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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Aug 17. 2022

여름이었다

2022년 여름의 일들에 관한 짧은 기록


# 출근에 관하여

'출근'이란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는 혹은 익숙해질 수 없는 습관 같다. 그렇다면, 과연 습관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어제 개학을 했다. 맙소사! 개학? 개학이라고?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믿을 수가 없다. 나는 뭘 한 거지? 여행을 다녀왔나? 아뇨. 책을 파고들어 읽었나? 아뇨. 영화를 끝장나게 봤나? 아뇨. 2학기 수업 준비를 했나? 아아아뇨. 효도를 했나? ...네? 그럼 방학 동안 대체 뭘 한 거죠? 아니, 그러니까요.  


전날  잠은  자고 이렇게 한탄과 후회, 자책을 하다가 새벽  시에야 가까스로 눈을 붙였다. 어라, 잤나? 싶은 순간에 여지없이 알람이 울렸다. 아침 여섯 시였다. 왜죠?     같은데요. 그냥 잠깐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출근이라뇨. 부스스 눈을   천장을 바라보았다. 맙소사, 개학이라니! 실화인가. 앗싸! 출근! ...이라는 생각이 들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그랬다면 진작에 성공했겠지. 그래서 지금  시간에 이런 글을 쓰고 있지는 않겠지. 그러니 성공이란  대체 뭐란 말인가. 지금  시간에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일종의 성공 아닌가. 일단  모든 환경오염과 그로 인한 기후 변화와 바이러스 창궐과 이름 모를 기타 등등의 습격들에도 아무튼 살아남았다는 . 어쨌든 오늘도 스스로를 입히고 먹이고 재운 후에 다시 하루를 살아남았다는 . 대단한 성공이 아닐  없다.


...라고 위안하는 건 그만두자. 그냥 솔직히 인정하자면- 출근은 힘들다. 겨우 일주일에 두 번 출근하는 주제에, 방학이 끝나고 개학이 되었다고 난리법석을 떨며 실화냐고 하는 것 자체가 블랙 코미디이지만- 중증의 '새 학기 증후군'과 '강의 전날 증후군'을 앓고 있는 나에게는 일주일에 몇 번 나가는가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나간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난리법석을 떨게 되는 큰 이유 중 하나이므로. 친구들과의 수다 모임조차도 사실 '일'의 범주에 넣고 있는 나에게는, 완전히 혼자인 시간만이 진정한 휴식이다. 이러다가 십 년 후에는 자연인이 되겠다며 산속으로 들어가 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는 너무 길도 못 찾고 요리도 못하고 추위도 잘 타지만 아무튼.


# 여름 동안에 관하여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출근 준비를 하고 전철에 올라탔다. 차창 너머로 흘러가는 파란 풍경들이 큰 위로가 되었다. 사실 방학 동안 여러 번 학교에 나갔다. 여름방학 방과 후 수업으로 일주일 출근을 하고, 과목 세부 특기사항을 기록하느라 일주일 정도 또 나갔다. 그러고 나니 이 주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한 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시골집에 다녀오고 다른 한 주는 그냥 쉬었다. 쉬면서 영화를 한 편 보고, 소설을 한 편 썼다. 오랜만에 쓰는 소설은 나를 무척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러느라 하룻밤을 꼬박 새웠는데 전혀 힘들지 않았다. 어떤 종류의 일은 여전히 큰 힘을 준다. 그런 일들을 우리는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걸까.


여름이 시작될 무렵부터 종잡을 수 없는 마음 때문에 괴로웠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창작 수업을 하나 들었다. 오랜만의 일이었다. 코로나 시국인지라 온라인으로 들었고, 매주 화요일 저녁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 들어와 컴퓨터를 켜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숨을 골랐다. 작은 네모 칸 안에서 나를 비롯한 수강생들은 서로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서로의 글에 대해 지극한 마음들을 나누었다. 왜 쓰는지 아무도 묻지 않아서 좋았다. 대신 우리는 무엇을 쓰고 싶은지, 어떻게 쓰고 싶은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내가 뭘 쓰고 싶은지조차 몰랐다. 어떻게 쓸 지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다 쓰러져 가던 소설 폴더를 열고 몇 편의 조각 글들을 뒤적이는 사이 조금씩 어떤 마음이 생겨났다.


다시 써 볼까.  


창작 수업에는 으레 합평 마감일이 있게 마련이므로 어쩔 수 없이 책상 앞에 앉았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그렇게 혼자 안달을 하며 해 나갔다. 강제성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최고의 뮤즈는 마감이라고 했던가. 합평일에 맞추어 어떻게든 썼고, 그러는 사이 두 편의 조각 글과 한 편의 초고가 결과로 남았다. 초고는 퇴고 중이다. '최최최최종본'은 언제나 품을 수 있을까. 한 편의 이야기를 쓰고 나니 엉켜 있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쓰면서 치유가 된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쓰고 싶어지기까지 그리고 정말로 쓰기까지는 의외로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또 잊고 있었다. 쓰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무엇을 쓰게 될 지는 써 봐야 아는 것처럼, 여름 동안의 내 마음도 그랬다.


# 개학 첫날에 관하여

"쌤! 오늘 진도 나가요?" (설마하는 눈빛)

"아, 당연하지! 그치만 개학날이니까 5분 일찍 끝내 줄게!" (괜히 선심인 척)

"오예!" (진짜로 신남)


A ㅏ... 진짜 정말 진심 일찍 끝내 주려고 했는데 말이다. 오랜만에 수업을 했더니 감이 떨어졌다. 한창 진도를 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삐링삐링 종이 쳤다. 얽? 이게 뭐야? 벌써 쉬는 시간이야? 깜짝 놀라 물으니 아이들은 예에~ 하면서 '쌤... 벌써라니요...' 하는 눈으로 본다. 미쳤나 봐. 풀타임으로도 모자라 오버 타임을 했구나 싶어 '어머, 미안해' 하니 '괜찮아요!' 한다. 오, 다들 2학기가 되더니 마음을 굳게 먹었나 봐? 하지만 아이들은 벌써 쏜살같이 내뺀 후다. '수고하셨습니다아'와 '감사합니다아'가 활짝 열린 뒷문을 타고 아련하게 울려 퍼진다. 그렇지. 화장실도 가고 다른 반 베프도 만나고 이런저런 수다도 떨어야지 암암. 교실을 나오는데 사막처럼 조용하던 학교가 시끌벅적하다. 아이들도 오랜만에 학교에 오니 신이 나나 보다. 반듯하게 갖추어 입은 교복이 반짝인다. 비록 방학 전에 나누어 준 프린트를 어디에 두었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아이들이 한 트럭이지만. 아직 한 단원이 남은 교과서를 잊어먹고 안 가져왔다는 아이들도 또 줄을 서지만.   


그럼 어때. 그럴 수도 있지.


# 남은 계절들에 관하여

지난 학기 일하는 모습을 좋게 봐 주시고, 귀한 자리를 제안해 주신 여러 선생님들 덕분에 2학기부터 풀타임 근무를 하게 되었다. 새벽 출근은 괴롭지만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좋다. 백지를 바라보는 순간은 괴롭지만 뭐라도 써 나가는 순간만큼은 가슴이 벅차도록 좋다. 나를 이곳에 계속 머무르게 하는, 중력과도 같은 일들을 하나씩 찾아 계속해서 해 나가야겠다. 계속해서 하는 수밖에 없다. 결과는 일단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므로. 이따금 어둠 속에 잠겼을 때, 끝없이 침잠하는 가운데서도 반짝, 하고 빛나는 것들을 알아차릴 수 있는 정도의 힘만 있어도 우선은 되겠다.   


# 쓰고 난 마음에 관하여

몇 번의 부끄러운 고백이 더 있고 난 후에야 비로소 이 같은 기록을 멈출 수 있을까. 하지만 기록이란 원래 그런 위험을 안고 있는 것. 그걸 알면서도 쓰는 것. 여름날 쏟아지는 볕처럼, 영원히 그칠 리  없는 일들에 대해서 오늘도 기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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