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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May 17. 2021

코로나... 진짜 정말 진심으로 망해라

코로나 19 검사 경험에 관한 짧은 기록



3월의 어느 날 밤 10시 15분.

S와의 긴 통화를 끝내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이불속을 파고들며 카톡을 열어 보는데 M 선생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샘ㅜㅜ 통화 끝나면 전화 주세요.


뭔가 불길했다. 한 시간 전쯤 단톡방에 뜬 메시지를 보긴 했었다. 지금 바로 '또 다른 전체방'으로 모이라는 지시. 나는 퇴사 예정자라, 내가 속해 있지 않은 새로운 톡방으로 모이라는 뜻으로 알고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급하면 전화가 오거나 뭔 소식이 있겠지. 그리고 '정말로' 전화가 와 버린 것이었다. 깜짝 놀라 얼른 M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무슨 일이에요? 저 뭐 잘못했나요?


선생님... 그게 아니라... 학교 유학생 중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대요...



정말이지 좋은 하루였다. 퇴사를 앞두고 간신히 얻어낸 귀중한 연차였고, 그날 나름의 미래 설계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없이 평화롭게 맞이한 밤. 내일은 뭐하지, 통닭이라도 한 마리 시켜 먹을까, 오랜만에 커피도 한 잔 하고 일찌감치 달리기도 끝마쳐야지. 룰루랄라-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이 소소한 행복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쁜 놈의 코로나. 진짜 정말 진심으로 망해라! 작년 여름에도 검사를 받게 만들더니 또구만. 이번에는 또 어떻게 된 일인지 들어나 보자.


근무처가 대학이다 보니, 개강 이후로 학생들이 많이 늘긴 했었다. 방학 때는 썰렁하던 건물 복도가 바지런히 오가는 청춘들로 북적여 걱정이 되면서도 내심 '그래, 이게 캠퍼스지' 싶어 안도감도 들었는데 코로나는 '안도하는 순간' 다시 찾아온다고 했던가. '코로나가 터졌다'는 말을 듣자마자 멘탈이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오, 맙소사...! 이번 주에 내가 누구를 만났더라?! 한 주가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과거의 나를 스스로 역학 조사하는 동안 M 선생님은 차분히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유학생은 전날 저녁에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다행히 나를 포함한 사무실 사람들 중에는 접촉자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주로 고교 연계 사업을 하는 터라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보면 학생들과는 만날 일이 거의 없다. 확진 판정을 받은 유학생도 대부분 온라인 수업을 했다고. 그래도 찜찜했다. 혹시 1초라도 마주친 적이 있었으려나? 화장실? 복도? 하, 마스크. 마스크 했었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만 망하는 게 아니라 내 가족, 친구들, 나와 접촉한 모든 사람들이 같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벌써 주눅이 들고 괴로워졌다.


선생님, 걱정 마세요. 제가 전화드린 건 저희가 고등학교에 입학 설명회를 나가야 하니까... 그래서 저희는 선제적으로 검사 다 받기로 했거든요. 접촉자 아니어도 이제는 무료로 검사 가능하니까 선생님도 한번 받아 보시라고 그래서 연락드린 거예요. 아니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M 선생님이 정말 고마웠다. 그녀는 1년 동안 내게 큰 은인이었다. M 선생님, E 선생님. 그녀들이 없었다면 난 정말로 정말로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놈의 회사. 왜 나한테는 연락을 안 했지? 아직 퇴사자 아닌데? 나도 이번 주에 학교에서 근무했는데? 설명회를 안 나가니까 검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나? 그럴 수 있겠다. 그래도 그렇지. 나도 아직 일주일은 더 나가야 하는데. 난 뭐지? 난 이 조직에서 대체 뭐냐고!! ...뭐긴 뭐겠어. 그냥... 퇴사 예정자. 나갈 사람. 아니 어쩌면 이미 나간 사람. 훗.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우선 이번 주에 만났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가장 큰 건 27일로 예정된 디아츠의 공연. 2016년 이래로 나는 소라와, 또 은신과 함께 '디아츠'라는 이름의 그룹을 결성, 몇 차례의 연주회를 기획하고 진행해 오고 있었다. 성악가인 소라, 피아니스트 은신, 글 쓰는 내가 함께 꿈꾸어 볼 수 있는 일이 뭐 없을까 고민하다가 시작한 이 일은 벌써 5년째 이어지고 있다. 노래와 시 때로는 글이 만난 자리에서 사람들이 다시 새롭게 꿈꾸고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 그래서 클래식을 어렵게 느끼던 대중들도 자연스럽게 음악에 젖고 시에 스며들어 행복하게 돌아가는 것. 그 행복감이 다시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전해지고, 문화 자본이 어느 한 세대, 어느 집단의 전유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널리, 소소하게 퍼져 나가는 것. 그게 우리의 꿈이었다. 그래서 어려운 가운데서도 꾸준히 좋은 곡들을 선곡해 대중과 만나는 소박한 자리를 마련해 왔고, 이번에는 작지만 아름다운 음악홀을 빌려 좋은 연주를 선보이기로 했었다. 1월부터 가슴 설레며 조심조심 준비해 왔는데 맙소사... 일을 그르치면 어쩌지? 하필 수요일에 디아츠와 만나 마지막 합을 맞추었더랬다. 나는 스토리텔러의 역할이라 말도 많았는데. 아, 진짜... 코로나... 망할.


뭐, 어쩌겠나. 일은 벌어졌고, 이럴 때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 재빠르게 수습하는 것이 제일이다. 힘을 내 보자. 힘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힘을 내 보자! 가장 가까운 보건소를 찾아 동선을 파악한 후 억지로 눈을 붙였다. 아침 9시부터 길게 줄을 서니 일찍 가는 게 상책이라 했다. 아, 내 단잠 안녕- 8시 반까지는 가야겠다. 코로나 검사 자체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은 이제 없다. 그런 건 이제 전혀 중요하지 않다. 건강할 것. 아무 일 없을 것. 음성일 것.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건강히 살아남을 것. 물론 내 뜻대로만 되지 않고, 아차 하는 순간에 미끄러져 버릴 수 있는 아슬아슬한 시국이라 걱정이 컸지만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하게, 최선을 다해 건강하게 살아 있을 것. 이런저런 생각으로 수선스런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았다.



잔뜩 흐린 아침. 부지런히 길을 나서 보건소에 도착하니 8시 30분이었다. 보건소 앞은 휑하니 비었다. 멀찍이 아주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8시 15분에 오셨다고 한다. 휴대전화로 신생아가 꼬물대는 영상을 계속해서 보시는 걸 보니 아마도 아이를 출산한 가족을 보러 조리원에 가시려는 모양이다. 요즘에는 음성 판정을 받은 후에라야 들어갈 수 있는 시설들이 늘고 있다고. 확실히 그 편이 안전할 것 같다. 줄을 서 있는데 1분, 1분 지날수록 줄이 늘어난다. 다들 불안하고 불편한 기색이다. 저 사람들은 다 왜 왔을까. 동선이 겹친 걸까? 아니면 나처럼 불안한 마음에 선제적 검사를 받으러 왔나? 어느 쪽이든 힘든 일이다. 서로 얼마간 경계를 하며 널찍널찍 떨어져 섰다. 아침부터 비라도 올 듯 꾸물거리더니 한 두 방울씩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왠지 으슬으슬한데... 목도 좀 칼칼하고... 기분 탓인가? 손을 소독하고 핸드크림을 바르며 코를 킁킁댔다. 너무나 향기로운 것. 그러고 보니 아침에 바나나 두 개를 잘만 먹었다. 미각도 아무 이상 없다. 무증상의 증상이려나 그럼? 쓸데없는 생각이 줄을 잇는 사이 9시가 다가왔다.  


9시가 되자 보건소 의료진이 나와 펜스를 치우고 검사 동선을 재정비했다. 정말 고생이 많으시다. 방호복이 참 무겁고 힘들어 보였다. 한 번에 4명씩 움직였다. 먼저 동선의 초입에서 손을 소독하고 비닐장갑을 한 켤레 받아 착용한다. 그 상태로 각자 흩어져 문진표를 작성하고, 문진표를 받은 의료진이 좀 더 상세히 구두로 질문을 한다. 왜 검사를 받는지, 코로나 증상은 없는지 등. 나중에 들으니 M 선생님이 받은 보건소에서는 검사 이유를 따로 묻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초입을 통과해 동선을 쭉쭉 진행한다. 다음은 코로나 검사 키트를 받을 차례. 면봉과 검체를 담는 작은 통이 한 세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걸 받고 기다리고 있다가 차례가 되면 한 명씩 움직여 검사를 받는다. 검사 담당 의료진에게 키트를 내밀면 검사 시작.


검사는 순식간에 끝났다. 눈밑까지 찌르는 싸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리고 콧물이라도 딸려 나올까 봐 약간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검사 즉시 삑- 음성입니다 하고 바로 결과가 나오는, 뭐 그런 거 없나. 뻥 안 치고 4초 만에 검사가 끝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검사 후에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무조건 자가격리이다. 집에 먹을 게 없고, 커피도 너무 마시고 싶었지만 혹시 몰라(그놈의 혹시 몰라...) 다른 곳에는 들르지 않고 그냥 들어왔다. 경험상 '진짜 전전긍긍'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혹시...? 이럴 땐 한 판 뛰고 돌아오면 딱 좋을 텐데 망했네, 망했어. 지웠던 배달앱을 다시 깔았다. 뭘 먹을까. 매운 거. 화끈한 거. 그리고 잠이나 자자. 국물떡볶이와 주먹밥 세트를 시켰다.  


잠은 오지 않았고, 떡볶이는 맵지 않았다. 마음대로 되는 게 정말이지 하나도 없다. 괴로움을 해소하려 하면 할수록 괴로움이 더 커지는구나. 그릇을 대충 치워 놓고 자꾸만 시계를 봤다. 그러다가 검색에 들어갔다. 음성 판정, 양성 판정 전화, 검사 결과, 다음날 통보... 어쩌구... 이미 다 알고 있는 절차였지만 그래도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밤이 되자 더욱 떨렸다. 아닌 것 같기는 한데 말이지. 내가 알기로 양성이면 밤중에라도 전화가 온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말인즉슨, 검사 결과는 5~6시간이면 나오는데, 양성 판정받은 쪽에 먼저 연락하느라 음성은 늦게 아침에 일괄 문자로 간다고 했다. 그게 맞다면, 자정이 넘은 시점에서 잠잠하다는 건? 난 역시 음성이야!! 하하하하!! 방역 수칙 잘 준수했다고!! 하하하하!! 아시다시피, 사람은 걱정되고 떨릴수록, 자신이 없고 스스로가 괴로울수록 괜한 소리가 많아지고 목소리도 덩달아 커진다... 만고 불변의 진리다. 큰소리 뻥뻥 친 후에 조용히 벨소리를 최대치로 해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7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문자는 아직 없다. 잠깐 눈을 붙였다 뜨니 8시. 여전히 전화기는 잠잠하다. 벌떡 일어나 커피를 한 잔 타서 들고 거실을 서성였다. 으- 나가고 싶다. 나가야 할 때는 집에 있고 싶더니만.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 사 오고 싶다. 새콤달콤 먹고 싶다. 9시. 여전히 문자는 없다. 초조하게 흘러가는 시간. 9시 30분이 되었다. 그 순간 붕- 하고 휴대전화가 울렸다.


귀하께서 검사한 코로나 19 검사 결과 음성(Negative)으로 판정되었습니다.


흑흑흑. Negative. 내 생애 가장 즐겁고 행복한 Negative였다. 바로 모두에게 알리고 늴리리야 춤을 추고 뛰쳐나가 달리기를 마치고 분리수거도 하고 그랬다!!!!! ...면 좋겠지만 막상 받고 나니 금세 기쁨이 사그라들고 귀차니즘이 솟아나 그냥 자리에 누워 버렸다. 전에도 말했지만 사람은 참 안 바뀐다. 하루 반나절 동안 걱정하느라 모든 에너지를 다 쏟은 탓일까. 너무도 감사한 결과였지만, 코로나가 끝나야 진정으로 행복할 것 같다. 당최 뭔가를 진지하게 해 볼 수가 없다. 슬프다.


보건소 앞을 지날 때마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다들 어떤 이유로 검사를 받을까 궁금했는데, 이렇게 바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하루하루가 예상대로만 흐르지는 않으나, 그 안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바들은 분명히 있을 것. 바로 그 일들을 하며 차분히 이 시간을 지난다. 정확히 응시하며, 경거망동하지 않으며.


이상, 만 하루를 상당히 경거망동하며 보낸 자의 기쁘고도 쓸쓸한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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