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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cedie Feb 02. 2017

오히려 사랑은 침대가 없어야지만 가능하다.

레오 까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


3. 그러나 오히려 사랑은 침대가 없어야지만 가능하다.



                                                     Les Amants du Pont-Neuf, Leos Carax, 125 min, 1991.




영화 속 내가 사랑하는 연인들 중 하나인 퐁네프의 연인들.

겨울이 오면, 연말이 되면, 그리고 눈이 내리면 이 영화를 찾아보고 싶어 집니다.

그리고는 이 연인들처럼 사랑하고 싶어 집니다.





  겨울이 왔고, 어느 날은 눈이 내리기도 했으며 그렇기에 추운 날들이 계속되었다. 나는 그 시절 사랑을 하고 있었고, 한 해가 끝나가는 기념으로 한 극장에서 프랑스의 연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영화 몇 편이 재상영하고 있었다. 지난가을 홀로 낙엽 진 거리를 걸으면서 그 영화를 처음 봤던 그 시간을 회상하면서, 그때 사랑하는 이와 이 영화를 보고자 하였다. 레오 까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 한 없이 눈이 내리는 겨울날이면 그 영화가 생각난다, 아니 정확히는 그 다리 위의, 어떤 연인보다 찬란히 아름다웠던 연인들이. 그래서 나의 연인에게 그 영화를 같이 보러 가자 했었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고 “거지들의 사랑”이라고 말했다. 한 없이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퐁네프의 연인들”(프랑스의 지명과 연인들은 어쩔 수 없이 보편적인 사람들에게 낭만적이라는 감상을 불어넣어준다)이라는 제목과 달리 영화가 상영되면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다리 위의, 거리의 사랑, 도저히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미셸은 사랑을 잃고, 또한 그녀의 눈을 잃고 거리를 방황한다. 그러던 어느 날 거리에서 차에 치이고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남자, 알렉스를 만나게 된다. 그 후 알렉스는 보호소에 끌려가고 이후에 그가 원점으로 여기는 그의 거주지 퐁네프의 다리에서 미셸을 만나게 된다. 영화에서 “퐁네프” 다리는 보수공사가 진행 중인 곳이다. 철망이 쳐 있고 접근이 금지된 곳이고 그곳은 현재 진행하지 않는 공간이다. 일시적인 공간, 방치되어 있는 공간이다. 언젠가는 보수공사가 끝나 완공된다는 점에서 그곳은 일시적인 공간이며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미지처럼 방치되어 있는 곳이다. 우리가 사는 일상과 다른 비일상적인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곳은 알렉스와 알렉스를 돌봐주는 한스의 거주지이다. 한스는 그곳에 들어온 침입자인 미셸을 내쫓으려고 하고 알렉스는 미셸에게 호감과 호기심을 느낀다.

  다리에서 알렉스와 한스와 같이 살게 되고 알렉스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여자, 미셸은 일시적으로 일상을 잃은 삶을 살고 있다. 사랑을 잃고 그림을 그리는 그녀는 그녀에게 중요한 눈까지 잃었다. 결여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녀의 지금 상태는 결여이며 결핍이고 비일상이며 비일시적인(영화 후반 전개에 의하면) 삶이다. 그에 비해 알렉스의 삶은 어떠한가. 미셸이 볼 때, 또한 한스가 말한 것처럼 그들(미셸과 한스)에게 거리의 삶은 일상으로부터 회피하거나 어쩔 수 없이 쫓겨 온 공간이다. 한스에게도 과거와 아내가 있었고 일상이 있었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알렉스의 일상적이었던 삶은 영화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에게 일상적인 삶이란 바로 다리 위의 삶이다, 그의 삶은 거리의 삶 그 자체이다. 그런 그가 미셸을 사랑한다.  

  한스는 미셸을 사랑하는 알렉스를 눈치채고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포근한 침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고. 침대도 없는 네가, 그러니까 일상의 안락함 따위를 함께할 수 없는 네가, 감히 사랑을 하겠다고 하는 거냐고. 그러나 오히려 사랑은 침대가 없어야지만 가능하다. 거리의 삶을 살아온 알렉스에겐 안락함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미셸을 사랑하게 된 알렉스에겐 여기 이 미셸이, 그 사랑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는 많은 돈도 필요하지 않으며, 약 없이는 잠에 들 수 없지만(잠을 자면서 이룰 수 있는 일종의 휴식 상태, 평온 상태가 없어도) 미셸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삶의 일상을 되찾을 수 있게 해줄 수술을 지연하고 연기시키기 위해 그녀를 찾는 포스터에 불을 지른다. 사랑이라는 것은 한편으로 이토록 안락한 삶과 거리가 멀어지는, 위험한 것이다. 

  일시적인 거리의 삶을 영위하는 여자 미셸, 그녀는 알렉스의 쪽지에 “하늘이 하얗다.”라고 답한다. 그러나 안락한 삶의 기회가 그녀의 현재의 삶(다리 위의 삶), 사랑에 모습을 내보이자, 그 사랑은 너무나도 쉽게 자취를 감춘다. 안락함과 일상을 꿈꾸는 자에게 진정한 사랑이란, 전부의 사랑이란 없다. 그것은 생활이 침투하면 무너져 내리는 것. 그렇기에 자본주의에서는 사랑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이, 저 거리의 연인들처럼 사랑에만 자신을 내맡기지 못할 테니까. 기꺼이 일상을 버릴 수가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그 둘이 후에 재회하는 퐁네프는 오히려 같은 장소가 아니다. 이미 다른 장소이다. 그곳은 이미 완공되어 버린 완전한 곳이다. 그렇기에 둘은 다리에서 뛰어들어 새로운 장소를 모색하는 것이다. 또다시 방랑하고 사랑이 아닌 어떤 것은 거리낌이 없게 되는 그런 삶의 거리로 나가기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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