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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 재 May 31. 2022

송화가루는 바람에 흩날리고...

송화의 계절

며칠동안 컨디션이 좋지 않아 아침 산책을 걸렀다. 감기증상처럼 목도 아프고 콧물도 나서 혹시나 코로나인가 싶어 검사해봤지만 아니었다. 에어컨으로 인한 냉방병이었던 모양이다. 며칠 만에 아침에 나가니 그 사이 만병초는 지고 있고, 나뭇잎은 더 싱그럽게 자라 동네가 좁아 보였다.  오랜만에 산책을 하며 동네의 나무와 꽃들을 하나 하나 살피듯 걷다보니 2시간여 산책을 했다. 


동네의 나무들을 거의 파악하고 있다 보니 종종 나무가 베어져 사라졌거나 강풍이나 비바람에 쓰러졌거나 하면 몹시 속이 상한다. 일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지난 주 월요일, 아침 산책을 하다가 한 나무를 보고 울컥 화가 치밀었다. 누가 소나무 가지를 뚝 분질러 직각으로 꺽어 놓았기 때문이다. 소나무 가지 하나가 인도로 길게 뻗어나와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좋았다. 매일 아침 그 앞을 지날 때면 인사를 하듯 허리를 굽히고 지나가며 손으로 솔잎을 툭 건드리며 '안녕!'하며 아침 인사를 건네곤 했다. 


인도로 가지 하나를 길게 뻗고 있던 소나무




그런데 누군가 허리 굽히기가 싫어서 그랬는지 수년 간 그 자태를 유지해 오던 소나무 가지를 분질러 놓은 것이다. 이미 수꽃이 열리고 있었는데, 꺽인 가지에 조롱조롱 매달린 수꽃을 보고 있으니 어찌나 안스럽고 처연한지 더 화가 났다. 며칠 간 그렇게 꺽인 가지가 방치되어 있더니 주인이 정리를 했는지 오늘 아침 산책 길에 보니 꺽인 가지를 아예 잘라 내어 말끔하게 정리를 해놓았다.


누군가 꺽어놓은 소나무 가지. 주인이 정리를 했는지 꺽인 가지는 없었다.
이제 이 앞을 지날 때 허리를 굽힐 필요는 없지만... 아쉽다.




아침에 중간 지점을 돌아 다시 이 소나무 앞을 지나려던 참이다. 살짝 언덕이 진 구간이라 언덕을 올라 점점 소나무에 가까워지려는데 기침이 났다. 잔기침이 계속 나서 목이 건조해서 그런 줄 알았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눈도 뻑뻑해졌다. 그냥 생리현상이려니 했다. 그런데 소나무 근처에 다가와 잠시 멈춰 서서 소나무를 보는데 연기처럼 무언가 움직였다. 그렇다. 바람에 소나무 가지가 흔들리며 송화가루가 날리고 있었다. 노란 송화가루. 가루가 날리며 목을 간지럽히고, 가루가 눈에 들어가 뻑뻑했던 모양이다. 한동안 서서 송화가루가 날리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소나무의 수꽃, 송화
송화가 마치 황금구슬처럼 조롱조롱 매달려 있다.




한국에 살 때 아파트의 베란다 창을 오래 열어 놓은 날이면 발바닥에 노랗게 무언가 묻어났다. 청소를 하면 걸레가 노랬다. 바로 송화가루가 날리는 계절이면 얼마나 멀리까지 날아 왔는지 송화가루가 거실안으로 날아들었던 것이다. 


옛날도, 현재도, 송화가 흩날리는 계절이면 이 송화가루를 모아 다식을 만든다. 전통다식문양을 넣어 찍어낸 송화다식을 볼 때면 이 정도로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송화를 모았을까 싶어 그 수고로움에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사극에 보면 조선시대의 왕이나 왕족의 다과상에 송화다과가 올라가는 장면을 보곤 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송화를 모아 다과를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수고로운 일이 아닐런지!


한국사람으로 소나무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산에 가도 소나무가 흔했고, 아파트의 정원수로도 몇 그루 심겨 있어 생활 속에서 어렵지 않게 소나무를 볼 수 있었다. 미국의 우리동네에도 정원수로 소나무를 심어놓은 집이 몇 집 있어 소나무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정도는 된다. 그래도 한국의 붉은 황토빛 둥치의 소나무가 가진 왠지 모를 신비감까지는 느껴지지 않아서 조금 아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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