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자신을 불렀지만 닿지 않았다.
은혜는 물속에서 간절히 자신을 불렀지만, 소리는 늘 발코니의 은혜에게 닿지 않았다.
어디선가 캐럴이 울려 퍼지고 지는 석양 위로 폭죽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은혜는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이윽고 천둥처럼 하늘을 울리는 비웃음이 들려왔다. 클럽하우스에 있던 한 무리의 길 잃은 청년들은 그 비웃음에 몸부림쳤다.
「제까짓 게.」
「헐리웃은 무슨, 허세만 가득해서는.」
「꼴 좋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집이 좀 사나 보지. 정신 못 차리는 거 보면.」
「먹고살기 바빠 봐, 저짓거리하고 다닐 수나 있나.」
「에미상이 무슨 누구 집 개 이름이야? 분수도 모르고.」
「멀쩡한 대학 나와서 왜 저 지랄로 사는지 몰라.」
「좋을 때다.」
청년들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곧이어 눈자위가 허옇게 뒤집히고 팔이 뒤틀렸다. 얼굴과 목에는 핏대가 서고 뒤뚱이는 발걸음으로 어딘가를 찾아 헤맸다. 간신히 단단한 기둥을 찾은 실업 좀비들은 천천히 고개를 뒤로 젖힌 후 온 힘을 다해 머리를 찧었다. 이쪽도 저쪽도 마찬가지였다. 쿵. 쿵.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흐르도록 쿵쿵 찢어대는 좀비들 사이로 그가 걸어왔다.
대표였다.
은혜는 온 힘을 쏟아 그를 향해 헤엄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은혜의 귀로 공명이 들려왔다.
「믿음이 떠난 자여, 나를 떠나라.」
대표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곧 말간 얼굴로 변했다. 데이빗이었다. 대표에게 향하던 은혜는 데이빗을 보자 필사적으로 반대편을 향해 헤엄쳤다. 헤엄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듯 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빙글거리는 데이빗의 웃음은 그가 그놈에게 복수한 건지, 은혜에게 복수한 건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데이빗은 천장을 향해 리볼버를 당겼다. 타-앙!!
풍덩, 풍덩, 풍덩.
허우적대는 은혜 주변으로 조각난 사지가 떨어졌다. 수영장은 진한 핏물이 번져 붉은색으로 물들어갔다. 은혜는 악다구니를 썼지만, 여전히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오색 전구는 찬란하고 트리 위의 노란 별이 반짝였다.
위 위시 유어 메리 크리스마스, 위 위시 유어 메리 크리스마스.
7.
― 서구 정신건강센터 임상심리상담사의 내담자 정은혜 씨에 대한 여덟 번째 기록
2021년 3월 25일, 정은혜 씨는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사망 날짜는 3월 18일경으로 추정된다. 이웃 주민이 이상한 냄새가 나서 112에 신고하였다. 현장에는 컴퓨터가 켜져 있었으며 로그 파일 검색 결과, 자살과 관련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담당 수사관은 외부 침입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우발적 자살로 여기고 있으나 자세한 사망의 종류는 심리 부검을 의뢰하기로 하였다. 사망의 원인은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보인다.
정은혜 씨의 담당 심리상담가로서 로그 파일을 건네받은 뒤 살펴본 결과 PTSD 증후군, 필리핀, 사기 등에 관한 기사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녀는 자신의 정신질환에 관하여 관심이 높았으나 반복되는 악몽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 환자에게 약물치료를 더욱 적극적으로 권고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이한 사항은 ‘필리핀 도피 범죄자 송환’ 기사를 다양한 매체에서 접근했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는 지난 3월 17일 국내 첫 전세기 송환 사례에 대한 것으로 필리핀에서부터 범죄자 오십여 명을 인도해 왔다는 내용이었다. 사기, 마약, 폭력 사범을 송환하였는데 이 중 대부분은 사기와 관계되어 있었다.
범죄자 호송 행렬을 보던 본 상담사는 주목할 만한 것을 찾아냈다. 범죄자들은 모두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하였으나 목과 귀 등 신체의 일부분이 노출되었다. 그중 한 명의 목에, 눈에 띄는 검은 반점이 있었다. 정은혜 씨는 상담 때에 필리핀에서 자신에게 사기를 친 중년의 남자가 계속해서 자신을 따라다니며 괴롭힌다고 호소하였다.
그 남자의 검은 반점이 자신을 노려본다고.
This is water,
This is wa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