기분이 가라앉곤 했었다. 하지만 그림을 만난 후 나의 아침이 완전히 달라졌다. 빨리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나의 아침은 자꾸만 빨라졌고 잠드는 것이 아쉬워 밤늦게까지 그림을 그렸다. 날이 밝아 올 때면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싫고 부담스러워 다시 눈을 감았던 아침 풍경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그중에서도 지금 당장 그릴 수 있는 것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잘 그리려고 욕심을 내거나 그리고 싶은 어려운 것을 시도하기보다는 지금 바로 그릴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그렸다. 그림을 시작한 초반 나의 캔버스가 온통 고양이의 뒷모습만 담겨 있는 이유이다. 고양이의 앞모습을 그리기에는 눈, 코, 잎 등의 복잡한 기관들이 몰려 있어서 그릴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릴 수 있는, 내 눈에 만만해 보였던 고양이의 동굴 동굴 한 뒷모습만 그렸다. 이런 시간이 쌓여 나만의 그림체가 생기고 그림의 소제가 자연스럽게 다양해졌다.


철저하게 내가 당장 그릴 수 있는 만만한 것만 그렸다. 앞모습을 그릴 수 없는 내 그림 실력을 자책하거나 좀 배우고 시작해야 한다며 미술 학원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면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난 그림에 소질이 없어, 역시 그림은 배워야 할 수 있어, 라고 생각하며 미루는 대신 욕심 내지 않았고 목표를 정해두지 않았다. 그저 있는 그 자리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마음 가는 대로 움직였기에 그림에 흠뻑 빠져 들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그 당시 나는 비록 고양이의 뒷모습밖에 그릴 수 없었음에도, 그릴 수 있는 것이 많아 충분히 행복했다. 매일 그리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마음이 급해지곤 했다. 까만 고양이만 그리다가 다양한 털색의 고양이 여러 마리를 그리게 되었고, 털 표현도 점점 정돈이 되어 가는 느낌이 들어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색에 대한 이론이 없었기에 과감하고 자유롭게 내 눈에 가장 예뻐 보이는 색들을 조합하면서 나만의 그림체도 갖게 되었다. 어떤 색이 채도가 높은지, 어떤 색들은 함께 쓰면 안 되는지에 대한 정보나 조언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믿을 것은 내 눈 밖에 없었다. 색에 대한 이론은 없었지만 어떤 색들을 함께 쓰면 예뻐 보이는지, 또는 촌스러워 보이는지는 내 눈이 정확하게 말해 주었다. 그림 선생님이나 이론 서적이 아닌 나 자신을 믿고 나의 느낌대로 그려도 되는 시간들이 좋았다. 

만약 내가 미술 학원을 찾았다면, 내 그림체를 갖기까지 시간이 걸렸을 것이며, 어쩌면 그림에 대한 흥미가 떨어져 그림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미술 학원의 진도를 따라가는 것이 벅차다며 난 역시 그림에 소질이 없었네, 하며 다시는 그림을 그릴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내가 이토록 좋아하는 그림을 포기하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더불어 과거의 내가 대견하다. 마음이 가는 대로,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던 나여서 참 다행이다.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지금 내가 있는 환경을 바꾸고 새로운 곳에 가야 하거나 그림을 가르쳐줄 누군가를 찾아 돈을 지불해야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내가 있는 곳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바로 시작을 하면 된다는 것을 스스로의 삶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어딘가에 가서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망설여지고 그 방법을 찾느라 정작 시작조차 못한 체 포기해버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림으로 나의 생각과 감정을 말하면서 창작의 수단 하나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기에 그림을 그려 보고 싶다는 사람을 만날 때면 나도 모르게 말이 많아진다.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또는 어떤 것을 꼭 그리고야 말겠다는 목표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있는 그 자리에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기에 그리는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었고 그런 시간들이 쌓여 어느새 나는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예술가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고양이의 앞모습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작가로 살아가는 나를 보면서 나도 해보고 싶다며 방법을 묻다가도 이내 "난 그림 잘 못 그려서 안될 거예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학창 시절 이후로 한 번도 무언가를 그려 본 적이 없으니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인데 도전 자체를 포기한다. 

살면서 나도 한 번쯤 그림을 그려 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오곤 했던 사람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고, 누구에게나 초보 시절은 있었다고. 이것은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다른 작가들의 결과물과 내 것을 비교하며 조바심이 생길 때마다 당연하지만 자주 잊게 되는 "그들에게도 초보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곱씹는다. 


그들이 오랜 시간 동안 견디고 버티며 쌓은 시간이 작품에 깊이를 더해준 것임을 받아들이고 그 시간을 존경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깊이를 부러워한다. 그 깊이를 갖기까지 지나온 과정은 보이지 않으니 그 결과의 깊이만을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깊이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깊게 파기 위해서,
넓게 파기 시작했다.
- 스피노자 -

그림을 만나면서 꾸준하게 깊게 파고든다는 것이 어떤 짜릿함을 주는지, 얼마나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하는지를 경험하면서 나만의 깊이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깊게 파기 위해서는 넓게 파는 경험을 해야 한다. 깊게 파고 싶은 분야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얇지만 다양한 것들을 파다 보면 그것들이 서로 나도 모르는 사이 융합되어 보다 넓은 영영으로 확장 되고 나만의 또 다른 색깔을 가진 독특하고 매력적인 깊이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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