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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Aug 01. 2022

그냥 견뎌야 하는 날들도 있지

어떤 위로에 관한 짧은 기록


B가 떠났을 때, 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의 삶은 짧았지만 주변의 여러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준 까닭이었다. 그러나 나는 B가 머묾의 방식으로 현재에 남기를 바랐지, 떠남의 방식으로 기억에 남기를 바라지 않았다. 언젠가는 다들 죽게 마련이지만 그러기에 우리는 아직- 너무 젊었다. 


이제 막 서른이 되던 해 친구 L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나는 오래도록 슬픔에 휘감겨 있었다. 그가 다 살지 못하고 떠난 너머의 시간들이 비바람에 떨어진 꽃처럼 아까웠다. 그래도 50년은 더 살아야지. 아니, 30년은 더 살아야지. 그래야 겨우 예순인데. 그가 오랜 투병 끝에 힘들게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나는 불쑥불쑥 화를 냈다. 죽음은 누구의 탓도 아닌 그저 삶의 결과였지만 가까운 사람들이 떠날 때마다 나는 뭐라도 붙들고 탓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긴 애도의 시간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리고 30대를 지나며 세 명의 사람들이 차례로 다시 내 곁을 떠났다. 모두 나와 비슷한 나이였다. 그러니까 아직- 너무도 이른 나이였다. 


그때 처음으로 세상 이곳저곳을 헤집으며 산 것을 후회했다. 너무 많은 곳을 들락거려서 너무 많은 인연을 만들었고 그래서 이렇게 많은 이별을 겪는구나. 내가 참 멍청했다. 거쳐 온 모든 곳들이 인연이고, 만남 후에는 당연히 이별이 있는 건데 내가 생각이 짧았다. 모두 내 탓이다. 말도 안 되는 이상한 귀인이었지만 그렇게 내 탓이라도 해야 그 시간들을 살아서 지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해도,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내 삶의 몫을 줄여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처럼 되돌리고 되돌려서라도. 아니, 다시 못 보아도 좋으니 어딘가에는 살아서 존재했으면 좋겠다. 그냥 잘 살고 있는 거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바람도 소용없이 나는 그들이 더 이상 내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문득문득 깨달았고, 살아가며 더욱 깊이 느끼고 있다. 대개 표현할 길 없는 슬픔이 찾아오는 순간들이다. 그래서 슬픔이 찾아오는 날에는 괜히 더 신나는 글을 쓰고 더 크게 헛소리를 하고 내 삶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부분을 확대해 들여다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날에는 그냥 아무 말이나 하고 아무 글이나 써 보는 것이다. 푹푹 찌는 더위 속에 들어앉아 이렇게. 


살아있는 존재라면 누구에게나 슬픔이 있다. 슬픔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단 하나의 온전한 슬픔이기도 하고, 무질서하게 뒤엉켜 뭉쳐 있을 수도 있다. 온전하건, 무질서하건, 성성히 살아 있건, 없는 듯 가라앉아 있건 슬픔은 슬픔이다. 사라지지 않는다. 기쁨은 어디에 존재하는지 어느 순간 튀어나오는지 너무도 명확한데 슬픔은 모르겠다.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위로하고 다시 살게 하는 것은 확실히 슬픔이지만, 순간순간을 괴롭게 하는 것 역시 슬픔이다. 그렇게 삶은, 슬픔의 정서로 진행되고 나아간다, 처럼 그냥 이런 글도 써 보는 것이다. 쓰고 나면, 읽을 수 있다. 읽을 수 있으니까 잘 보이지 않던 것들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게 된다. 오규원 시인은 존재의 본질을 언어 안에 가두는 일에 대하여 경계하는 시를 남겼지만- 불확실하고 무질서한 존재의 본질을 그나마 어렴풋하게라도 알아차릴 수 있는 건 모두 언어 덕분이다. 


내 안의 어딘가가 조금 부서지고 망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요즘이었다. 밤마다 뛰고 책을 읽고 글을 써 봐도 딱히 도움 되는 것들이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나를 위로하는 방법을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남은 자의 몫을 다하며 살겠다고 다짐한 나를, 그 약속을 다시 상기하기 위해서다. 즐거운 일들은 여전히 도처에 있다. 그리고 내가 받았던 그 어떤 위로보다 다정하고 따뜻했던 그날 일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B가 떠나고 한 달 즈음 지난 어느 날 밤에, 곧 출산을 앞두었던 친한 동생 H가 연락을 해 왔다. 우리는 제법 가까이에 살았지만 서로의 집이 어디인지는 그때까지도 몰랐다. 내게 줄 게 있다는 H의 말에 산책 겸 H의 동네 어귀까지 나갔다. 밤바람이 찼다. 만삭의 몸으로 나타난 H가 반가웠고, 나는 언제나처럼 수선을 떨었다. 오랜만에 보아 반갑고 기쁜데 조금은 낯도 설어서 긴장하면 말이 많아지는 게 내 오랜 습관이다. H는 늘 그렇듯 잔잔하게 웃으며 별다른 말 없이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언니. 소식 들었어요.


벼락처럼 많은 연락들이 쏟아졌을 때에도 H는 연락이 없었고 나는 그게 오히려 고마운 순간들이 많았다. H는 그 말을 하고 뭔가를 내밀었다. 어둠 속에서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반짝, 하고 빛나는 반찬통이었다. 


카레예요. 좋은 것들을 골라 넣고, 오래오래 끓였어요.


오래오래. 오래와 오래가 만나 하나의 단어가 된 '오래오래'의 시간은 얼마만큼인 걸까. 나는 아직 따뜻한 그 통을 받아 들고 두 손으로 감싸 안은 채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신음처럼 이상한 감탄사를 내뱉다가 한참 만에야 너무 고맙다고 했다. '너무너무' 고맙다고. 너무와 너무가 만난 수식어를 몇 번을 더 붙여도 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돌아와 오래 두고 아껴 먹었다. 밥을 잘 챙기는 편이 아니라 끼니를 어설프게 때울 때가 많았는데, 그때만큼은 꼬박꼬박 때를 맞추어 먹었다. 그 '때'를 맞추는 일이, 온통 슬픔에 휘감겨 있던 그해 가을의 일상을 제법 견디게 해 주었다. 그 시절을 함께 통과해 주었던 모든 사람들과, 지금의 이 시절을 역시 함께 지나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또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아야지. 


다시 여름의 정점이다. 다가오는 가을은 조금 덜 걱정해야지. 가을에는 좋은 일들이 많다. 친우의 결혼식이 있고, 학교도 나가야 하고, 읽어야 할 책들과 써야 할 글들이 많다. 그것을 하나하나 묵묵히 해 나가는 것이 내게 주어진 나의 몫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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