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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Jul 03. 2020

정도의 중력

https://artlecture.com/article/1731



1. 라즈니쉬 약속인가, 위협인가


A ‘라즈니쉬 약속인가, 위협인가?’ 짐 존스는 죽고 없지만 그의 정신과 편집증은 살아남아 남아메리카의 정글이 아닌 오리건의 목초지에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박사님, 오늘 태어난 라즈니쉬 무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이 엄청난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강력한 권한이 영향을 미치면 치명적인 상황이 벌어집니다.’


B ‘그들이 말한 컬트의 정의는 규율에 엄격하고 단일 지도자 밑에서 개인보다 전체를 중요시하는건데 우린 극단적인 개인주의자들이 어쩌다 하나의 조직이 되어 우리가 원하는 바에 따라 공동체를 만든거에요. 믿음, 기도, 삶의 방식을 강요받고 싶지 않았어요. 자유롭고 싶었죠. 우리가 사람들을 길들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실 개인의 자유라는 개념에 겁을 먹었던 겁니다. ‘


A 걱정이 되더군요. 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너무나 사악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제가 오래전에 인용했던 에드먼드 버크의 말대로에요. 악마에게 필요한 것은 선한 자가 나서지 않는 것이다. 정말 그래요. 나서야할 때도 있는거에요. 계획에 없던 일일지라도 꼭 해야할 일이 있죠. ‘


B ‘마을의 주택 중 부동산의 절반이 싼 매물로 나와있었어요. 가장 쉬운 해법은 그 부동산들을 산 다음 거기서 일을 진행하는거였죠. 저들은 그걸 뭐라고 칭했을까요? 앤털로프 장악이랍니다. ‘


A ‘그들은 마치 스팀 롤러처럼 앤털로프로 돌진해 들어와 차지해버렸어요. ‘


B 매물로 나와 있던 집을 몇 채 샀어요. 앤털로프 사람들에게 다 제 값 다 주고 산겁니다. 정치인들은 컬트 집단이 노인들의 작은 마을을 빼앗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고 했지만 팔겠다고 내놓은 땅을 산 것 뿐이에요.


A ‘여긴 지난달까지만 해도 ‘앤털로프 카페’ 였습니다. 40명의 주민들이 모이는 장소였죠. 그런데 라즈니쉬푸람의 코뭔에서 카페를 사들인 이후 ‘조르마 더 부다’로 바뀌고 바나나를 굽고 있습니다. 남의 마을에 나타나 마을을 빼앗아 들면 안되죠. 전 용납 못합니다. ‘ 


(넷플릭스 : 오쇼 라즈니쉬의 유토피아 중)






라즈니쉬 무리, 바그완의 신도 (B) 들은 전 인류적 사랑, 교리가 주는 생의 원천을 바탕으로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며 울타리 안에서 인류애를 실천하며 행복을 지향한다. 그들은 노인들이 은퇴를 한 후 정취를 즐기며 유유자적 하는 미국의 조그만한 마을 앤털로프의 땅을 사들인 후, 자신들만의 왕국을 건설하여 위계가 없는 새로운 세계의 지평을 이룩하고자 한다.


반면, 평화로운 작은 마을 앤털로프의 기존 주민들과 매스 미디어 (A)는 분별 없는 집단적 체계의 라즈니쉬 무리로부터 기존 생활권 침해를 우려하며 이들을 경멸하고 위협한다.  다소 이질적이고, 공격적인 요소로 인식된 라즈니쉬 무리들은 비주류 컬트 집단으로 분류되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취급을 받기 시작한다. 마치, 짐존스의 집단 학살처럼 말이다.


A가 B를 사회에 있어 비정상적인, 해가 되는, 위험한 다이너마이트로 낙인 찍는 반면, B는 A가 선전하는 것과는 반대로 그들이 건국한 울타리 안에서 자급자족 하며 평화로운 일상을 유지하며 이상 사회를 실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B는 A가 다소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한다.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자유를 찾고자 하는 명목 하에 모여 고성을 지르고, 집단 난교를 벌인다. 알몸으로 여러 명이 엉켜 성교를 벌이고 고성을 지르는 동물적 행위는 다소 충격적이다.


‘다소 충격적이다’ 의 감상과 이러한 서술은 아마 A의 주관적인 시선일지도 모른다. 소위 전통적인 질서로 자라난 필자가 A의 입장으로 밖에 볼 수 없을 때 그 들은 지각이 없고, 판단이 없으며, 맹목적이고, 심지어 불량하기까지 한다. ‘인간’ 이 ‘동물’과 구별되는 점은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고력을 지닌다는 것인데 그 들은 마치 그들 안에서 인간됨을 지워버린 듯 하다. 기존 규범과 어긋나는 패턴을 지닌 이들에게 일반적인 의미로 비정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B는 집단 속에서 설정한 기준과 자애로운 교리에 행복을 느끼며 하루하루 성취감을 안고 살아간다. 게다가, B는 사회적인 악을 행한 적도 없으니 A가, 세상이,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비난할 구멍과 명분은 더더욱 없다. 난교는 하지만 평화로운 공동체를 보며 오히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여기서 우리는 체계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생긴다. 양가적으로 이해받지 못하는 입장에서 벌어지는 갈등 아래 우리는 특정 집단의 체계에 옳다 그르다의 판단 기준을 명확히 제시할 수 있는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너무나도 주관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범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구분 짓는 행위는 질서와 조화에 기반한 체계의 통일성, 아름다운 이상 세계, 즉 미를 산출하는 목적에 의의가 있다고 보여진다. 정의할 수는 없어도 조망할 수는 있다. 이에 미를 (정상과 비정상) 구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역으로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미에 관해 생각해보게 되었으며, 미의 구조를 통해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보았다.



© Illustrations by Michael Byers

  


2.  혹은 불쾌 


어떤 대상이 우리 마음에 영향을 미치려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마음에 쾌 혹은 불쾌를 일으킬 수 있는 필연적 계기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 이다. 도형, 건축물, 그림, 음악곡, 행동, 감정, 성격, 표현, 연설과 같은 이 모든 것이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쾌를 주거나 불쾌를 주거나 한다. 머릿속에 관념이 떠오른다. 주변 정황도 고스란히 생각난다. 그런 관념을 깊이 생각해보면 반드시 쾌나 불쾌의 감정이 자극되는 것을 느낀다. 그런 관념 중에 몇 가지 것에는 일반적으로 ‘감각 지각’이라고 하는 것이 전혀 없는데도 그런 인상이 만들어진다.


어떤 관념은 감각에서 나오는데 쾌가 뒤따를 수도 있고 불쾌가 뒤따를 수도 있다. 사물을 고려할 때 질서, 균형, 모방을 발견하면 쾌를 느끼고, 무질서, 불균형, 불규칙성을 발견하면 불쾌를 느낀다. 그러나 쾌나 불쾌는 개별적으로 고려된 색, 소리, 연장의 단순관념에서 생기지 않는다. (p.14, 미의 기본과 본성)


허치슨 학파는 인간에게는 자연적 감각이 내재되어 미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정의하지 않고도 쾌를 느낄지 불쾌를 느낄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우리가 아무리 다양한 취향이 지니더라도 형태를 보고 ‘미’를 찾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즉슨 누구나 뜨거운 불에 다가가면 고통을 느끼고, 배가 고플 때 식욕을 느끼며, 음식을 먹을 때 쾌를 느끼기 때문이다.


허치슨을 비롯한 경험주의 철학자들은 미를 쾌의 감각으로 이해했으며, ‘푸른 옷의 소년’은 아름답다와 같은 진술이 주관적이라 말할 때 자극을 주는 대상은 푸른 옷의 소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관 안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노엘 캐럴은 예술품을 감상하는 감상자의 시점을 예시로 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가 내적 감각기관이라는 견해 아래 예술품 앞에서 여러 주관들이 하게 되는 미의 경험은 주관마다 다르게 갈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정상적인 관찰자라면 누구나 소나무 앞에서 녹색을 경험하는 것만큼이나 규칙적으로 미의 경험이 한 데로 수렴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렴이 가능하다면, 특정 속성을 가진 예술품은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일치된 감각을 일으킨다는 규칙적인 상관관계와 이들을 이어주는 연결 법칙이 있을 수 있으며, 이 법칙들이 간주적(inter-subjectively) 으로 검증될 수 있다고 말한다. (p.52 비평철학)



 Thomas GainsboroughThe blue boy c.1770 oil on canvsas 177.8cmx112.1cm, Henry E. Huntington ArtGallery, San Marino, California © Jisoo Seo




3. 관계의 


‘이등변 삼각형은 사각형보다 덜 아름답고, 오각형은 육각형보다 덜 아름답고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왜냐하면 대상이 똑같이 단일한 경우에는 더 다양할 때 그만큼 더 아름답고, 비교될 수 있는 면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더 형태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면의 수를 훨씬 더 많이 늘리면 면들이 상호적으로 중심과 맺는 관계들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이로부터 도형의 미는 면의 수에 비례해서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결과가 나온다.


(….)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대로 공히 단일한 형태의 대상들 가운데에서 가장 다양성을 가진 것이 가장 아름답다면 역으로 공히 다양성을 가진 대상 가운데에서 가장 단일한 형태를 가진 것이 가장 아름다울 것이다. 그래서 등변 사각형 혹은 이등변 삼각형은 부등변 삼각형보다 더 아름답다. 사방체 혹은 마름모꼴보다 사각형이 더 아름답다. 정입방체에 대해서도, 또 일반적으로 원기둥, 프리즘, 오벨리스크 등과 같이 다소 단일한 형태를 가진 도형에 대해서도 똑같이 생각해볼 수 있다.’ (P.22)


허치슨 학파는 사람들이 통상 어떤 계기로 미의 관념을 갖는지 찾기 위해 도형과 같은 가장 단순한 존재를 연구했다. 그들은  ‘다양성 속의 단일성’을 느끼게 해주는 도형들이 우리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도형과 가깝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시각적으로 단일한 형태도 없고 대칭도 없고 통일성도 없는 조잡한 도형보다 더 많은 쾌를 준다는 점에 의해 허치슨 학파의 의견은 긍정적으로 검토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훗날 논증 과정을 통해 명확하지 않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허나 우리는 이를 통해 ‘미’를 인식하는 부분적인 요소에 질서 정연한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키드팡



© Penned byDeleuze and Guattari, differing from the traditional ‘tree-like’- arboreal, ifyou will – structures, but interwoven root like structures that interact but donot have hierarchal structure; similar to the structure of potatoes.




4. 정도의 중력 


‘우리는 생각하고 느끼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생각하는 능력이 첫 발을 내딛으면서, 지각을 검토하게 되고, 통합하고, 비교하고, 결합하고, 여러 지각이 조화를 이루느냐 부조화 하느냐 하는 관계를 알게 된다. 우리는 욕구를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다양한 수단에 도움을 청하지 않을 수 없고, 예상했던 결과에 따라, 또 산출된 결과에 따라 이들 다양한 수단 가운데, 좋은 것, 나쁜 것, 신속한 것, 짧은 것, 완전한 것, 불완전한 것 등이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들 수단의 대부분은 연장이나 기계, 혹은 그런 종류의 발명품이었다. 그러나 모든 기계는 동일한 하나의 목적을 향한 부분들의 배치 및 결합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욕구가 생기면 우리의 능력은 신속히 실행된다.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우리가 가진 능력들이 한데 합쳐져 질서, 배치, 균형, 구조, 통일성에 대한 관념들이 우리에게 생긴다. 이 모든 관념은 감각에서 나오며 따라서 인위적이다. 우리는 인공적이고 자연적인, 조정되고, 균형을 이루고, 결합되고, 대칭을 이루는 무수한 존재들의 개념에서 출발해서 질서, 배치, 균형, 결합, 관계, 대칭과 같은 긍정적이고 추상적인 개념 및 불균형, 무질서, 혼돈과 같이 부정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나아갔다.

이들 개념은 모든 다른 개념들처럼 경험적이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서 이런 개념을 알게 되었다.


(…..)


그런 개념은 길이, 너비, 깊이, 양, 수의 개념만큼이나 긍정적이며 분명하고 명확하고 실제로 존재하며, 이들 개념의 근원은 우리의 필요와 우리가 가진 능력의 실행에 있기 때문에, 지구상에 이러한 관념들의 이름이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 개념은 확장된 정도가 더한가 덜한가, 발전된 정도가 더한가 덜한가, 기초한 경험의 숫자가 더 많은가, 덜한가, 적용된 존재의 수가 더 많은가 덜한가의 차이는 있어도 머릿속에 존재는 할 것이다. 어떤 민족과 다른 민족 사이에서, 똑같은 민족이라도 어떤 사람과 다른 사람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모든 차이가 바로 여기 있기 때문이다.’ (P.42)


‘우리가 아름답다고 부르는 모든 존재가 공통으로 가진 특징 가운데 어떤 것을 미라는 말을 기호로 삼을 수 있는 것으로 선택할 수 있을까? 어떤 것 일까? 내가 보기에 그것은 무엇인가가 있어야 사물이 아름답게 되는 특징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p.45)


수 세기가 흐른 뒤에 남은 모든 것, 세계의 안과 밖 에서, 그리고 우리 눈앞에서 동시대 사람들이 노동하고, 성찰하고, 발견하면서 산출했던 모든 것은 우리에게 질서, 관계, 배열, 균형, 조화, 부조화와 같은 개념들로 흘러왔다. 쾌와 불쾌를 결단할 수 있는 감각 속에서, 소나무 앞에서 녹색을 경험할 수 있는 수렴 속에서, 미를 인식하는 부분적 요소 속에서, 지각을 검토하는 과정 안에서 우리는 비록 그것들이 (논증 과정) 세세한 오류가 있을지라도, 존재들 사이에 있는 차이와는 상관없이 미라는 말을 우리가 잘못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일련의 주장 안에서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정도를 설정하는 범위 또한 예외는 아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생각하지않는 행위는 생을 영위하는 데에 있어 필수 덕목은 아님을 우리는 안다. 우리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을 명확하게 설정할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우리 인간에게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기호 삼을 수 있는 적절한 중력은 있으리라. 애초에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AugusteRodin The Thinker (Le penseur) 1880, sculpture 189x90x140cm Musee Rodin, Paris,France ©Jisoo Seo



References


1.     https://www.pdxmonthly.com/news-and-city-life/2018/11/here-s-what-netflix-left-out-of-wild-wild-country


2.     https://en.wikipedia.org/wiki/The_Blue_Boy 


3.     http://kidpang.net/product/구성삼각형2큰육각형상자/10858/


4.     https://libcom.org/library/political-activism-internet-age-where-here


5.     https://en.wikipedia.org/wiki/The_Thinker


---


1.     드니 디드로 미의 기본과 본성(b 판고전 6) p.14,p.22 p.42 p.45


2.     노엘 캐럴 비평 철학 p.52


3.     넷플릭스 오쇼 라즈니쉬의 유토피아





글 아트렉처 에디터_서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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