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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빈 Jun 14. 2024

손이 기억해야 하는 것 1

수업시간에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

"손이 기억하게 해야 해요"


머리에는 이론을 담는 거고 손이 기억해야 하는 영역이 있다. 머리로는 주소를 쓰려하면 뭔지 모르지만 많이 가본 길이라서 발걸음이 기억하니까 몸으로는 찾아갈 수 있는 그런 것. 머리가 기억하는 것과 몸이 기억하는 것은 다르다. 정말 너무 많이 그려봤던 거라서 손이 기억할 정도로 그려보면 손이 그려낸다.


처음 오는 수강생분들이 흔히 하는 질문이 있다.

"저는 진짜 재능이 없는데도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대답한다.

"재능을 있고 없고를 판단할 만큼 그려보긴 했을까요? 몇 장 그려보고 '나는 재능이 없어'라고 하지 말고 50장 100장 300장 1000장 이렇게까지 그려본 후에 판단해도 됩니다. 재능을 판단할 만큼 그려본 적도 없잖아요. 아직 자신에게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알 수 없어요."


고등학생이던 나는 계룡에서 대전까지 가서 미술학원을 다녔다. 학원셔틀버스를 타면 편하지만 그러면 대전친구들보다 30~1시간정도 늦게 도착하게 된다. 그래서 그 시간이 아까워서 석식을 먹지 않고 삼각김밥을 사서 202버스를 타고 학원에 갔다.


20대 초반의 어느 날은 물을 그리는 것이 어려워서 쏟아지는 물, 넘쳐흐르는 물, 파도, 물방울 등 온갖 물 사진을 다 찾아서 종류별로 물만 50장씩 그리기도 했었다. 학원에 혼자 남아서 밤새 그리다가 학원 바닥에서 자고, 일어나서 다시 그리고, 그렇게 하루에 10~14시간씩 그리기도 했었다. 나는 아직 이렇게 밖에 못하는데 잠을 잔다니 자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렇게 반복된 시간 속에서 어떤 날은 손에서 피가 나기도 했는데 그러면 밴드를 감고 그렸다. 허리가 아프면 파스를 붙이고 그렸다. 그리다가 배가 고프면 김밥을 썰지 않은 상태로 사 와서 왼손에 들고 입으로 뜯어먹으면서 오른손으로는 그림을 그렸다. 나는 천재가 아니니까 될 때까지 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굶어 죽는 예술가는 예술가란 타고나는 법이라고 믿는다. 잘 나가는 예술가는 예술가란 만들어지는 법이라고 믿는다. 예술가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다. "

- 제프 고인스, '예술가는 절대로 굶어 죽지 않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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