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올 들어 가장 많은 눈이 내리던 날에 읽기 시작한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 1, 2>. 감각적인 표지 디자인과 호기심을 끄는 제목 때문에 눈길이 많이 가곤 했지만, 선뜻 손을 대기가 망설여졌다. 소설은 한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쉬지 않고 읽어내야만 하는 나의 성향 때문에 소설 읽기에 앞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충분히 마련되었을 때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껴둔 책들 중에 하나다. 이제 하나둘씩 2022년 작업들이 마무리되고 있는 연말, 게다가 동장군의 기세로 꽁꽁 얼어붙어 외출이 망설여지던 지난 주말은 소설을 시작 하기에 내게는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다양한 목적으로 편의점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 안에서 10대의 나의 모습, 그리고 20대, 30대, 40대 그리고 미래의 나를 만났다. 상황은 달랐지만 그들의 고민과 방황은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를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 소통, 연결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했다.
참참참 세트: 참깨 라면, 참치 삼각김밥, 참이슬
누군가의 쏘울 푸드 세트이다. 오늘 하루 힘들었던 누군가의 하루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당신만 그런 건 아니라고 토닥이는 마음으로 당신과 똑같은 참참참 세트를 저녁 메뉴로 정했다.
”상처를 돌아보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 혹은 욕망이 그 사람의 원동력이 되고 캐릭터가 된다. “
”진심 같은 거 없이 그냥 친절한척만 해도 친절해지는 것 같아요. “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
나와 닮은 소진을 만났다. 해산물이 풍족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회를 못 먹었고, 한 번에 몽땅 먹어치우는 습성 때문에 좋아하는 음식은 하나씩만 사고 쟁여두지 않는다. 자주 이용하던 편의점 직원이 자신의 안주 취향을 아는 체 하던 그날, 직원의 아는 체에 불쾌해하며 편의점 발길을 끊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소진을 보며 과거의 내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소진의 소울 푸드는 "참치"였다. 생선 참치가 아니라 참이슬과 자갈치의 조합으로 탄생된 안주세트다.
코로나로 인해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영업자의 생계는 그야말로 큰 타격을 입었고 집안에서 가장의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설 곳이 없어진 최 사장은 편의점을 찾는다. 세상은 불공평으로 가득 차 있는데, 편의점은 가게 안 모두에게 공평한 에어컨 바람을 나눠준다며 편의점에서 위로를 받는다. 그에게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의 맥주 한잔이 유일한 낙이 되었다.
아무리 춥고 외롭고 고단하더라도
하루 일상의 끝에 찾아갈 공간과
허기와 결핍을 채워 줄
쏘울 푸드, 쏘울 공간 하나쯤
갖고 있다면 든든하겠지.
비교는 암이고 걱정은 독이라며,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는 것의 소중함을 편의점 사람들을 통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오늘이 지나면 인생에 다시없을 바로 지금 이순간의 오늘을 단단히 붙잡고, 남들과의 비교보다는 미래의 나를 위해 소중한 기억과 특별한 추억 하나에 집중하기로.
"행복했냐고? 모르겠다. 행복은 바라지도 않는다. 삶의 순간순간에 만족하는 찰나가 잦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