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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빈 Jun 29. 2024

손이 기억해야 하는 것 3

나는 '일찍 재능 찾아서 좋겠어요', '소질 있는 거 부러워요'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학원 바닥에서 앞치마를 담요 삼아 덮은 채 쪽잠 자고, 손에 피가 나면 밴드를 붙여가며 허리가 아프면 파스를 붙이면서 밤새우며 몇 시간씩 그리고, 나의 손이 답답해서 울며 보내던 그 시간들이 폄하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버려진 수많은 습작들이 있었고, 그냥 많이 그리고 더 많이 그렸을 뿐이고, 지금의 부족함을 채울 방법도 더 많이 그려나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머리로 기억하는 것, 눈으로 기억하는 것, 손이 기억하는 것은 다르다. 눈으로 본 것은 이미지를 기억한다. 머리로 기억하는 것은 데이터를 기억한다. 손이 기억하는 것은 느낌을 기억한다. 그려봤어야 손에서 해낼 수 있다. 여전히 나는 '손이 많은 것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수업시간에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어떻게 해야 잘 그려요?"


변함없는 나의 대답은,

"많이 그리세요. 손에 확신이 생길 때까지 그리세요. 그리고 그다음은 확신을 가진 그 손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거예요. 잘 그리는 거말고 내 마음이 원하는 거. 그러면 그때부터는 손이 마음을 그려요."


손을 만드는 것은 마음을 그려낼 도구를 만드는 과정이고, 그렇게 손은 다듬어지고 만들어진 도구가 되어 마음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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