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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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 시골집에 내려가 있었다. 작은 집에서 오빠네 식구들까지 복닥이며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이렇게나 평안할 수가 없다. 왜 이렇게 일찍 올라가, 더 있다 가지. 아, 약속 있습니다. 누구랑? 저랑요. 태주랑 약속 있어요. 정말이다. 나와의 약속, 이 얼마나 중요한가. 얼른 올라가서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글도 써야지. 밀린 운동을 하고 커피도 한 잔 사 먹어야지. 부모님도, 예전에는 많이 서운해하셨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신다. 그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사실 몇 번 돌아보긴 했다) 뛰어 올라와 나만의 시공간 안으로 들어오니 진심으로 행복하다. 그리고 저녁나절 시골집으로부터의 전화.
그래, 올라가니 좋으니?
예에, 좋으네요.
뭐 하는데?
누워 있는데요?
나 참.
때마침 케이가 <눕기의 기술>이라는 책과 음악 CD를 보내왔다. 너무나 시의적절한 선물이다. 책을 읽다가 여러 번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고요한 저녁을 보내고 오늘 아침, 드디어 크리스마스였다. 일어나 창문을 여니 온 세상이 하얗다. 오랜만에 만나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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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랫동안, 내게 크리스마스는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는 날이었다. 우리 집은 양력으로 제사를 지냈는데 할아버지께서 12월 26일에 돌아가셔서 그 전날인 25일에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고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이 크리스마스에 뭐 하냐고 물으면 아무 생각 없이 '할아버지 제사야'라고 답했는데 그때마다 다들 '앗, 아아...' 하던 기억이 난다. 내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 잘 몰랐는데 커서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다.
몇 년 전 아빠는 집안의 모든 제사를 없애기로 결단을 내리셨다. 거의 50여 년간 이어진 할아버지 제사와 30년 가까이 된 할머니 제사를 포함해 명절 차례까지 모두 지내지 않기로 한 것. 고민하시는 아빠께 엄마가 그러셨다고.
이제 시대도 많이 변했고, 마음이 중요한 거니까 우리가 산소에 가서 간단하게 지냅시다.
그렇게 우리 집에서 제사와 차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꽤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를 감안하면 큰 변화였다. 다른 집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실제로 우리 집은 여자는 대대로 제사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제삿날이 되면 여자들은 부엌에 모여 음식을 만들고 남자들은 큰방에 모여 상을 펴고 제문을 준비하는 등 각자의 일들로 바빴는데 막상 제사가 시작되면 큰방에는 오직 남자 어른들과 할머니만 들어갈 수 있었다. 금녀의 구역이라도 되는 듯 여자들은 부엌에서 큰방을 흘끔거리며 보기만 하는 것. 그런데 어쩐 일로 나는 어린 시절부터 제사에 참여해 절을 올리고 술도 받았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도 항렬 중 제일 막내이기도 하고 그사이 시대가 좀 변했던 것 같다. 제일 큰고모의 첫아들이 52년생이고 내가 84년생이니 30년 정도면 확실히 그럴 만도.
아직 어렸던 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게 신이 나서 늘 조금은 흥분해 있었는데, 제사가 시작되면 할머니가 조용히 나를 불러 무릎에 앉히고 다독이시던 생각이 난다. 그때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신위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나는 차마 문턱을 넘지 못하던 언니들을 곁눈질하며 남자 어른들의 옷깃에 묻어온 차가운 공기에 이따금 숨을 깊이 들이마시곤 했다. 흐릿한 불빛 아래 어느 순간 어른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엎드리면 엉거주춤 따라서 엎드리고,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면서 같이 웅얼거렸던 기억. 오빠와 함께 앞으로 불려 나가 어설프게 술을 받고 몇 번 돌리고 버리고- 제문이 타오르면 겁을 먹고 바라보다가 갱물이 무서움증을 없앤다고 하여 경쟁하듯 받아먹던 기억도 있다. 제사가 끝나면 제일 먼저 생밤을 집어 까드득거리며 먹고 약과를 다른 손에 쥐고 우당탕탕 마루를 뛰어다녔다. 복작이는 부엌에 얼굴을 내밀면 밤 열 시가 넘었는데 그제야 다시 저녁이 시작된 듯 국과 밥을 나르는 데 여념 없는 어른들의 모습이 보였다. 큰방이고 부엌이고 한창 이야기꽃이 피어오르고 어른들 사이에 끼어 부지런히 밥을 먹고 나면 크리스마스는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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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도 그래서 늘 조금 앞당겨 받거나 뒤늦게 받거나 했던 것 같다. 그런데도 별다른 의심을 안 했다니 정말 착한 어린이였군! (네??) 오빠도 나도 꽤 늦게까지 산타를 믿었는데 다른 아이들에 비해 조금 순진한 구석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산타는 지금도 믿고 싶다. 얼마나 멋지고 귀여운 일인가. 전 세계가 합심해 동심을 지켜주는 일이라니. 어떤 마음을 소중하게 지켜주는 일만큼 보람 있고 멋진 일도 드물다. 사실이 꼭 정답이 되는 건 아니니까. 갑자기 생각나는 재미난 기억 하나.
어제 조카 린이가 산타 할아버지는 이제 어디까지 왔느냐고 자꾸 물어보는데(린이는 올해 여섯 살이 되었다) 아빠와 엄마가 동시에 이렇게 외쳐 버리셨다.
아빠: 부산! / 엄마: 수원!
부산과 수원은 너무 다르잖아요...... 잠시 동안 정적이 흐르고 결국 아빠께서 굉장한 헛기침과 함께 일장연설로 수습하셨다. 에... 그러니까, 지금 산타 할아버지가 부산에 도착했는데 거기에 사람이 많아서 시간이 좀 걸리는 데다가 하필 또 눈이 많이 와서... 아무튼, 서울에는 오늘 밤이나 내일이 되어서야 도착 예정이고...
수습이 된 건가 모르겠다. 린이는 제 할아버지의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자기가 요즘 잘 울고 떼를 썼다며 아무래도 선물을 못 받을 것 같다고 울상이다. 하하, 떼를 써서 선물을 못 받을 거라고 걱정하는 여섯 살이라니! 너무 귀엽다. 반성을 잘했으니 반드시 받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산타 할아버지 들으셨죠? 하고 허공에 대고 퍼포먼스도 좀 해 줬다. 연말만 되면 온 세상 어른들의 연기력이 대폭 상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즐거운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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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크리스마스도 거의 다 지났다.
오늘이 지나면 '어제'라는 기억의 층에 하루가 또 쌓인다. 살아갈수록 그리움이 깊어지는 건 그래서인가 보다. 자리에 누워 귤을 까먹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귤 바구니가 비었다. 체감상 귤을 한 박스 정도는 까먹은 것 같다. 오, 뭐야 미쳤군. 벌써 정오잖아? A ㅏ... 운동 가야지. 어기적 어기적 운동 가방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눈이 다 내리고 난 하늘은 말끔하게 개어 아주 파란빛이었다. 좋아하는 천변 길을 걸어 운동을 하고 돌아 나오는 길. 문득 어느 쪽이든 참 좋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식구들과 북적이며 제사를 지내고 다 같이 밥을 먹던 크리스마스 밤도 좋았고, 이렇게 나만의 시공간 속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형태의 하루를 지켜 가는 크리스마스도 참 좋다. 앞으로 다가올 언젠가의 크리스마스도 이렇게 좋을 것이다.
연말을 보내며 좋은 기억들에 닻을 내리자, 라는 다짐을 반복 중이다. 슬프고 힘든 시대를 건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했던 행복한 기억들에 단단히 닻을 내리면 그것만큼 나를 굳세게 지탱하는 힘도 없을 것. 그러면 어떤 풍파가 와도, 끝내 버티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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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드디어 30분을 뛰었다. 30분을 돌파했으니 이제 35분과 40분도 뛸 수 있을 것이다. 내년 3월 마라톤 전까지 한 시간을 안정적으로 뛰는 것이 목표이다. 그사이 지수는 치앙마이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10킬로미터를 거뜬히 뛰고 돌아왔다. 멋지다! 그런 소식이 정말 힘이 된다.
나도, 끝까지 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