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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 재 May 30. 2022

고규홍의 ⟪나뭇잎 수업⟫으로 나무와 친해지다

나무, 인간보다 더 문화적이고 총명한...

아침 산책길에 나뭇잎을 유심히 보기 시작한지는 꽤 오래 되었다. 봄의 화려한 꽃잔치가 끝나자 나의 관심은 온통 나뭇잎에 집중되었다. 연하디 연한 새싹이 마치 태를 벗고 모습을 드러내듯 조그맣고 동그랗게 웅크리고 있던 새싹을 매일 조금씩 피워 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가상하고 어여쁘다. 그러다 제법 잎파리가 손바닥만하게 자란 나뭇잎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 덧 이리 자랐구나!' 싶어 가슴이 뜨끈해지며 감격한다. 그리고는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고 햇빛에 비추인 나뭇잎의 잎맥을 살펴 본다. 인간도 똑같은 인간이 하나 없고, 사람들의 손가락 지문도 같은 것이 하나도 없듯 나뭇잎의 잎맥도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자목련의 나뭇잎 잎맥이 가히 예술적이다.




마침 한껏 나뭇잎에 빠져 있는 이때 인터넷 서점에서 고규홍의 ⟪나뭇잎 수업⟫이란 책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바로 사서 읽었다. 읽는 동안 우리가 식물을 생명있는 존재이자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환경에 적응하는, 생각을 가진 생명체로 인정해 주지 않았던 것을 반성하게 되었다. 


고규홍, ⟪나뭇잎 수업: 사계절 나뭇잎 투쟁기⟫, 마음산책

식물은 자기를 성장시키기 위해 주변의 수종과 협력할 줄도 알고, 때로는 주도권 싸움을 벌이며 생명을 건 쟁탈전도 벌인다. 씨앗을 전파하기 위해 곤충이나 바람과 협력할 줄 알고, 아직 씨앗을 맺기 전 봄의 어린 잎을 동물이 뜯어 먹지 못하도록 가시를 돋거나, 가지를 본래 보다 더 커보이게 하기 위하여 위장술을 쓰거나, 동물이 싫어하는 맛을 내거나, 독성을 품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기를 보호한다. 


식물의 진화과정을 알고나니 그 과정이 인류의 지성의 발달과정 만큼이나 대단히 지적인 과정을 거쳐왔음을 알 수 있었다. 환경에 적응하고, 씨를 퍼트리기 위해 자연과 곤충, 동물과 협력을 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켜온 것을 알고 나니 식물을 단순히 대상으로 볼 수 없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평소에 식물에 대해 궁금했던 궁금증 몇가지를 해소했다. 그것을 중심으로 이 글을 써보려고 한다. 따라서 이 글은 책에 대한 리뷰이지만 동시에 오랜 기간 아침마다 산책 길에서 마주친 꽃과 나무에 대해 궁금했던 것이 먼저 있었고, 그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발견해 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 책의 내용을 언급하는 정도의 리뷰 글이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참고로 글에 사용된 사진은 출처를 밝힌 아래의 광합성 관련 사진 이외에는 모두 아침 산책길에 내가 찍어 두었던 사진들임을 미리 밝혀둔다.  


우선 식물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것은 광합성이다. 저자는 광합성이란 물과 햇빛만 있으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며 시적으로 표현해 놓기도 하였다. 뿌리에서 물을 빨아 올려 나무에 공급을 하면, 잎은 잎의 기공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그리고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한다. 즉 광합성은 물과 이산화탄소와 햇빛이 서로 작용하여 포도당을 만들어 내는 과정인데, 이 포도당은 나무의 생명을 보존하는 영양소이자 씨앗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지구상의 생명체 중에 스스로 영양소를 생산하는 것은 식물 밖에 없다고 한다. 


광합성에 대한 화학식. 6개의 이산화탄소와 6개의 물분자가 만나 포도당과 6개의 산소분자를 만들어 낸다.
뿌리가 물을 빨아들이고, 나뭇잎이 이산화탄소와 햇빛을 흡수하여 포도당이 만들어지고 산소가 배출되는 것을 도면화한 그림(사진출처:ko.wikipedia.org)




그리고 이 광합성 과정의 부산물로 분출되는 것이 산소이다. 따라서 나무가 많은 지역의 공기가 신선한 것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대신 산소를 내보내기 때문이다. 나무 아래 앉아 있으면 시원한 것은 비단 산소와 그늘 때문만은 아니다. 나뭇잎은 수많은 기공을 통해 수분을 발산한다. 수분을 기화한 형태로 내보내기 때문에 나무 그늘에 앉아 있으면 시원한 것이다. 


옥잠화 잎의 기공으로 분출된 수분




가을이 되면 나무는 슬슬 겨울 준비에 돌입한다. 가을이 되면 나뭇잎은 단풍이 들었다가 잎을 떨군다. 단풍은 기온에 의해서가 아니라 햇살의 양이 적어지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낙엽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무에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잎에는 수많은 기공이 있어 수분이 계속 빠져 나간다면 가을이 되어 광합성을 멈춘 나무에게는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 또 잎이 매달려 있던 가지에서 나뭇잎을 떨구어 내고 나면 수분이 통과하던 통로를 막아 버린다. 서서히 겨울을 준비하는 것인데, 겨울이 되면 뿌리는 물의 흡수를 멈춘다. 혹시나 수분이 오가는 관이 겨울에 얼어 터지는 일이라도 생기면 나무에게는 치명타가 되기 때문에 잎도 떨구어 내고, 가지와 잎을 이어주던 수관도 막아서 그야말로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으로 겨울을 나는 것이다. 


나는 책에서 소개한 꽃과 나무 중 연꽃과 수국에 대한 설명이 흥미로웠다. 연꽃 자체도 탐스럽고 자태가 곱지만 우산으로 써도 될 만큼 넓적한 연꽃잎은 연꽃 만큼이나 한여름을 대표하는 식물이 아닌가 한다. 나는 특히 연꽃잎 위로 물방울이 수정처럼 또르르 굴러 다니는 장면을 보면 꺼뻑 넘어갈 만큼 좋아한다. 이렇게 물방울이 잎에 흡수되지 않고 굴러다니는 이유는 연꽃 이파리가 끊임없이 파동을 일으키기 때문에 잎의 미세한 털 위에서 물방울이 흡수되지 않고 또르르 구르게 된다는 것이다. 


2017년 6월 중순 중국 후난성 이양의 한 연꽃 공원에서 촬영




수국에 대해서도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 동네의 수국에 한참 새잎이 돋아나고 있는 것을 보는데, 동시에 작년에 피었던 수국 꽃송이(사실은 꽃받침이 변한 것)가 지지 않고 마른 채로 그대로 매달려 있는 것을 본다. 작년 수국이 한겨울의 폭설과 온갖 비바람에도 꺽이지 않고 건조된 채로 지금도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어쩌면 이토록 수명이 질길 수 있을까! 


우리 동네에서 작년 7월 초에 찍은 흰수국
올해 5월 21일에 찍은 같은 집의 같은 수국. 잎은 새로 돋아나고 있는데 작년의 수국 꽃받침잎이 아직도 달려있다 .




그러나 기실 수국 꽃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꽃이 아니고 꽃받침잎이 꽃처럼 변하여 송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꽃받침잎의 역할은 무엇일까? 진짜 수국꽃이 크기가 너무 작아서 수정을 시켜 줄 곤충에게 잘 띄지 않기 때문에 꽃받침이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 꽃처럼 화려하게 변한 것이다.  


수국의 꽃받침잎 안쪽에 동그란 단추처럼 작게 보이는 것이 진짜 꽃
산수국도 바깥의 꽃처럼 보이는 것은 꽃받침잎이고 실제 꽃은 안쪽에 작은 구슬처럼 옹기종기 모여있다.




저자는 꽃잎의 역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꽃잎은 꽃 속의 암수술이 수정을 잘 하도록 곤충을 유인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벌과 나비와 같은 곤충에 의해 수정이 이루어지고 나면 더 이상 꽃잎은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꽃잎을 떨구어 낸다고.


그러나 수국은 꽃이 하도 작아 수정을 시켜줄 곤충을 불러들이지 못할까봐 꽃받침이 꽃처럼 화려하게 변하여 곤충을 유혹하도록 돕는 것이다. 따라서 꽃받침잎 안에 쌀알만큼 작은 꽃이 수정작용을 마치고 나도 우리가 수국이라 착각하는 꽃받침잎은 꽃잎이 아니기 때문에 떨어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수국이 다른 꽃에 비해 수명이 길다고 느끼는 것은 수국을 꽃이라고 착각하는데 기인한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꽃송이로 보이는 수국은 꽃이 아니라 꽃받침, 즉 잎이 변한 것이다. 


산딸나무도 수국과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산딸나무의 꽃도 크기가 너무 작아 벌과 나비를 끌어들이기 어려워 포()를 변화시커 꽃잎처럼 가장한다. 하얗게 4잎으로 나는 자태가 하도 예뻐서 꽃인줄 알았더니 이것도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 위한 변장술로 진화한 것이다. 그러니 수정을 마쳤다고 하여 포가 일찍 떨어질 이유가 없으니 하얀 포가 오래 지속이 되는가 보다. 


작년 6월 초의 산딸나무. 하얀 포엽 안의 단추처럼 보이는 것이 실제 꽃.
쟉년 9월 중순 열매가 달린 모습. 아직도 포엽이 하나 매달려 있다.




단풍나무에 대해서도 재미있는 설명이 있다. 단풍나무 잎이 봄에는 파랗다가 가을에 빨갛게 물드는 줄 알았는데, 미국의 우리 동네에 심겨진 여러 단풍 정원수를 보면서 이미 봄부터 붉은 잎으로 돋아나는 단풍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 단풍잎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붉은 색 안쪽에 초록이 비춰나와서 신기해 하던 참이었다. 


태생부터 붉은색을 가진 단풍잎




책에서 설명하길 이 품종은 단풍나무가 인기가 있어 태생부터 아예 빨갛게 잎이 돋는 단풍 품종을 개발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태생이 붉은 단풍일지라도 꽃이 필 때와 열매를 맺을 때는 포도당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광합성을 한단다. 붉은 단풍 안쪽으로 초록색 잎이 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5월들어 단풍 안쪽으로 초록색이 많이 보였고, 가을 무렵이면 또 붉은색 속에 초록이 많이 보였던 것이 그런 이유였음을 알게 되었다. 


붉은색 단풍잎 안쪽에 광합성을 하느라 초록색을 띤 나뭇잎이 숨어 있다.  




이 외에도 새롭게 알게된 지식이 많다. 식물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 이후로 우리나라와 외국의 여러 책을 읽어 보았지만 이 책에서 만큼 식물에 대해 애정이 느껴지는 책은 없었다. 나무 컬럼니스트인 저자 고규홍은 나무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분인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일간지 기자로 12년간 활동하다 나무를 찾아 떠나 24년째 나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식물이라면 나를 이만큼 사랑과 열의를 가지고 깊게 바라봐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할 것 같다. 식물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이라면 읽어보시라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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