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노 Art Nomad Dec 27. 2024

#45 「This Is Water」 11화

넌 그저 더러운 돼지이거나 그 돼지의 무리


데이빗이 몸을 틀고 있는 서남쪽에는 집이 약 다섯 채 있다. 이 쓰레기 마을에서도 가장 밑바닥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길 왼쪽에 두 채, 오른쪽에는 세 채. 오른쪽 세 채의 집 뒤로는 쓰레기 강이 펼쳐져 있다. 오 년 전, 통역가는 분명 그걸 강이라 했는데 둥둥 뜬 쓰레기가 가득 덮여 있어 언뜻 보기에 땅처럼 보였다. 

     

절대 그 물에 가까이 가면 안 된다고 통역가가 주의를 주었었다. 절대 가까이 가면 안 된다던 물에는 대여섯 살의 아이들이 다이빙하며 검게 변한 스티로폼 박스를 껴안고 헤엄을 치고 있었다. 수원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끊겼는지 모르겠으나 쓰레기로 덮인 강물은 이미 고인 게 분명했다. 쓰레기들은 어디에도 떠내려가지 않았고 그대로 고여 썩은 내가 진동했다. 은혜는 시체가 대여섯 구 정도 썩고 있다고 해도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다.     


「꺼져버려! 빌어먹을 한국 새끼들!!」     


단전에서부터 끌어온 욕지거리가 은혜에게 꽂혔다. 당시 이 구역으로 지역조사를 나온 한국 사람은 은혜밖에 없었다.      


은혜는 입구부터 밟아온 한국산 쓰레기들을 겨우겨우 무시하며 이 참혹한 광경에 정말 책임이 없는지 묻는 심장의 소리를 가까스로 버티는 중이었다. 다시 리조트 숙소에 들어가면 시원한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씨발, 나는 안전해!’라고 열 번쯤 외치고 쇼핑몰에 들어가서 다 잊으려는 참이었다.     

 

「니네 땅으로 돌아가라고 씨발 것들아!!」      


발음이 군데군데 뭉개졌고 목소리가 다 갈라졌지만, 은혜는 똑똑히 알아들었다. 같이 온 통역 담당은 영어와 현지어를 통역할 뿐 한국어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적대적인 꼬마를 한국인에게 보이는 게 부끄러운 눈치였다.      


신입사원이었던 은혜는 안 그래도 최소 여섯, 많게는 열하나, 둘쯤 되는 식구들이 겨우 일주일도 못 버틸 식량을 나누어주려 이집 저집 들쑤시며 감사 인사를 받는 이 비열한 위선의 짓거리가 배알이 꼴려가던 차였다. 어딜 보아도 자기보다 어려보이는 여덟 남매의 엄마를 마주한 후로는 걸을 기력도 없었다. 

      

집집마다 코피노는 적게는 둘, 셋 많게는 다섯도 있었다. 은혜에게 악을 써대던 아이도 코피노였다. 인상은 열두어 살처럼 보였지만 아이의 눈에는 벌써 그늘이 지고 있었다. 그마저도 작은 키, 가는 팔 덕에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었다.      


아이는 분명 집 안에 있었으나 집에는 벽이 없었다. 그저 천막으로 대충 둘러놓은 경계 안에는 이 찌는 듯한 더위에 뭐든 더는 할 기운이 남지 않은 아이들이 드러누워 있었다. 모두 넷이었다. 은혜에게 욕을 해대던 소년의 손에는 뒤지다 만 비닐들이 쥐어져 있었다. 이 쓰레기 마을 전부가 다 배고픈 아이들이 넘치는 집들이라 쓰레기에서조차도 더는 먹을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움켜쥔 손은 핏대가 서고 부들거렸다. 소년은 핏대 선 눈으로 은혜를 노려보았다.      


은혜는 소년이 은혜 안에서 무엇을 본 것인지 짐작해 보고 오한이 들었다.      


소년은 가난과 고통과 아픔과 죽음을 쥐고 뒤흔들며 그저 잃어버리고서도 잊을 만한 돈으로 가증스러운 면죄부를 사러 온 더러운 돼지와 그 돼지무리를 보고 있었다. 소년은 그 돼지무리에게 꺼지라고 한 것이다.      


상념에서 돌아온 은혜는 목구멍으로 신물을 넘쳐 오는 것을 느꼈다.     


은혜가 자기를 알아본다는 확신에 찬 데이빗은 뭐가 그리 우스운지 낄낄댔다.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은혜는 이제 현기증이 올라와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보여줄 게 있어요. 서프라이즈니까 눈 감아봐요.」      


그는 은혜의 뒤에서 스무 살의 가늘고 앳띤 손으로 조심스럽게 그녀의 눈을 가렸다. 은혜는 어느 한 군데 데이빗과 닿지 않았지만 그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묘한 흥분으로 온몸에 열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은혜의 감은 눈은 피가 몰려 뜨거워졌다. 눈물이 차오르는 것도 같았다.      


「앞으로 가요.」      


눈을 가린 그녀는 발에 닿는 감각과 들리는 소리에 많은 것을 의존해야 했다. 그저 부스럭, 틱틱 발에 걸리는 모든 것에 움찔거리고 소름이 돋았다. 발가락 사이로 지나가는 바퀴벌레들의 감촉, 에엥거리는 파리 날아오르는 소리, 날벌레가 목덜미와 코를 스치고 가는 느낌에 주저앉을 뻔했지만, 데이빗은 주저앉을 기회도 주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쥐들이 싸우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