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 재 Jun 07. 2022

꽃가루 날리는 6월

주역의 원리로 식물을 이해하다

산책 길에 바람이 불면 키 큰 나무에서 무언가가 우루루 먼지처럼 쏟아졌다. 안보였으면 좋았을텐데 햇살이 화창하니 날리는 것이 모두 투명한 햇살 속에서 낱낱이 보였던 것이 문제였다. 순간 '아, 꽃가루!' 하고는 눈을 감고 코는 손으로 막았다. 오하이오주의 북동부, 내가 사는 이 도시는 특히 봄의 꽃가루로 악명이 높아서 알러지 환자가 많은 주라고 남편에게 들었다. 미국으로 이주하고 나서 약 5년간 나는 한국에서는 앓아본 적 없던 코 알러지로 고생을 했다. 


오늘 아침 산책길에 보니 꽃가루가 흩날려 마치 하얀 솜뭉치 처럼 양쪽 길가에 쌓여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그 안에 개구리 알이 뭉쳐있는 것처럼 하얀 꽃가루 안에 씨앗이 콕콕 박혀 있었다. 오묘한 자연의 섭리! 이렇게 꽃씨는 바람에 실려 천지 사방으로 어디로든 날아가는구나. 그래서 그 넓은 땅을 두고도 보도의 사이에 떨어지는 씨앗도 생기고, 그 좁은 틈바구니에서도 뿌리를 내리는구나! 


꽃가루가 날려 마치 솜뭉치처럼 길가에, 잔디밭 위에 떨어져 있다.
하고 많은 땅을 두고 왜 이런 곳에 뿌리를 내렸을까 안스러워 했는데, 이것이 생명의 강인함이 아닐런지!




오늘이 망종이다. 망종이 어떤 날인가 찾아보니 망종 전에 보리를 수확해야 하고, 또 벼와 같이 까끄라기가 있는 식물을 심기에 적당한 날이라고 나와 있다. 먹고 살 것이 없어 소나무 껍질을 벗겨 죽을 끓여 먹고, 초봄에 들판에 피어나는 산나물을 뜯어 연명하던 가난한 백성들이 드디어 보리를 수확하여 배고픔의 고통을 모면하던 시기가 아니던가? 보리고개를 겪어보지 않은 내 세대로서는 바로 윗세대 어르신들로 부터 "보릿고개를 넘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지!" 하시는 말씀을 들어도 감정이입이 잘 안되었다. 그러나 배고픈 고통만큼 큰 고통이 있을까.


망종 무렵부터 계절은 조금씩 수렴의 시기로 접어든다. 식물이 초봄 부터 5월경까지 밖으로만 뻗어내던 기운을 하나씩 수렴하며 씨앗과 열매를 살찌게 하기 시작하는 때이다. 이 말을 들으면 "벌써?" 할지 모르지만 산책 길에 나무들을 보면 벌써 씨앗을 조롱조롱 매달고 있는 나무가 많다. 


꽃들은 4~5월에 꽃을 피워내어 벌과 나비와 같은 곤충들에 의해 수정이 끝나고 나면 이제는 꽃을 떨구고 씨를 실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나무들도 꽃가루를 쏟아내며 수정을 하고, 수정이 되고 나면 이제는 씨나 열매를 성장시켜 나가기 시작한다. 밖으로 향하던 기운을 이제는 하나씩 거둬들이며 씨앗을, 또는 열매를 성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나는 이런 과정을 주역을 공부하면서 더 자세하게 이해했다. 주역에 <12벽괘>라는 것이 있다. 일년 열두달의 변화를 주역의 괘효를 사용하여 풀이한 것으로 우리의 전통적 시간관인 절기와 더불어 표기해 놓았다. 물론 이 12벽괘는 절대적인 시간을 다룬 것이 아니라 철학적이자 심리적인 시간이라고 하지만, 천도를 본받아 천인합일의 삶을 살고자 했던 동양인이 천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얼마나 하늘을 열심히 관찰했을것인가! 천도가 땅에 임하여 자연현상으로 나타났으니 나는 이 12벽괘를 하늘의 섭리이자 자연의 순환 과정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12벽괘도 (사진출처 : 유튜브의 김재홍의 <소통의 인문학 주역> 에서)




위의 12벽괘 도표를 보자. (음력) 5월에 망종과 하지가 들어 있다. 이 5월의 괘상을 보면 가장 아래에 음이 하나 들어와 있다. (주역의 해석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나는 여기서 식물에 한정해서만 쓸 것이다.) 양(가로획 하나)은 뻗어나가는 기운을 의미한다면 음(가로획 두개)은 수렴을 의미한다. 


괘상에서 음과 양이 어떻게 늘어가고 줄어가는지 살펴보면 매 달의 자연 변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음기로만 꽉 찬 음력 10월의 괘상 부터 설명을 해보겠다. 


음기로 꽉 차있던 괘상에 양기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음력 11월 동지경이다. 동지를 기준으로 매일 해가 조금씩 길어진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고대에는 동지날을 새해라고 하여 기념하는 문화권이 많이 있었다. 우리가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도 사실은 동지에 연원을 두고 있다고 하지 않은가. 동지가 지나면서 하나씩 양의 기운이 늘어가다가 음력 4월(입하와 소만)에 양기가 최고치에 달한다. 이때 식물은 꽃을 피워내며 최고의 절정기에 도달한 것이다. 이때 곤충에 의해 수정도 이루어진다. 


음력 4월이 지나고 나면 식물들은 씨앗이나 열매를 실하게 하기 위해서 바깥으로 향하던 기운을 수렴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음력) 5월에 음기 하나, (음력) 6월에 음기가 둘, (음력) 7월에 음기가 셋, (음력) 8월이면 음기가 넷이 된다. 이렇게 기운을 안으로 점점 응축해 나가며 씨앗과 열매를 실하게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음력 8월이 되면 오곡백과가 풍성한 가을이 되어 조상님께 처음 나온 오곡백과로 차례를 올리는 것이다. 지금이야 그것이 개인사가 되었지만 예전에는 추수를 마치고 나서 하늘에 제를 올리며 큰 축제를 벌였지 않았던가!


이제 식물이 그 다음으로 할 일은 겨울 날 준비에 돌입하는 것이다. 씨앗과 열매를 풍성하게 쏟아내었으니 이제 모든 것을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에 쏟는다. 햇살이 점점 줄어들자 나무는 단풍이 들기 시작하여 잎을 하나씩 떨구어 내며 몸집을 최소한으로 줄여 나간다. 12벽괘를 보면 (음력) 9월에 음기가 5개 들어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고, 서리가 내리면 바로 이어 양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음기만으로 꽉 차 있는 (음력) 10월이 되어 얼음이 어는 겨울로 돌입한다. 주역에 보면 "서리가 내리는 것을 보면 곧 얼음이 얼 것임을 안다" 라는 구절이 있다. 계절의 변화에 대한 설명일 수도 있고 인생사와 관련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음력) 11월에 들어서 우리에게는 혹독한 본격적 추위가 닥쳐오는 때이지만 동지가 지나며 이미 땅 속에서는 식물들이 봄을 대비하여 양기를 하나씩 늘려 나가기 시작한다. 음력 11월 괘에 보면 양기가 하나 들어왔다. 그리고 매달 양기를 하나씩 늘려가며 봄을 맞이한다. 이렇게 계절은 순환하며 영고성쇄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식물은 이 더위에 기운을 하나씩 안으로 수렴해가며 한여름의 땡볕을 씨앗과 열매를 성장시키는데 쓸 것이다. 사람살이도 식물을 닮으면 좋지 않을까? 한여름에 덥다고 밖으로 짜증을 발산하기 보다는 더위와 짜증을 차분히 안으로 수렴해가며 마음의 결실을 맺도록 노력한다면! 자연의 섭리는 알면 알수록 참으로 오묘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