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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Apr 12. 2020

사랑의 약속

프랭크 딕시(Frank Dickee)에 대하여

https://artlecture.com/article/1557



이 세상에 사랑만큼 달콤하고도 쌉싸름한 것이 또 있을까? 그리고 사랑에 대한 맹세와 약속이 영원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이 아침 생각해 본다. 약속과 맹세란 무릇 지키기 위해 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으며, 때로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기도 한다. 즉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경우를 우리는 역사 속 인물이나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나 소설 등에서 마주할 때면 아...... 나에게도 저러한 사랑이 나타난다면 그 행복감을 어찌 감당하랴? 라고 생각하며 아득한 꿈을 꾸기도 한다. 사랑이란 단어는 그 상상만으로 달콤한 솜사탕 속에 갇혀있는 듯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던 그 사랑의 맹세가 쉽게 깨진다면, 그 배신감에 정신을 잃기도 하며 삶의 의욕조차 상실하게 된다. 약속과 맹세에 있어 의도적으로 상대를 기만하기 위해 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쉽게 해 버린 약속과 맹세는 쉽게 깨질 수 있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라는 어떤 노랫말 가사처럼 말이다. 사랑의 약속이 영원하다면 참 좋으련만 세상은 그 마음을 흔들기도 하고 또 다르게 유혹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약속과 맹세란 세상의 흔들림 속에서도 변함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감과 자존감이 가득한 사람은 사랑에 절대 흔들림이 없다. 그것은 바로 상대를 사랑하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프랑크 딕시/oil on canvas/1884/U.K>




사랑이란 단어를 마주할 때면 가장 먼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금세 뇌리를 스칠 것이다. 지금 로미오는 높은 담장을 넘어 줄리엣을 만나기 위해 저 굵고 미끄러운 대리석 기둥을 타고 올라왔다. 햇살과 줄리엣의 옷차림으로 보아 동이 틀 무렵으로 보인다. 로미오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줄리엣과 만남을 확인하듯 둘은 지금 세상을 잊을 것 같은 달콤한 키스에 빠져있다. 햇살은 줄리엣의 얼굴을 화사하게 밝혀주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사랑을 받는 이의 얼굴에 피어나는 삶의 행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화사하며 아름답고 부드럽다. 마치 천국을 보여 주듯 말이다. 사랑의 무아지경 그리고 오해와 배신. 사실 로미오는 줄리엣을 만나기 며칠 전 한 여인과 헤어져 실의에 빠져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줄리엣을 만나자 한 순간 사랑에 다시 빠진 것이다. 로미오의 해프닝과 같은 이러한 상황을 쉽게 이해하기란 어려울 수 있겠다. 그러나 사랑이란 이처럼 로미오의 실연의 상처를 금세 잊을 만큼의 마법? 과 같은 행위를 할 수 있는 커다란 힘을 지니고 있다.




<파울로와 프란체스카/프랑크 딕시/oil on canvas/1894>

 




여기 또 다른 사랑의 맹세를 약속하는 커플이 있다. 빛은 두 인물의 얼굴과 몸의 정중앙을 관통하고 있어 그들의 행위가 얼마나 성스럽고 아름다운 것인가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어 보인다. 남자는 여인의 손에 반지를 끼워 준 후 그 손가락에 키스를 하며 영원히 함께 할 것을 약속한다. 여인은 그런 남성에게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듯 자신의 온몸을 남성에게 기대고 있다. 남성이 여성을 안고 있는 손에는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의 결연함이 느껴진다. 여인을 품 안에 꼭 안고 있는 손은 손가락의 움직임과 근육에 강한 힘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서로를 간절히 원하면 이토록 온몸과 마음을 다 해 사랑할 수 있을까? 남성은 지금 먼 곳으로 떠나기 직전이다."부디 내가 돌아올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그대! 나를 기다려야 하오! 내 살아서 돌아오리다.!" 남성은 여성에게 깊은 사랑의 맹세를 한 후 곧 자리를 떠날 것이다. 지금 둘이 함께 있는 공간은 사랑의 기쁨과 헤어짐이 교차하는 양가적 감정의 공간이다. 사랑이 영원하면 좋으련만 때론 그 영원함이 우리를 배신을 하기도 하고 용암과 같이 분출하던 사랑이 한순간에 시들어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약속과 신뢰에 대한 책임은 우리들에게 있다. 그것을 지키겠다고 맹세한 것도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그때의 그 행위는 바로 사랑이었어. 그런데 그때는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왜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깊은 사랑에 대한 신뢰를 가진 감사의 인사를 늘 서로 나누었으면 한다. 그리고 너무 멀리까지 바라보는 사랑보다는 지금 여기 현실에 충실한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매일매일 현재에 만족한다면 그것은 언젠가 멀리 바라보았던 그 꿈의 순간이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거나 또한 내가 상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는 것보다는 소소하고 상대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서로를 이해한다면 그 사랑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딕시의 그림 <The Beautiful Lady Without Pity>은 아름다운 여인을 본 후 무작정 그녀를 따라온 한 기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기사는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무기를 버린 무장해제한 모습으로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그러나 그녀는 "나는 당신에게 사랑을 말하고 싶지 않아요" 라고 말하자 남자는 놀라 쓰러질듯 한 표정이다. 사랑은 이처럼 혼자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착각을 할 수 있는 짝사랑으로 끝날 수 도 있다. 그렇다면 나를 사랑하는 않는 사람과 나와의 미래를 약속했던 사랑에게 배신당하였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그것은 바로 상대에게 느꼈던 배신의 응어리를 자연스럽게 부셔버리거나, 내가 완벽한 인간이 아니듯 상대도 완벽한 인간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면 그러한 행위야 말로 자신 또는 상대를 위한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아닐까 한다.




<프랑크 딕시 Sir Francis Bernard Dicksee1853-1928>



영국 출신의 프랑크 딕시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영국 왕립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많은 귀족들의 초상화와 연극적 요소의 문학적 장면, 역사와 전설적 장면을 그린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활동하였던 낭만주의 화가이다. 그는 1925년 기사 작위를 받았고, 1927년 조지 5세에 의해 왕립 빅토리아 여왕 훈장에 임명되었다. 딕시는 사람들 사이에 고여 있는 감정의 세계를 섬세하고 몽환적인 표현으로 시선을 주목하게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글 아트렉처 에디터_C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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