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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Dec 29. 2019

땅에 속한 사람, 밀레

농촌 화가 밀레가 그린 대지의 서사시

https://artlecture.com/article/1294


밀레의 그림에 대한 오해


Jean-François Millet, The Gleaners, 1857



세계적인 명화로 손꼽히는 그림 중에는 밀레의 그림이 빠지지 않는다. <이삭 줍기>와 <만종> 무려 두 점이나 된다.

그림의 유명세와 대중성만큼이나 복사본도 넘쳐난다. 구매자를 얼른 못 만난 <만종>은 여러 사람의 수중을 전전하며 미국으로 건너가 대량 복제되었고, 급기야 소유권을 두고 미국과 프랑스 간의 국제분쟁에 시달리며 미국과 프랑스를 떠돌다가 루브르 그랑 마가쟁의 책임자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알프레드 쇼샤르의 구매에 의해 마침내 고국 땅을 밟게 되었다.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각지에서 달력이나 벽지, 과일을 담는 쟁반, 차를 담는 틴 케이스 등에 프린트되며 방방곡곡 퍼져나갔다.


도처에 널린 가짜 그림 때문에 식상해진 탓일까. 밀레의 그림은 대중적인 그림이라면 쉽게 얕잡아 보려는 교양 있는 사람들의 싸구려 감상으로 작품의 예술성이 격하되기도 한다. 그러나 복사본의 범람으로 원본을 감상하는 데 실패한 탓을 어찌 밀레에게 물을 수 있단 말인가.


하기야 밀레의 그림에 대한 오해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이지적인 문인 고티에와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화가 고흐가 격찬해 마지않는 밀레의 그림이었으나, 당대의 관습적인 화풍과 도시성의 유행에 경도된 보수적인 비평가들에게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은 한낱 '누더기를 걸친 하수아비들'에 지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 여인들의 강건한 육체에 조각처럼 각인된 품격과 진실을 볼 수 있었더라면!




대지와 인간


Jean-François Millet, The Angelus, 1857-1859



오늘날 밀레의 <이삭 줍기>는 말을 탄 감독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 여인이 허리를 잔뜩 숙이고 땅에 떨어진 이삭을 줍는 장면과 이들의 남루하고 비슷비슷한 옷차림을 근거로 당대 서민계층의 노동 실상을 보여주는 텍스트로서 논의된다.


저녁종 울리는 소리에 일을 멈추고 조용히 기도를 올리는 부부의 모습을 그린 <만종>에서는 쇠스랑 곁에 선 남성을 땅을 경작해 가정을 책임지는 농부로, 감자 바구니와 손수레 곁에 선 여성을 먹거리를 책임지는 아내와 어머니의 상징성으로 보며 남녀의 역할 분업을 설명한다.*


그러나 감상자에게 보다 요청되는 그림의 감상법은 모름지기 회화에서 보이는 독특한 표현방식을 눈여겨보고, 화가가 농부의 삶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이 무엇일지 상상해 보는 것일 게다.



Jean-François Millet, The_Sower, 1850

 


이를테면 현대 세계와는 동떨어진 농촌생활이 어째서 현대적 삶을 사는 화가 밀레에게 절대적인 주제가 되었는지, 왜 하필이면 척박하고 황량한 들판에 경도되었는지, 씨 뿌리는 농부의 거친 동작 속에서 왜 미켈란젤로식의 웅장함과 기품이 느껴지는지, 그림은 왜 유독 늦은 오후와 해질 무렵의 시간성을 띄는지, 밀레는 "어째서 감자를 재배하는 사람의 행동이 다른 어떤 활동보다 덜 흥미롭고, 덜 고귀한 것처럼 여겨집니까?"라고 따져 물었는지를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밀레의 생각과 마음을 헤아려 보는 일에 그가 남긴 편지나 일기는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된다. 1865년, 그는 친구에게 쓴 편지에 만종을 그리게 된 계기를 밝히고 있다.




"<만종>은 내가 옛날의 일을 떠올리면서 그린 그림이라네. 옛날에 우리가 밭에서 일할 때, 저녁종 울리는 소리가 들리면, 어쩌면 그렇게 우리 할머니는 한 번도 잊지 않고 꼬박꼬박 우리 일손을 멈추게 하고는 삼종기도를 올리게 하셨는지 모르겠어. 그럼 우리는 모자를 손에 꼭 쥐고서 아주 경건하게 고인이 된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곤 했지."**





땅에 속한 사람


Jean-François Millet, Man with a Hoe, 1860-1862



만약 톨스토이의 농부가 시각화된다면 꼭 밀레의 농부를 닮지 않았을까?


땅과 결합된 순박함, 근면함, 불쌍한 사람을 동정할 줄 아는 선량함, 그리고 신앙심이 깊은 밀레의 농부는 남루하지만 긍지에 차 보이는 모습으로 고티에의 평처럼 "마치 자신이 씨를 뿌리는 그 땅의 흙으로 칠해진 듯 보인다."


삶의 조건으로서의 대지는 황량하고 척박하다. 그러나 이 혹독한 삶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씨를 뿌리고, 땅을 갈고, 풍성한 추수를 기대하고, 두 손 모아 감사와 소망을 담은 기도를 올리는 모습에서 교회의 종소리와 같은 웅변적인 숭고함이 왕왕 퍼진다. 농민들에게 대지는 구원이요 노동은 순교와도 같으리라.



Jean-François Millet, Calling Home the Cows, 1872



하늘에는 어둠침침한 구름이 몰려들고 저녁 햇살에 대지는 붉게 물든다. 고요하고 불가사의한 빛이 드리운 밀레의 그림은 한 폭의 지고한 종교화가 된다.

우리들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하되 스스로는 생각하지 않는 사물처럼, 농부는 돌덩어리와 같은 부동성으로 대지에 우뚝 섰다.

그러나 돌덩이란 것이 본디 유구한 세월 속에 갖은 풍상과 온갖 이야기를 품은 응고물이 아니던가.

어쩌면 당대의 비평가들이 밀레의 농부를 향해 던졌던 조롱은 이 진실에 대한 불편함과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이정임 옮김, <창해ABC북-003밀레>,창해, 2001.

** 위의 책.




글_아트렉처 에디터_양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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