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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cedie Mar 17. 2017

“치히로”를 “센”이 아니라
“치히로”이게 하는 것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4. “치히로를 이 아니라 치히로이게 하는 것: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정말 자주 오래도록 본 영화 중 하나이다. 학생 때부터 본 이 애니메이션은 볼 때마다 그냥 재미로 봤지만, 오늘은 그때 봤던 읽기와 다르게 좀 더 이 영화를 내 방식대로 읽어보고자 한다. 

  치히로는 이전에 살던 곳에서 떠나와 다른 곳으로 이사를 온다. 그러던 중 길을 잘못 든 치히로 가족들은 이상한 세계를 발견하고 그곳을 배회하게 된다. 그곳은 바로 (귀)신들의 세계였다. 그 세계는 밤이 되고 그 세계의 음식을 탐한 아빠와 엄마는 돼지로 변하고 치히로는 왔던 세계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다시 아빠와 엄마를 되찾아 현실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이 곳의 세계 생활을 버티기로 한다. 그렇게 치히로는 유바바의 밑에서 일을 하게 된다.


  유바바가 운영하고 있는 이 온천은 이전에 치히로가 살아왔던 세계와 분명히 다른 세계이다. 치히로는 그곳에서 일을 하는 대가로 자신의 이름을 유바바에게 뺏긴다. 치히로는 자신의 이름 일부를 뺏기고 치히로가 아닌 “센”이 된다. 다른 세계, 즉 다른 환경에 놓이게 된 치히로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름은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나타내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한다. 치히로는 '센'으로 이전과는 다른 자신을, 정체성을 부여 받게 된다. 그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정체성을 말이다. 센을 도와주는 하쿠는 센에게 말한다. 자신의 원래 이름을 잘 기억하라고. 자신의 원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자기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면 결국 이전의 자신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강 건너의 저 세계는 귀신들의 세계였고, 그 귀신들의 세계는 바로 욕망의 세계였다. 유바바가 지배하고 있는 이 온천장은 욕망의 세계이며, 욕망만이 가득한 세계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가오나시”이다. 이 영화에서 가오나시는 욕망 그 자체이다. 가오나시는 센에게 호감을 갖는다. 그렇기에 가오나시는 센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주려고 한다. 목욕 패도 한 가득 그녀에게 건네주고, 이후에 사람들이 사금을 욕망하는 것을 보고, 센에게만 금을 주겠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센은 자신에게 필요한 이상을 원하지 않는다. 온천장에 있는 사람들은 금을 받기 위해 가오나시의 환심을 사려한다. 그로 인해서 욕망은 끊임없이 그 먹이를 먹고 덩치가 비대해지며 끝없이 배고프고 더 욕망하고 더 원한다. 가오나시라는 뜻은 얼굴이 없음을 의미한다. 욕망은 얼굴이 없다. 욕망은 대상도 형태도 뚜렷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커져가는 욕망으로 비대해진 가오나시는 다른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로 끊임없이 변한다. 욕망의 대상은 뚜렷하지 않다. 욕망은 어떤 것도 지시하지 않고 단지 욕망은 욕망일 뿐이다. 

  하지만 사랑은 대상이 뚜렷하다. 지시하는 것들이 뚜렷한 것이 사랑이고 이 영화에서처럼 욕망에 대항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사랑이다. 센이 가오나시를 거부하고 그의 호의를, 즉 욕망의 눈이 멀지 않게 된 것은 바로 사랑 때문이다. 가마 할아버지가 치히로와 하쿠를 보고 말한다. 보고도 모르겠냐고 “사랑”이라고. 사랑이 있기에 치히로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센이 되지 않는다. 치히로는 사랑이 있기에 센이 아니라 치히로일 수 있다. 사랑은 욕망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치히로가 이전의 자신과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지 않게, 잊어버리지 않게 도와주는 것은 하쿠이다. 치히로의 이름이 써져있는 카드를 하쿠는 소중히 간직하라고 치히로에게 말한다. 그리고 하쿠에게 치히로는 센이 아니라 치히로다. 하쿠의 원래 이름을 기억하고 그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치히로이다. 치히로가 기억하기에 하쿠는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다. 그건 다시 말하면 원래 하쿠 그 자체 코하쿠였던 하쿠를 다시 되찾아 주는 것, 그 사람의 정체성, 그 사람을 다시 되찾아주는 것이다. 이처럼 사랑은 서로의 이름을 기억해주고, 서로가 서로를 부르고 그 당신이 당신일 수 있도록 부르고 기억해주는 것, 사랑은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치히로는 센이 아니라 치히로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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