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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빈 Jun 22. 2024

손이 기억해야 하는 것 2

2D인 종이나 캔버스에 3D를 담는 것은 사실 과학이다. 빛이 만들어내는 명암, 중력에 의해 느껴지는 무게감 등 이런 것들은 과학이니까.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에는 필름카메라와 삐삐가 있던 시대라 지금처럼 사진을 보고 그리기보단 실물을 봐야 하는 시대였다. 그래서 학원에서는 정물을 놓고 그려야 했다. 정물로 올려놓은 사과는 시간이 갈수록 색이 변하고 꽃은 시간이 갈수록 봉오리는 만개하며 실물은 사진처럼 친절하지 않고 계속 변한다. 학원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 때문에 시간대와 날씨에 따라 색감도 바뀌고 노을에 의해 붉어지거나 했다. 아직 스케치밖에 안 했는데 꽃은 피어있고 아직 색을 다 칠하지 않았는데 꽃은 시든다. 계속 변하는 실물을 그리는 것은 온전히 눈에 그 대상을 담아야 한다.


"선생님, 저게 아까랑 달라졌어요.."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달라졌어도 눈이 기억하고 있잖아."


나는 그리다가 또 질문했다.

"선생님 여기를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저기 가서 만져봐. 볼록하니 들어가 있니."

"(만져보며) 볼록해요."

"그럼 빛을 받을까 못 받을까?"

"(생각하다가) 빛을 받아요."

"그럼 어둡겠니, 밝겠니."

"아하~!"


그리는 대상의 구조를 알아야 그리는 것이 수월해진다. 중고등학교 때는 학원에서 사진이 병행되었다.

"선생님, 돌이 깨지는 게 어려워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나무는 결이 있고 도끼로 내려찍으면 쫘악 쪼개진다. 돌은 와르르 덩어리로 부서지지. 그럼 돌을 어떻게 깨야겠니?"

"면을 나눠서 덩어리로..?"

"그렇지."

"선생님, 얼음을 그리기가 어려워요."

"얼음과 유리는 둘 다 빛이 투과되고 투명하다. 그러나 조금 다르지. 얼음이 원래 뭐였는지를 생각해야지. 물이 얼어서 된 게 얼음이잖아."

"아하.."


눈에 담는 연습이 되면 실물을 그릴 수 있다. 대상의 구조와 성질을 이해하면서 그리면 형태와 질감 등이 통째로 손에 기억된다. 그렇게 그려봤던 것은 손이 기억해서 응용하며 손에서 꺼낼 수 있게 된다. 그려보지 않은 것은 그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많이 그려봐야 한다. 그리기 어렵다고 느끼는 대상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그려본 적이 없다는 거다. 온전히 대상을 눈에 담고 그것을 이해하면서 손에 기억시켜야 한다.


손은 그려본 것들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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