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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Apr 06. 2020

리처드 롱의 걷기

https://artlecture.com/article/1551


사십 년째 걷는 것으로 예술을 하는 작가가 있다. 나는 작가의 이름조차 몰랐던 2009년 여름 그의 사진들을 처음 봤다. 그리고 기억에 아주 오래 남았다.


1964년 18살 리처드 롱은 영국 브리스톨 근처 웨스트 잉글랜드 미술대학 West of England College of Art 학생이었다. 눈이 내리던 겨울날 눈밭 위를 혼자 걸었다. 작은 눈덩이를 만들어 굴리기 시작했다. 눈사람을 만들 만큼 커진 후, 뒤돌아보았을 때 눈덩이가 지나간 하얀 길이 있었다. 롱은 사진을 찍었다. 언젠가는 사라질 눈길을 기록하고 자신이 눈덩이 만드는 행위에 <Snowball Track>이라고 이름 지었다.



리처드 롱 Line made by walking, England, 1967년 © Richard Long



그리고 3년 후 런던 새인트 마틴 대학 Saint Martin's School of Art 에서 공부하던 1967년 어느 날 워털루 역에서 기차를 잡아탔다. 한참을 달려 외곽으로 나오자 벌판이 보였다. 롱은 기차역에 내렸다. 그리고 벌판으로 들어가 왔다 갔다 같은 구간을 반복해서 걸었다. 반복되는 걷기. 몇 시간이 지나자 아무것도 없던 땅 위에 눈에 보이는 길 한 줄 만들어졌다. 사진기를 들어 찍었다. 그의 첫 작품인 <Line made by walking>이다.


그렇게 그의 걷기는 시작되었다. 영국을 떠나 아일랜드, 스위스, 캐나다, 오스트리아, 인도, 네팔, 중국, 히말라야까지 간다. 걸어서 길을 만드는 작업은 지질학적, 사회적, 형이상학적, 어떠한 개인적 의미도 담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걷기는 섬세한 작업 같아 보인다.



리처드 롱 A Line in the Himalaya, 1974년 © Richard Long



예술 작품이 돈을 주고 사는 것이며 보안이 잘 되는 장소에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은 완성되었다가 사라지는 일회성 작품들이 낯설지 않다. 일회성, 일시성의 성격을 가진 작품의 역사는 짧다.


롱은 대지 미술가 Land Art 또는 시스템 아트 Systems art라고 불린다. 대지 미술은 1960, 70년대 개념미술에서 확장되어 나왔다. 이 시대는 부유한 기득권들이 예술을 후원하고 운영하는 상업주의를 거부하는 작가들이 나타나던 시기였다. 이들은 오랫동안 내려온 전통적인 방식으로 오브제를 만들고 그것에만 초점이 가있는 미술계에 반기를 들었다. 대지 미술은 우리 주위 세계를 확장된 개념 미술로 생각하는 첫 번째 운동의 일부분이었다. 시스템 아트 또한 이러한 일환으로 나타난 운동이다.


롱의 대지 미술은 60, 70년대 나타난 미국식 대지미술과 좀 다르다. 롱은 돈과 부동산을 사서 매매한 대지 위에 흙을 불도저로 파내는 등의 인위적인 대지 미술을 좋지 않게 바라봤다. 롱은 미국의 인디언 정신을 더 선호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보존하면서 예술을 하길 원했다.



리처드 롱 A Line in Bolivia, 1981© Richard Long



이 작품 <볼리비아에 선>은 작은 돌들을 발로 차며 걸어서 직선의 길을 만든 작품이다. 길이 아주 매끄럽지 않지만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길에 대해 작가는 “평평한 암석 지대인 데다가 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손으로 하는 것보다 효과적인 작업형태였다.” 그는 땅에 널려있는 재료들을 자연과 최대한 조화롭게 선택하고 사용한다.


롱은 1989년 영국 터너상(Turner Prize)을 수상한다. 세계적인 상을 수상한 이후에도 그는 항상 자연 어딘가로 들어간다. 그에게 자연은 잠시 휴식하러 떠나는 곳이 아닌 경험하며 발로 느끼는 공간이다. 한참을 걷다가 문득 이 곳이다 싶은 장소가 나타나면 작업을 시작한다.



리처드 롱 PADDY-FIELD CHAFF CIRCLE, 마하라슈트라 인도 2003 ⓒ Richard Long



롱의 작품은 보관하기 어렵다. 자연의 날씨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변할 수도 있다. 이런 특징들은 대지미술이 가진 기본적인 요소다. 롱의 예술은 기본적으로 행위에 기반으로 한다. 대지 위에서 행위하고 그 결과를 사진으로 남긴다. 그의 사진들은 관념적인 사진에 가깝다. 각각의 이미지들은 자연 속 시간의 기록, 행위의 기록이다. 수없이 오고 가기를 반복했던 걷기의 기록. 예술적, 미학적이라기보다 다큐멘터리와 같은 형식을 담는다.


롱의 작품은 또한 흔적이다. 발자국의 흔적을 반복해 가면서 길을 만들어, 발자국이 없는 길을 완성한다. 롱은 이렇게 말한다. “도로란 대지 표면의 인간 역사와 지리적 역사의 수많은 쌓임 위에 놓인 또 하나의 층의 표시이다.”



리처드 롱 A WALKING AND RUNNING CIRCLE, 마하라슈트라 인도 2003 ⓒ Richard Long



롱의 대지에서 걷기는 미술관, 미술가, 작품이라는 형식과 물질 고리에 메인 현실을 벗어나려는 시도였다. 물질성과 영속성이라는 모더니즘의 미술 형식을 벗어나는 도전이었다.


추상화가 파울 클레는 추상화는 ‘세상의 실제 공간 위에 놓인 것이 추상화’라고 말했다. 롱의 작품은 파울 클레나 몬드리안의 추상화가 대지 위에 펼쳐진 듯하다. 선, 면, 동그라미가 미술관 밖에 대지위로 나왔다.




리처드 롱 ROAD STONE LINE, 중국 2010 ⓒ Richard Long



이 작품은 돌들을 하나씩 가져와 길 끝과 평행선에 맞춰 또 하나의 길을 만들었다. 롱은 자연 속 흙과 물질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사용한다. 자연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그의 예술의 시작이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사는 세상. 걷기를 통해 자연 속 미술관을 찾아내 우리에게 보여준다.



<White Light Walk>

Red Leaves of A Japanese Maple

Organge Sun AT 4 Miles

Yellow Parships AT 23 Miles

Green River Slime At 45 Miles

Blue Eyes of a child At 56 Miles

Indigo Juice of A Blackberry At 69 Miles

Violet Wild Cyclamen At 72 Miles

-리처드 롱 Avon England 1987 -


참고문헌

Anne Symour and Hamish Fulton, Richard Long: Walking in Circles, New York: George Braziller, 1991, p.51

John Beardsly, Earthworks and Beyond, New York: Abbeville Press, 1989, p.42




글 아트렉처 에디터_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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