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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감성

화가 김종학의 봄꽃 그림을 중심으로

by 우 재

매년 4월이면 열리던 진해 군항제가 취소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럼에도 상춘객으로 북적인다고. 한국의 블로거들이 올리는 봄꽃과 벚꽃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한국에는 한창 봄이 터지고 있는 것 같다. 사진만 봐도 마음이 살랑인다.


06-Spring-2006-oil-on-canvas-91-x-145-cm-2 복사본.jpeg 김종학, <봄>, 2006. 천지에 봄꽃이 만발한 날, 꽃마중 나온 상춘객들의 알록달록한 옷색깔이 환영처럼 떠돈다.




애크론에는 이제야 봄이 빼꼼히 고개를 디밀기 시작했다. 수선화가 꽃망울을 맺고 있고, 그 중 성질 급한 몇 놈은 꽃을 터트렸지만 갑자기 찾아온 꽃샘추위에 놀라지나 않았나 모르겠다. 크로커스도 땅에서 올라오는 중인데, 며칠 동안 닥친 영하 8도의 추위에도 꺽이지 않고 잘 버텨주었다.


산수유인지 생강나무인지 모르겠으나 노랗게 새싹이 터지고 있고, 참새 혓바닥만큼 작은 연초록의 나뭇잎이 돋아나고 있다. 아직 봄의 색깔이 제한적이지만 조만간 빨강, 분홍, 노랑 등 화려한 색채의 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03-Ginger-Flower-2003-oil-on-canvas-72.7-x-90.9-cm-2.jpg 김종학, <생강나무>, 2003




미국으로 이주하여 6년째 오하이오주의 애크론에서 살고 있지만 매년 봄이 되면 무언가 마음이 꽉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애크론의 봄은 화려하긴 하지만 한국의 봄과 같이 사람의 혼을 빼놓는 황홀경은 좀 부족하다. 한국의 이른 봄은 매화로 시작하여 마침내 벚꽃이 온천지를 뒤덮으면 세상이 온통 뿌옇게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눈앞이 아슴해지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환영에 빠져든다.


08-Spring-2008-oil-on-canvas-60.6-x-72.7-cm.jpg 김종학, <봄>, 2008, 달밤의 홍매가 아닐지!
04-Cherry-Blossom-2004-acrylic-on-canvas-60.6-x-72.7-cm.jpg 김종학, <벚꽃>, 2004




비슷한 시기에 연핑크의 진달래와 노란 개나리와 백목련, 자목련이 피어나지만 벚꽃의 환영에서 벗어나야 이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화려하고 선명한 색의 온갖 봄꽃이 피어나 봄은 산뜻하고 화려하게 변모하지만 벚꽃이 지고 벚꽃 때문에 나갔던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와야 이 봄꽃의 화려함에 눈길이 가기 시작한다.


01-Azalea-2001-oil-on-canvas-130.5-x-177-cm-2.jpg 김종학, <진달래>, 2001
03-Spring-2003-oil-on-canvas-80-×-116.5-cm.jpg 김종학, <봄>, 2003




그런데 애크론에는 바로 이 환장하도록 마음을 들쑤시는 벚꽃의 황홀경이 봄의 향연에서 빠져 있다. 혹한의 겨울에 잔뜩 메말랐라 있던 감성에 한번의 케이오 펀치를 날려 그로기 상태로 만드는 것은 단연 벚꽃이 아닌가 싶다. 아지랭이처럼 스멀스멀 공기 속으로 피어올라 마침내 하얀 눈발처럼 바람에 폴폴 날리며 하늘과 땅을 연핑크로 바꾸어 놓는 그 며칠간을 우리는 천지 사방으로 미친 사람 처럼 싸돌아 다니며 겨울의 움츠렸던 몸에 봄물을 댕기는 것이다. 벚꽃잎이 머리 위로, 옷 위로, 그리고 내 마음 위로 팔랑이며 떨어지면 마침내 우리는 봄을 온전히 맞이하는 것이다.


04-Spring-2004-oil-on-canvas-73-x-91-cm.jpeg 김종학, <봄>, 2004, 새와 나비가 벚꽃 속에서 환성을 터트리는 것 같다.




온천지가 뿌옇게 대기 속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한국의 봄과 같은 황홀경을 맛볼 수는 없지만 애크론에도 조만간 봄이 폭발할 것이다. 봄꽃의 향연이 이곳에서도 펼쳐질 것이다.


김종학 작품 사진 출처 : kimchongh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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