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마시의 컬러링 라이프
https://artlecture.com/article/1470
전시정보: https://artlecture.com/project/4632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나온 지도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특정 시대의 소품과 생활, 유행과 감정들을 잘 살려 인기를 끌었는데,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뿐 아니라 지금 세대에게도 왠지 모를 향수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은 상당히 주목할 만하다. 향수라는 게 단순히 물리적으로 존재한 시간을 넘어 감정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재밌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가 살기 팍팍할수록 과거를 그리워하게 되는 건 한국이나 외국이나 비슷한 것 같다. 영화 ‘미드나이트 인 파리’를 보면 현재에 사는 주인공들은 저마다 과거의 어떤 영광스러운 순간들을 황금기라고 보고 그 황금기에 있는 사람들은 그보다 이전이 황금기라고 생각한다. 모든 등장 인물에게 현재는 어서 벗어나고 싶은 곳이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과거를 그리워할까? 현재는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고, 과거는 지나간 추억이라는 설명은 너무 포괄적이다. 그보다는 현재 시시각각 마주해야 하는 모든 물리적, 감각적, 감정적인 경험에 우리가 지쳐있고, 그것의 반대급부에 있는 과거의 어떤 순간을 대비시키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현재는 한정돼 있고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정보는 그보다 많으니 당연히 현재가 언제나 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을 끝까지 붙잡고 내려가다 보면 항상 ‘어린 시절’이 있다.
나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어릴 때가 좋았어.” 꼭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다. 친구들은 맞장구치고 간혹 우리 아버지에게서도 그런 모습이 보이곤 한다. 새마을 간척사업으로 변해버린 고향을 찾으실 때마다 넓게 펼쳐진 논을 보며 바다를 그리곤 하셨다. 그리고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본인의 추억을 하나씩 꺼낼 때면 당신의 눈엔 당시가 아른거렸다. 이렇듯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찬장 속 사탕처럼 하나씩 꺼내먹는 전시를 최근에 보고 왔다. 제인 마시의 <컬러링 라이프>, 혹시 ‘현재’에 지쳐있다면 잠깐이라도 괜찮으니, 누가 뭐라고 하지 않으니 전시를 보며 자신의 ‘황금기’를 떠올려보자.
이 전시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먼저 색의 대비가 돋보인다. 인물에 대해서는 흑백으로, 사물에 대해서는 원색을 쓴다. 여기서 흑백으로 표현된 인물은 흐릿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나타내지만, 덕분에 그 속에 누구든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같이 보여준다. 전시를 보는 관람객은 그 속에 자신을 투영해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면 된다. 그리고 원색을 사용한 사물들은 그런 흐릿한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도 유난히 뚜렷한 상황과 사물에 대한 기억을 보여준다. 또 유아틱하지만 따뜻한 작가의 시선이 담겨 있다.
사물들은 때론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상상 속 친구 ‘빙봉’처럼 여러 가지로 변하기도 한다. 연필이 미끄럼틀이 되고 자가 길이 되는 신기한 마법은 우리도 한 번씩 겪어봤을 것이다. 스스로 규칙을 세워 같은 색의 보도블록만 밟는다던가, 돌과 모래를 모아 밥을 짓고 나뭇가지로 먹었던 소꿉놀이도 모두 우리의 기억 속에 잠들어 있다. 작가는 이런 기억을 모아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상을 되돌아보게 한다. 전시로 인해 마주하는 어린 시절의 나는 그립지만 동시에 생경하고 낯설다. 그리고는 너무 변해버린 지금의 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하상욱 시인의 ‘그리운 건 그대일까, 그때일까.’라는 시가 저절로 떠오르는 전시였다.
집에 와서 오랜만에 앨범을 뒤져봤다. 나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 사람 같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시절에 계속 있지 않을까?..
글 아트렉처 에디터_쇼코는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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