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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Sep 09. 2020

오늘도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https://artlecture.com/article/1854


오늘 하루의 내 모습은 어땠을까?





우리의 삶은 코로나를 분기점으로 전과 후로 나뉜다. 코로나19가 한국사회에 확산되기 전까지만해도 4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 로봇기술, 가상현실, 사물인터넷 등의 기술발전으로 온 세계가 떠들썩해지고 디지털온라인 혁명과 관련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앞 다투어 디지털 온라인시대를 마주한 서적들이 방대하게 발행됐다.

그래서 작년 초까지 만해도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인가? 디지털 기술혁명으로 인해서 가장 큰 변화가 필요한 인문학자들, 예술인들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시도하여야 하는가를 고민해야하는 단계였다.





하지만 IT산업의 발전과 향후 시대의 과제들을 논의하는 시점을 의미 있게 수용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방식에 대한 사유는 잠시 접어두게 됐다.

2013년 <감기>(2013)라는 제목의 재난영화가 소개됐었다. 감염병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우리에게 닥쳐온 지금의 현실을 상기시키면서, 재난상태의 현장이 영화의 소재만이 아니였다는 사실을 몸소 느끼게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단계를 높여야 감염과 감염자들의 숫자를 낮출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는 말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하루에 감염자의 수는 매일 다르게 변화한다. 그리고 현재의 우리들은 각종 미디어를 통해서 감염병, 파업, 종교, 정치논쟁, 기후 등의 각종 문제들의 소식들을 빠르게 접하고 있다. 지난 일상처럼 나아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들로 가득 차는 개인의 하루는 걱정으로 시작하여 불안으로 하루를 마친다.

개인과 공동체 사이에서의 우리들의 삶은 날이 갈수록 고통과 불안으로 정체되었고, 삶이 일시적으로 정지(STOP)됐다.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모든 것들에 경계와 제한이 이뤄지게 되면서, 부정적인 용어들이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다. 무의미하게 보냈던 개인의 하루에도, 그리고 반복적이고 평범한 일상적 경험과 삶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이 느껴지는 이 시간.


1인가구의 증가, 개인주의 등을 사회문제로 심각성을 알렸던 매스미디어의 뉴스들이 감염병보다는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감염병과의 싸움은 보이지 않는 대상과의 전쟁, 그에 따른 두려움, 고통, 불안, 초조 등을 더욱 고조시킨다. 현재는 사회와 인간, 기계와 인간의 싸움이 아닌, 인간과 감염병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현재 우리가 현재의 일상을 완전히 되돌릴 수 없지만, 이전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는 우리들은 각자의 자신의 위치에서 잠시 사회적 거리두기를 더욱 의식할 필요성이 있다.

그래서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서로가 돌아가고 싶다면, 현재의 상황을 낙담하기보다는 우리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앞으로 이와 같은 시대는 지속적으로 다양한 경로와 방식으로 올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많은 생각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조지 시걸, <버스승객들>(1997) , 조지 시걸, <버스에 탄 사람들>(1962)




그럼 지금 현재 우리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의 모습을 투영시킨 거울을 볼 필요성이 있다. 현실에서의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할 이유를 자신들의 모습을 통해서 알게 된다면. 그 한 예를 우리들은 조지 시걸(George Segal, 1924~2000)의 조각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조지 시걸은 일상 속에서의 우리의 모습을 사실그대로 반영시킨 조각을 제작한 미국 예술가이다. 조지 시걸의 주요 예술재료는 석고였다. 그리고 실제 주변에 아는 지인들을 공업용 석고로 실물뜨기 주조법을 통해서 조각을 제작했다.




조지 시걸, <교차도로>(1992)




우리의 일상의 환경과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조지 시걸의 조각은 코로나19 이전의 개인의 삶의 일부 모습들을 상기시킨다. 국가, 지역과 상관없이, 일상공간, 예를 들어 버스 안, 정류장, 식당, 공원, 길거리 등에서 우리들이 자주보이는 포즈나 행동 그리고 자세들이다.

조지 시걸은 <버스승객들>(1997), <버스에 탄 사람들>(1962), <교차도로>(1992) 등에서와 같이 일상속의 우리들을 제작했다. 조각 하나하나는 앉아있거나 혹은 서있는 등의 다양한 포즈와 행동, 그리고 서로를 의식하지만, 겉으로는 의식하지 않은 상태인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주목한 인간의 고독과 소외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사회발전의 이면에 남다른 생각을 가졌던 조지 시걸의 조각들에서 풍겨져 나오는 아우라는, 코로나19이전의 일상의 풍경을 느끼게 한다.




조지 시걸, <걷지마라>(1976), 조지 시걸, <네 개의 벤치 위에 앉은 세 사람>(1979)

 


<걷지마라>(1976)에서는 도시의 한복판에 위치한 신호등을 사이로 고된 하루를 보낸 우리의 하루, 우연 속에서 만난 남성 두 명과 여성 한 명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흔한 풍경이다. 한편 <네 개의 벤치 위에 앉은 세 사람>(1979)에서도 잠시 쉬어가는 여성 두 명과 남성 한 명이 벤치에 앉아 있다. 그들은 벤치를 매개로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 앉아 있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처럼, 각자의 시선으로 다른 곳을 응시한다. 그들의 모습에서는 우리들이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과 같다. 서로를 의식하지 않고 잠시 쉬어가기 위해서, 혹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벤치를 공유한다.

현재, 우리는 이런 일상까지도 그립다. 마스크를 하기 전의 보통의 일상, 조지 시걸에게는 우리들의 일상이 개인의 고독과 사회에서의 소외, 그리고 불안, 타인의 삶의 무관심. 그런 무료한 일상이 현실이라고 생각하게 했지만, 지금의 현실 속에서는 그거조차 소중하다는 사실을.

하지만 현재의 우리들은 지금, 사회적 거리두기로 서로 간을 의식하기 시작했지만, 조지 시걸의 조각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들은 일상에서 이미 타인의 삶에 무관심해지고 있었고, 개인의 삶에서 고독과 사회에 대한 소외감으로 거리두기를 자연스럽게 실천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박적으로 강요하는 정부의 통제와 감시가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 이미 예고된 것들의 일부이다. 단지, 마스크로 우리의 모습을 가릴 뿐이다. 살아야한다는 공동체적 정신보다는 개인의 일상의 중요성과 비중이 커진 현대사회의 모습 속에, 또 다른 변화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져본다면.

분명, 사회적 거리두기가 공식화된 이전의 삶은 분명하게 그립다. 하지만, 이전에도 우리들의 삶은 분명 조지 시걸의 조각에서 드러나는 모습과 다를 바 가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우리들을 지키는 무기가 되었다면, 우리들은 이제 변화된 사회적 환경 속에서 보통의 일상을 그리워하기보다는.

변화를 인정하자. 그래도, 우리들이 인식하지 못했던 타인과의 거리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 중요한 환경이 되었다는 사실. 개인주의로 물든 현대사회 속에서 개인의 생각에 변화가 일어 날 수 있는 시작점이 되었다.

분명 마스크라는 통제의 오브제, 누구나 불편하다. 하지만, 변화된 시대, 변화하는 사회는 지속적으로 우리들은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변화는 우리의 삶을 재정비하는 시간으로,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고, 소중하게 여기는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 사진출처

https://daily.jstor.org/how-the-public-health-community-prepares-for-pandemics/

http://msmcsculpture2018.blogspot.com/2018/10/street-crossing-by-george-segal.html


* 참고링크

https://www.segalfoundation.org/




글 아트렉처 에디터_C.E.D.컬렉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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