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 길에 지하철 창 밖을 보니 회색 빛의 우울했던 도시의 풍경에서 봄 내음이 나기 시작했다. 겨울의 공기만으로 앙상했던 가지에 개나리가 피었다. 지하철을 타고 지나가는데 창가로 노란빛이 여과 없이 따스하게 눈으로 내린다. 어느덧 봄이 왔나 보다.
지난겨울은 또 그렇듯 많이 힘들었다. 이전에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겨울이 될 때마다 힘이 점점 부친다. 해를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들고, 더군다나 따스한 햇살을 즐기기도 어려운 계절이다. 겨울은 너무 춥다. 몸이 움츠러든다. 대부분의 생물들은 다음 봄을 준비하러 겨울에 휴식기를 가지고 잠시 눈을 붙이는데, 사람의 겨울은 다른 계절과 다를 것이 없다. 다른 계절과 똑같이 일어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내게 태양이 없고 만물의 생동함과 따스함이 없는데, 그 계절을 다른 계절처럼 이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동물로 치면 겨울잠을 자는 동물인가 보다. 지난해 겨울을 지내는 동안 쉽게 우울해지고 생의 활력이 돋지 못하였다. 기력이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도무지 힘이 나지 않았다.
사실 그건 계절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더 이상 봄은 없다. 어떤 이가 보기에는 시대에 기대는 비겁한 변명이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게 이 세대와 시대는 봄이 없다. 그것이 실제로 그러한지 아니면 단지 투정인지 그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사실이든 핑계이든 어차피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시대의 짐이기 때문이다.
그래 사실 우리가 마주한 지금 시대는 겨울 같다. 우리나라도 봄이라고 은유가 되던 그런 시절들도 있었는데, 그게 너무 먼 옛날 같다. 그 봄은 지나가고 없고 쌀쌀한 계절만이 계속된다. 경제적인 상황도, 나와 같은 청년들의 미래도 암울하고 암담하고 어둡기만 하다. 내게 들려오는 뉴스 소식은 경제가 조금이라고 활력을 되찾았고, 일자리 가늘었다는 소식들이 아니라 경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황이고 청년들의 일자리는 더 없어지고 더 살기 힘들 거라는 이야기들뿐이다. 그런 얘기를 듣고 나면 희망이고 꿈이고 다 그만두고 싶어 지기 마련이다. 한국이 싫어서 다른 나라로 떠나는 청년들도 많고, 20대 초반 꿈꾸었던 헛되다는 그 꿈들을 포기하는 친구들도 많아진다. 정말이지 그런 요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봄은 없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그래도 봄은 다시 온다, 아무리 지난겨울이 혹독히 추웠다고 할지라도. 다시 기온이 따뜻해지고 햇살이 따스해지고, 잠들어 있던 동물들이 깨어나고, 새싹들이 움튼다. 그러니까 그 오고 있는 봄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어느덧 이 겨울도 갈 거라고. 겨울은 가고 봄이 올 거라고. 정말 이 겨울이 끝나고 다시 봄이 올 때가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계속 생을 살자고. 생명이 자라고 생동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그럴 거라고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어 진다.
어느덧 3월이 지나고 4월이다. 봄이 오고 있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여 겨울에 계획들을 세웠던 것이 기억난다. 3월이 되니 그동안 시행하지 못했던 그 계획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이처럼 새해의 시작은 봄이 아니라 겨울로부터 시작하는데 우리는 봄에 다시 한번 모든 것을 시작하는 다짐을 다시 한번 잡는다. 새 학기도 시작하고 뭔가 진정한 새해는 봄부터 시작되는 느낌이랄까? 그건 아마 봄의 생기와 활력 때문인 것 같다. 움츠러들었던 겨울을 이기고 꽃이 피어나고 새싹이 돋아나며 만물이 소생하는 것을 느끼면 사람은 왠지 모르게 다시 활기와 생력을 되찾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다시 한번을 다짐하게 된다. 다시 한번 앞으로 다가올 그 계절의 흐름들을 잘 이겨내고 감당해 보자고. 나 또한 그렇게 다짐하며 무사히 한 해, 한 해 잘 마치며 살아오지 않았나? 그러니까 지금 이 시대도 언젠간이 겨울 같은 시간들도 가고 곧 봄이 올 거라고. 내 청춘도 겨울이 가고 봄이 올 거라고.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오는 그때를 기다리며 우리는 또 희망을 품고 꿈을 다지고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차가운 바람을 이겨가면서, 곧 봄이 올 거라고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