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동부의 시골 별장에서 화학물질 공포를 경험하다
나는 토론토에 가면 마치 서울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일단 높고 큰 빌딩이 많다. 인구밀도가 높은 만큼 아파트형 주거구조가 많다. 서양사람보다 동양사람이 더 많이 보인다.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들린다. 미국식의 남을 배려하는 뒷사람을 위해 문을 열거나 붙잡아 주는 매너 같은 것은 토론토에서는 일상은 아닌 듯하다. 그만큼 바쁘다는 의미겠다.
토론토를 보고 있으면 이 넓은 나라에 왜 이토록 아파트형 주거문화가 많을까 의아하다. 넓고 넓은 땅이 있는데 왜 토론토에서는 항상 교통체증이 일어나며, 도심은 왜그리 촘촘하게 지어졌는지도 의아하다. 토론토를 볼 때마다 땅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화시설, 삶의 편리성이 몰려있는 곳으로 사람이 몰린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도심의 도로에 전차와 자가용이 혼재되어 지나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너무 복잡해서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이다.
그래도 도심을 지나는 동안 보는 토론토 시내의 상업용 빌딩들이 멋있어서 연신 사진을 찍어댄다. 빌딩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있다. 하나도 같은 디자인이 없다. 글라스 외관이 많다. 마치 미래형 도시에 온 것 같다. 한국의 도심도 새롭게 건설되거나 리모델링된 빌딩이 많아서 한번씩 서울나들이를 할 때면 눈이 휘둥그레지곤 했지만 말이다.
토론토의 상징적 건물인 CN타워는 토론토 시내의 어디에서든 보였다. 우리의 남산 타워와 같이 산 위에 솟은 것이 아니라 평지에 세워져 있어서 감흥은 덜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도시민들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 주는 것 같다.
이런 대도시 토론토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 동부의 뉴브런즈윅주에 있는 베이가의 가족 캠프(별장)로 갔다. 캠프의 자연은 여전했다. 자연의 풍광이야 매년 새로워지지만 큰 변화야 일어나겠는가? 유심히 베이의 수면 높이를 지켜 보았다. 내가 보기에는 예년에 비해 수위가 조금 높아진 듯한데, 정작 종종 이곳을 방문하는 시댁의 형제자매 말로는 별로 높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코로나 전에 찍은 사진과 이번에 찍어온 사진을 비교하니 수위 차이가 제법 나 보인다.
매년 여름 2주만 머무는 공간이다 보니 나무로 지어진 캠프는 나날이 손볼 곳이 늘어난다. 올해는 유독 더 손볼 곳이 많아 낮시간에는 가족들이 캠프 고치기에 바빴다. 전부 3채로 이루어진 캠프는 예전에 시아버님과 3명의 형제가 같이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벌써 수십년이 흐르고 보니 매년 여름에 가족이 모이면 여기저기 손봐야할 곳을 수리보수를 해야 한다. 모두 수리에 동참하면서도 틈틈이 각자 자기 처소로 돌아가 쉬고 오곤 했다. 나는 내가 머물던 공간이 내내 수리중이라 잠시도 개인시간을 보낼 곳이 없어 낮에 피아노 연습을 하러가는 남편을 따라 나가 남편의 연주도 듣고, 연습 끝나고는 같이 펍에 들러 몇 시간의 개인 시간을 가지면서 감정의 휴식을 취했다.
캠프에서의 에피소드
이번 휴가 동안에는 바로 이 캠프와 관련하여 두가지 기억에 남을 경험을 했다. 하나는 화학전을 방불하는 두려움을 경험한 일이다. 하필 우리 부부가 묵던 캠프 건물을 총체적으로 수리중이라 메인 캠프로 우리의 휴식처를 옮겼다. 두채의 캠프는 숙박용으로, 메인 캠프는 샤워실과 주방을 갖춘 큰 거실 형태의 건물이라 낮시간은 모두 이곳에 모여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우리가 머물던 건물이 수리로 인해 숙박이 용이치 않아서 메인캠프에서 숙박을 하기로 하고 짐까지 모두 옮겨 놓았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사건이 터졌다. 메인 캠프의 등이 하나 터진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데럴(남편의 남동생의 사위)이 모두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연유를 모르는 가족은 모두 한순간에 밖으로 뛰쳐 나갔다. 데럴이 말하길 그 등이 오래 전에 만들어진 제품이라 그 안에 화학성 물질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몸에 대단히 유독한 물질이라 호흡하면 간이나 콩팥에 유해하다고 했다.
데럴의 외침에 마치 화학전을 방불할 정도로 모두 그 건물을 뛰쳐나온 가족들은 정신이 들자 바로 소방서로 연락을 했다. 소방관이 와서 안전성을 확인해 주어야 그 건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방서에서는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날이 토요일이었지만 소방서는 24시간 일하는 장소 아닌가! 할 수 없이 911으로 연락했지만 그곳에서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가족 모두 한마디로 멘붕이 왔다. 왜 응급기관들이 전화를 받지 않는가? 그 지역의 소방서는 민병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운영한다고 하는데, 코로나를 거치면서 시스템이 많이 무너진 모양이었다. 갑자기 애크론에서 수시로 들리던 앰뷸런스와 소방차 소리가 시스템이 잘 운영되고 있다는 증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 모두 두 동생이 거처하던 캠프의 발코니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 어떻게 할지 토론을 했다.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서양인들의 토론문화를 엿봤다. 마침내 친척 중의 한명이 소방관이라는 것을 떠올린 가족들은 전화를 했고, 그 분 말씀이 등 하나 터진 정도의 화학물질로는 크게 위험한 것이 아니니 괜찮다고 했다. 다음날 하나 더 벽에 달려 있던 똑같은 등을 제거해 내고, 등이 깨진 주변으로는 모두 물걸레 청소를 했다. 하루 더 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한 다음 세째날 부터 다시 메인 캠프에서 투숙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 역시 화학물질과 관련이 있다. 두 동생이 머물던 캠프에 개미가 너무 많아서 개미 킬러 두통을 뿌렸다. 그 냄새가 너무 심해서 동생 가족들이 모두 메인 캠프로 옮겨왔다. 도시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화학물질에 대한 부작용을 천혜의 자연 속에서 겪은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세 채의 건물 중 두 채는 수리 및 벌레 제거로 모두 비워두고 메인 캠프에서 모든 가족이 같이 먹고, 놀고, 잤다. 이미 노년을 앞둔 가족들이 커다란 메인 캠프에서 각자 잠잘 장소를 정했다. 우리 부부는 쇼파겸용 침대를 펼쳐서 이미 잠자리로 삼고 있었고, 개미 킬러 때문에 뒤늦게 메인 캠프로 옮겨온 두 동생들 중 남동생 부부는 메트리스를 바닥에 깔았고, 싱글인 시누이는 카우치를 독점하여 잠을 잤다. 잠귀가 밝은 사람들은 귀마개를 하기도 하고, 안대를 착용하기도 했다. 평소에는 속옷차림을 보일 일 없던 가족들이 허용가능한 선에서 속옷차림으로 잠을 자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습기도 하고, 이것이 가족이지 하는 즐거운 감상도 들었다.
이런 와중에 나는 손아랫 동서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닛은 손아랫 동서이지만 나이는 나보다 훨씬 많다. 남동생 부부는 올해 초에 은퇴를 해서 은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었다. 마침 동서 재닛이 꽃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해서 한참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찍은 꽃사진을 카톡(시댁 식구들 중 큰형님네만 빼고는 카톡을 사용한다)으로 보내주기도 하고, 그녀가 공부하는 꽃과 식물 이야기도 들었다. 대학에 등록해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는 재닛과 코로나 기간 동안 식물에 관심을 갖게된 나는 좋아하는 것이 같다는 공통점만으로도 무척이나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휴가를 마치고 다시 토론토로 돌아온 우리는 남편의 친구인 에모리 대학교의 교수 윌과 부인 인지가 마침 토론토로 여행을 와 있어서 같이 만나 저녁식사를 한 것이다. 북부와 남부라는 거리 때문에 미국 땅에서도 잘 만나지 못하는 친구를 캐나다에서 우연히 시간대가 맞아 만나다니 그 자체로 이미 우리는 신이 났다. 다음날 윌 부부는 몬트리올로 여행을 떠나고 우리 부부는 우리가 사는 애크론으로 돌아왔다.
돌아오자 마자 뒷정리하느라 하루를 온전히 보냈다. 그리고 바로 도시로 컴백한 증상을 겪고 있다. 숙면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캠프에서는 너무도 잘 잤다. 그리고 많이 잤다. 불을 끄면 눈 앞에 아무것도 안보일 정도로 칠흑같은 곳이라서 그런지, 또 컴퓨터를 보지 않고 낮시간에 햇살을 많이 봐서 그런지 잠이 잘 왔고, 푹 잤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많이 자도 머리가 무겁다. 도시와 시골, 이 두 가지를 다 누릴 방법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