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과 다름없이 출근하는 날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일과 관련된 전화일 거라 생각하고 받았다. 내가 했던 후원에 대한 답신이었다. 기억도 안 나는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이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더 우울했던 것 같다. 내가 모든 걸 다 망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나로서 존재해서 나의 존재를 괴롭히고 나아가 다른 이들도 괴롭히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다 내 탓같이 느껴졌다. 그게 아니라고,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나 스스로를 다독여봐도 가라앉는 마음은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런 날에 우연히 지하철 안에서 후원을 요청하는 광고를 보았다. 걸어가면서, 생활하면서 수없이 마주치는 이미지인데 그날따라 사람이 많은 지하철임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구원을 받고 싶었던 마음을 털어 그 친구에게 메세지를 남겼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적어서, 사실 그 말이 옳은 말인지, 잘못 들리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냥 우리가 가끔 감당할 수 없이 우리를 좌절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일들이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말하고, 그 말을 통해 나도 다독임을 받고 싶었다.
그날 아침, 내가 메세지를 남겼던 아이가 많이 호전되었다는 이야기와 그래서 이제 통원치료를 받는다는 이야기, 그리고 내 작은 몇 천원이 어머니와 그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어머니가 메세지들을 받아보고는 감사하다고 했다는 이야기. 후원 이후 어쩌면 뻔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그 아이가 그래도 조금이라도 건강해졌다는 이야기와 작은 돈들이 모여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찰나의 구원을 믿게 하는 일이 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세상에 돌아가는 일들이 참 이상하고기묘해서 아름다웠다. 우리는 구원을 찾아 헤매고, 결국 그 구원은 없다는 것을, 이뤄지지 않을 환상이라는 것을 알고 체념한다. 그런데 때로는 사소한 일들이, 의도하지 않는 일들이 영원한 구원이 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에게 구원의 찰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우리가 서로가 서로에게 잠시 동안은 구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요즘 서울은 비가 많이 왔고 비가 갠 다음에는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아름다운 구름을 담은 하늘이 있었다. 비는 그치지 않을 것처럼 내리지만 결국엔 그치고 맑은 하늘을 보여준다. 자연이 그렇듯이 우리 생도 그럴 수 있다면, 우리에게 내리는 어떤 비든 결국엔 개서 아름다운 하늘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에게도, 호전되었다는 그 아이에게도, 그리고 아픈 이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