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면 돼
나는 좀 더 쉽게, 큰 돈을 만지고 싶었다. 중고거래로 사기치는 것은 매번 게시글 작성이 필요했고 쇼핑몰 진상 짓을 하는 일도 예상보다 귀찮았다. 입사만 하면 간쓸개 다 내놓고 일하겠다 맹세하던 신입사원이 3개월 뒤엔 불로소득을 꿈꾸며 출근을 부정하는 것처럼. 나는 더이상 번거로운 사기행위를 저지르기가 싫어졌다. 귀찮아. 이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요?
"기반만 잘 닦아놓으면 무한대로 뜯어낼 수 있어."
"무한대? 그럼 덜미를 잡히지 않을까?"
"알잘딱깔센으로 해야지."
푸념을 들은 K는 싹이 노랗다며 기뻐했다. 불로소득을 위해 다음 사기스텝을 가르쳐달라는 나에게 그는 웃음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이번에 알려준 방법은 여태껏 경험한 사기와는 달랐다. 무조건 '현금'을 받을 수 있는 사기였다. 다만 시작 전에 까탈스러운 조건이 많았다.
"니가 다른 사기꾼들보다 똑똑하단 걸 증명할 수 있어야 돼."
"왜?"
"이번 사기는 고도의 심리전을 이용하거든."
그가 알려준 건 바로 로맨스 스캠이었다. SNS를 기반으로 이뤄지며, 사랑을 미끼로 돈을 뜯어내는 수법이다. 일전에 뉴스에서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이런 사기를 당하는 사람이 있....나?
"차고 넘치도록 많아. 돈 뜯어낼 주머니도 그만큼이나 많아."
K는 익명 부계정으로 팔로우한 SNS 유저들 목록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사진 몇 장을 연속적으로 보여주었다. 거기엔 특징이 있었다. 모두 혼자사는 1인가구이며, 중장년층이었고, 외로워보인다는 점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건 사기가 아닐 걸? 외로운 사람들 대상으로 말벗 좀 해주고 소소하게 돈을 받는 거지. 우리가 협박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돈 달라고 뺨을 때리지도 않아. 그냥 알아서 주게끔 만드는 거야."
그가 설명해준 방법은 이러했다.
인스타 계정을 하나 만든다.
사진과 정보는 모두 그럴 듯 하게 도용한다.
#외로움 #1인가구 #독거 #자취중
#소개팅시켜줘 #싱글 #사랑하고싶다
가급적 혼자 사는 *중장년층을 타겟으로 삼는다.
사진이나 글귀만 보아도 그 사람이 애정과 사랑을
갈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사례가 많다.
"너무 제 스타일인데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저는 동탄에서 거주 중인 의사 입니다."
본격적으로 DM을 보내 친밀감을 쌓고
1:1 개인 메신저로 옮겨간 다음,
연인 행세를 한다. 이 과정에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포기하지 말 것.
그 다음 스텝. 만남 직전에 돈을 요구한다.
"우리 오늘 7시에 만나기로 했잖아?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가 쓰러지셨어.
지병 때문에... 하... 수술비가 당장 부족한데
30만원만 보내줄 수 있을까...? 부탁이야..."
패턴은 무궁무진하다.
키포인트는 동정심을 유발하고
'돈을 줘야만 너를 만난다'를 어필할 것.
*중장년층= 젊은층의 경우 로맨스스캠에
잘 당하지 않을 뿐더러, 보복하려 한다.
한마디로 만남을 미끼로 돈을 요구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피해자와 가해자'로 묶인 것이 아닌, '사랑하는 연인'임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상대가 사기를 당하면서도 사기인줄 모르게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한다.
"보통은 해외에다 서버를 두고 조직적으로 진행해."
"그럼 나같은 사람이 신고하면 바로 잡히는 거 아냐?"
"그러니까 똑똑해야 한다는 거야."
K는 자신의 통장 잔고를 보여주었다. '이숙임' 이라는 이름으로 여러번 이체된 기록이 있었다. 그 누적액은 약 2백만원에 달했다. K의 설명을 들어보니 이 정도 금액은, 로맨스스캠 조직들에 비하면 굉장히 적은 수준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한달 즐겁게 살기에는 충분한 돈이 아니겠냐며.
그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었다. 이윽고 웬 여자로부터 보이스톡이 걸려왔다.
"자 니가 숙임 씨를 대신 상대해줘."
"나는 이 사람을 몰라!"
"잘 들어. 난 김기태라는 이름으로 지금 숙임 씨랑 3개월째 연애중이야. 만남을 빌미로 2백만원을 뜯어냈어. 그런데 알고보니 난 유부남이고 네가 내 부인인거지. 그래서 네가 숙임 씨를 상간녀로 고소하겠다며 마구 날뛰어주면 돼. 이 사람이 신고는 커녕, 혹시라도 상간녀가 될까봐 발발 떨게 만드는 거야. 재미있겠지?"
"재미...?"
K는 로맨스스캠을 자신의 방법대로 변형하여 즐겨왔다. 그는 해외에 서버를 둔 조직도 아니거니와,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사용할만큼 체계적이지도 못했다. 아시다피 우리는 겨우 고등학생이니.
베테랑은 도구를 가리지 않았고 K는 여건을 따지지 않았다. 그는 상대방을 가스라이팅해서 '신고 하지 못할 상태'로 만들어달라 요구하는 중이었다. 만약 K가 정말 유부남이고, 내가 그의 부인이라면 숙임 씨는 한순간에 상간녀가 되는 거다.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이라 믿었겠지만 졸지에 불륜이 돼버린 상황. 게다가 정작 상대의 얼굴을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상간녀가 될 위기에 처했으니.
숙임 씨는 부끄럽지 않고 버틸 수가 있을까. 어디가서 말이라도 할 수 있을까? 내가 이 나이를 먹고,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한테 돈을 퍼줬는데 유부남이래요- 라고 호소할 수 있을까?
"기태 씨 저 숙임인데 왜 연락이-"
"야 너 뭐하는 X이야? 나 김기태 마누라다. 너 내 남편이랑 메세지 주고 받은 거 모를 줄 알아?! 우리 남편 직업보고 이러는 거지?! 너 사는 곳 00이고 회사 00라며? 어디 한번 망신 좀 당하게 해줘야겠다. 너 내가 불륜으로 #$%^&"
숙임 씨는 수치스러움을 이기고 경찰서로 갈 수 있을까. K는 그 지점을 노린 거다.
"됐어. 그 정도면 나가떨어질 사람이야. 워낙 유약해서."
"그래."
"근데 난 그렇다쳐도, 넌 양심의 가책을 안 느껴?"
K는 법의 허점이 아닌 인간의 허점을 갖고 노는 녀석이었다. 그가 말한대로 똑똑해야만 칠 수 있는 사기다. 그러게 모두가 다 보는 공간에다가 외로움을 전시하면 되겠어?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사람에게 돈까지 준다니 너무 어리석은 행동아니야? 좋아서 줬잖아. 안 그래? 내 말이 틀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양심의 가책, 그건 내가 아니라 숙임 씨가 앞으로 두고두고 느낄 감정이야.
"안 느껴. 다음에 내가 하게 되면, 네가 남편 역할을 해줘."
"얼마든지."
우리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여름바람을 맞으며 공원으로 향했다. 아직 한낮이었고, 나눌 대화가 많았다. 숙임 씨는 더이상 기태 씨에게 연락하지 못했다. 바보같긴.
(향후 '자산관리 사기' 계속.)
(사기를 키워드로 하는 연재소설!!입니다.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VYM3485g6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