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모두 끝났다.
은혜의 비명은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데워진 비닐의 감촉이 그녀의 손끝에 걸렸다. 은혜는 천막 걷히는 소리와 달라진 발의 감촉으로 어딘가로 들어왔다는 걸 알았다.
「... 후우.. 후욱.. 끅.. 후우.. 」
안에서 중년 남자의 낮은 신음이 들려왔다. 앓아누운 소리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폐에 물이 차서 질식하는 소리에 가까웠다. 파리들이 날개 비비는 소리는 유난히도 거슬리게 들려왔다.
「그만, 그만...」
은혜는 매어가는 목소리로 낮게 읊조렸다.
「여기서부터가 하이라이트.」
데이빗은 부들부들 떠는 은혜의 손을 감싸 쥐고 그녀의 핸드백에 손을 넣었다. 자상하게 은혜의 손에 글록을 꽉 쥐여 주고는 검지를 방아쇠 앞에 놓아두었다.
「지금부터가 축제인걸요!」
은혜는 보지 않고도 이 사내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타앙-! 타앙-!
스냅의 반동과 밀려오는 현기증에 주저앉은 그녀의 몸뚱이를 내버려두고 그는 여전히 은혜의 팔을 들어 올려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채앵! 타앙-! 푹, 타-앙! 푸수욱.
총에 맞고 튕겨 오르는 물체들의 소리는 여운을 남기며 공간을 채웠다.
은혜는 더욱 눈을 꼭 감고 움찔거렸다.
타앙-! 후욱후욱… 타앙-! 씨이바―알!! 타앙-! 끄아아 죽여 차라리! 죽이라고, 어서!
은혜는 팔을 빼려고 온몸으로 발악했다. 데이빗은 총을 다 쏘고도 억세게 그녀의 팔을 붙들었다가 서서히 놔주었다. 긴장했던 은혜의 오른팔이 털썩, 바닥에 처박혔다. 오른팔에는 잔털이 모두 솟아올랐고 미세한 경련이 멈추지 않았다.
가까운 곳에서 지린내가 나기 시작하더니 주저앉은 은혜 곁으로 뜨거운 물줄기가 다가왔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은혜는 천천히 눈을 떴다가 곧바로 비명을 질렀다.
의자에 묶인 중년의 남자는 바로 그놈이었다.
얼굴은 피투성이에 재갈이 물린 채 비닐에 씌워 있었지만, 한쪽만 남은 오른팔의 검은 반점이 뚜렷했다. 즐겨 입던 건빵바지 밑으로 다리 한 짝 역시 사라졌다. 드러난 뼈와 살점에는 구더기들이 득실거렸다. 총소리에 어딘가로 날아갔던 파리들은 다시 돌아와 그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총알은 한 군데도 박히지 않았지만 남자는 이미 실신한 것 같았다.
은혜는 눈앞의 비참한 광경을 보고 모두 게워 냈다. 커피밖에 마신 게 없어 검은 물만 계속 게웠다. 속이 쓰려왔다. 은혜는 참을 수 없는 광경에 본능적으로 권총을 목구멍에 처박고 한참을 오들거리고 떨었다. 끝내 덜덜거리는 손으로 방아쇠를 당긴 은혜에게 돌아온 소리는 딸깍, 뿐이었다.
딸깍, 딸깍딸깍.
글록에는 남은 탄환이 없었다.
그제야 데이빗은 태연히 손수건을 건넸다. 은혜는 눈물, 콧물이 멈추지 않았다. 입에 검은 토 자국이 가득한 은혜는 데이빗이 건넨 손수건을 공허한 눈으로 빤히 볼 뿐이었다. 올려다본 그의 얼굴엔 묘하게 대표의 얼굴이 겹쳐 보았다. 그제야 은혜는 데이빗의 팔에 있는 검은 반점을 보았다.
축제는 모두 끝났다.
데이빗은 빙글거리며 만약 산채로 사람을 써는 쇼를 보고 싶다면 좀 더 있다가 가도 된다고 했다. 은혜는 충분히 즐거웠다며 억지웃음을 지으며 빙글거리는 데이빗을 뒤로 한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6.
필리핀발 인천공항행 비행기에 올라탄 은혜는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조차 믿기지 않았다.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와서도 며칠은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고요함에 자신을 묻어 버렸다. 그러다 포효하고 폭음했다. 굴러다니는 맥주 캔과 흩어진 맥주 자국 위에 뒹굴며 토하다 지쳤을 때쯤 겨우 눈을 붙였다. 그렇게라도 눈을 붙이는 게 유일하게 살아있다는 증거였지만 눈을 감았을 때부턴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되었다. 꿈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꿈에서 은혜는 늘 수영장에 빠져 있었다. 어떤 때는 쓰레기로 가득 찬 똥물이었고 어떤 때는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진한 핏물이었다. 때로는 지린내로 가득한 소변이었는데 아무리 허우적대도 죽을 만큼 갑갑할 뿐 죽지는 않았다.
행복에 겨운 신혼부부, 밤새 노래를 불러 대는 필리핀 사람들 사이로 숙소 발코니로 나와 저물어 가는 해를 즐기는 은혜 자신이 보였다. 아마 은혜는 지금 지구 반대편, 캘리포니아에서 일하고 있는 자신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승진하면 본사 발령을 받을 수 있다는 달콤한 환영을 철썩같이 믿으며. 꿈에서 열댓 발짝은 멀어져 절벽 위에 서 있는 줄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