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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cedie Feb 24. 2018

사랑은 함께 타락하고, 파괴하는가?

"Sid and Nancy" "les amants du pontneuf"

15. 사랑은 함께 타락하고, 파괴하는가?

-"Sid and Nancy", "les amants du pont-neuf"



  여기 함께 타락하고, 서로를 파멸의 길로 이끄는 두 연인들이 있다. 시드와 낸시, 그리고 알렉스와 미셸이다.



영화 "시드와 낸시"


  시드와 낸시는 펑크계의 유명한 연인이다. 섹스 피스톨즈의 베이스로, 펑크계의 악동으로 펑크의 아이콘이었던 시드와 그루피였던 낸시는 서로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영화 “시드와 낸시”는 시드와 낸시가 만나서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담았다.


  당시 유행하던 펑크와 히피문화는 기존 사회에 대한 반기와 저항을 파괴적이고, 자기파괴적으로 드러내는 문화였다. 그들은 약에 취했고, 술에 취했고, 폭력과 향락에 취한 세대였다. 시드를 만나기 전부터 마약에 중독되어있던 낸시는 시드에게 약을 건네고 시드와 낸시를 사랑에 취해가면서 동시에 약에, 술에, 폭력에 취해간다. 함께 타락한다. 시드는 낸시와 함께 취해 밴드 활동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낸시는 시드를 구원하려는 것인지, 같이 구렁텅이에 빠져 죽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둘의 사랑은 정말 죽음으로까지 이어진다. 낸시가 죽고 시드는 낸시를 살해한 의심을 받아 교도소에 갇힌다. 시드는 그 안에서 몇 번의 자살 시도를 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죽고 싶다는 낸시에게 그런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매번 낸시를 타일렀던 그였지만, 낸시가 없는 세상에서 시드는 자신이 말했던 바보 같은 짓을 택했고, 죽음에 이르렀다. 낸시는 시드를 타락시켰다. 그리고 결국엔 그들은 서로를 파괴시키며 파멸로 몰아갔다. 그러나 분명 시드에겐 낸시는 구원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가는 길은 지옥 같아 보이지만. 서로에겐 구원이었는지도, 그들은 죽었지만 그 사랑은 죽지 않았는지도 모르지만.


"NANCY" - sid vicious
You were my little baby girl
And I shared all your fears.
Such joy to hold you in my arms
And kiss away your tears.
But now you’re gone there’s only pain
And nothing I can do.
And I don’t want to live this life
If I can’t live for you.
to my beautiful baby girl
Our love will never die.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레오 까락스의 “퐁뇌프의 연인들”은 거리를 방황하는 연인이다. 퐁뇌프라는 다리에서 살아가고 서로를 사랑을 하게 되었다고 말로 고백하게 되는 미셸과 그런 미셸을 사랑하는 알렉스가 있다. 알렉스에게 거리를 벗어난 삶이란 없던 삶이다. 알렉스에게는 이 거리가 자신의 전부이며 자기 자신이며 자신의 삶이다. 미셸을 알렉스에게 다리 밖의 세상을 보여준다. 돈을 벌게 해 주고 미셸은 바다를 본 적 없다는 알렉스에게 바다를 보여준다. 바다를 뛰어다니며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두 사람은 행복해 보인다. 그렇게 미셸과 떠난 바다에서 알렉스는 신나 했지만 미셸에게 알렉스는 말한다, “다리로 돌아가고 싶어.” 알렉스는 떠나와도 다리로 돌아가는 삶을 꿈꾸는 자이다. 그는 계속해서 다리로 돌아가려 한다.


  다리는 서로의 안식처지만 동시에 도피처이다. 미셸은 알렉스에게 약 없이 자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한다. 이처럼 미셸은 알렉스에게 일상의 평온함을 알려주려 했지만 알렉스는 약 없이 잠들 수 없다. 알렉스는 일상의 평온함을 가질 수가 없다. 그런 알렉스가 미셸을 사랑하기 위해서 알렉스는 미셸이 그 다리를 떠나지 못하도록 미셸을 타락시키고 파괴시키려 한다. 알렉스는 누구도 자신에게 누군가를 잊는 방법을 알려준 적이 없어 자신의 손을 총으로 쏠 수밖에 없던 것처럼, 누구도 그에게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아서 그는 미셸과 평온하게 사랑하지 않고 함께 타락한다.


  미셸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이 알렉스 자신을 상처 입히고 자해시킨다. 총으로 자신의 손을 쏘고, 거친 돌에 계속해서 자신의 머리를 상처 입힌다. 영원한 어둠에 갇힐 수도 있는 그녀를 자신의 곁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 알렉스는 그녀의 희망을 불태운다.

“꿈을 꾸었어. 네가 떠나고 난 뒤, 퐁뇌프 다리에서의 밤, 나는 길을 잃었어.”


결핍을 채워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알렉스의 사랑은 결핍을 지속시키고 더 깊은 어둠으로 같이 가라앉게 만드는 것, 현실에서 벗어나 계속하여 도피하도록 하는 것. 알렉스는 미셸을 파괴시키고자 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은 서로가 구원이라고 착각하게 만들고 그런 환상을 갖게 하고 함께 현실에서 벗어난다. 현실에서 벗어나면 그 방황의 길에선 서로를 서로가 구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두 연인을 보면 의문이 든다. 사랑의 본질은 파괴적인 건가? 사랑하는 이를 속박하고 가난하게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리고자 한다. 서로에게 구원이 서로밖에 남지 않는 상황에 이르도록, 그런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도록 서로를 끌어내리고 같이 타락한다. 이것은 서로를 숭고하게 하고, 서로를 발전하게 만드는 사랑과 다르다. 서로를 파괴시킬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사랑이다. 그들의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물에 빠뜨려 죽이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어찌 알겠는가, 그들에겐 그것이 사랑이고 구원이었음을, 그들만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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