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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May 12. 2021

계절처럼 지나갈 것입니다

2020년 12월


지금  순간도 결국 계절처럼 지나갈 것입니다 


11월의 첫날,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은 빈 사무실에서 이런 문장을 끼적이고서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 이후의 날들을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아프기 전에 약을 먹고, 넘어지기 전에 어떻게든 중심을 잡으며 무증상의 증상 같은 것들을 검색해 보며 오늘까지 살아, 남았다.


나는 다시 남았고, 남겨졌다.

그곳까지는 몇 발자국이나 남았을까.

생의 한가운데를 지나고는 있는 걸까.

그러니 지금 여기는 대체 어디란 말인가.

 

한숨 돌리는 시간에는 남은 자의 몫을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수학엔 언제나 젬병이었고, 나눗셈의 몫을 구하는 족족 틀리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는 커서 어떤 어른이 되는 걸까. 여전히 서툴고 모자라 남은 자의 몫 따위 구하지 못한 채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다. 이렇게? 응, 이렇게.


그러다 지금 이 순간도 결국 계절처럼 지나갈 것이다, 라는 문장을 찾아냈다. 나는 언제 이런 문장을 끼적여 놓은 것일까. 문장의 뒤로는 빈틈없는 여백이 빼곡하다. 낡은 수첩을 휘륵휘륵 넘기다 비스듬히 책상에 누워 몰래몰래 글을 쓴다. 사람이 지나가면 얼른 허리를 세우고 모니터 화면을 염탐한다. 나만 남으면 다시 문장에 대해 생각한다. 결국, 계절처럼 지나갈 것이다. 계절처럼, 지나갈, 것이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만 것처럼.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말 것처럼. 지나가고 지나가면, 지나가고 지나가고 지나가면, 그러면 된다. 사는 일이든 견디는 일이든 그렇게 일단은.


퇴근 시간은 아직 멀었다. 점심에 먹은 햄버거가 위에서 요동을 친다. 얼른 이 시간을 마무리해야 한다. 마음이 바쁠수록 괴로움이 커진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문장 뒤에 끼적끼적 새로운 문장을 그려 넣었다.


지금은 이러한 나도,

미래의 나를 위로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순간은 결국, 계절처럼 지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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