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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May 12. 2021

희미한 안부가 주는 위안

2020년 9월


친구야, 별 일 없지.


며칠 전 다정한 부름말과 함께 물음인지 아닌지 모를 몇 음절의 안부가 도착했다. J였다. 초등학생 시절 만나 한참을 떨어져 살다가 우연한 기회로 다시 만난 J는, 그사이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올해 아홉 살이 된 아들 하나를 두고 바지런히 하루를 살아가는 친구는 그렇게 아이를 키우고 삶을 꾸려나가느라 바쁜 와중에도 으레 몇 음절로 안부를 물어오곤 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연락을 해 보면, 별 일은 없단다. 그냥 생각나서 연락했다고. 그러고 보니 희 역시, 가끔 그렇게 아무런 목적 없는 안부를 전해 오곤 했다.


희는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해서는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라고 중얼거리듯 말하곤 별다른 말이 없어 이런저런 말을 쏟아낸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조금씩 허둥대곤 했는데 '목소리가 듣고 싶다'는 그 말에 어쩐지 한없이 쑥스러워지고 말아서. 그런데 그렇게 안부를 주고받고 나면 마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그날은 그 힘으로 또 어떻게 하루를 잘 견디고 살아남았던 것이다.


이번에도 무슨 일이 있나 싶어 J에게 얼른 답을 보내니 역시나 별 일은 없단다. 그냥 그렇게 언제나처럼 살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을지.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중일지. 어려서부터 마음이 넓고 똘똘해 반장을 도맡아 하던 J는 대기과학을 전공하고 연구자를 꿈꾸며 대학원에 진학했다. 하지만 현재는 그 길을 떠나 있는데, 그 떠난 길이 못내 아쉬워 우리는 중도에 그친 공부를 두고 많은 이야기들을 하곤 했다. 그때마다 J는 미련인지 뭔지 모를 이상스런 내 감정들을 용케도 잘 읽어주곤 했다. 아무런 말 끝에 '에이 모르겠어. 그냥 되는 대로 살지 뭐.'라고 중얼거려도 또 그것만큼 좋은 게 없다며 무조건 고개를 끄덕여 주던 친구. 그 덕분에 나는 또 하루만큼의 용기를 얻어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목표를 세우고 뚜렷한 계획 아래 끝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중요해진 사회에서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던져 보는 안부나 전화 한 통이란 얼마나 희미한 일인가. 희미해도 좋고 아무런 뜻 없이도 좋으니 그냥 그런 시간들이 내 삶에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커다란 여백으로 남아 언제고 찾아가 기대어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쉰다는 건 꽤나 심리적인 개념이라 몸은 한없이 편안해도 마음이 쉬지 못하면 말짱 꽝이니. 그리고 나도 안부 전하는 일을 어려워하거나 두려워 말고, 아무런 목적이 없어 희미한 안부를 좀 더 자주 전해야겠다.


목적 없는 안부가 주는 평안에 대하여 그려 보는 오늘은 제법 괜찮은 날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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