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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This Is Water」 1화

#35 「This Is Water」 1화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아버지

by 아노 Art Nomad

There are these two young fish swimming along and they happen to meet an older fish swimming the other way, who nods at them and says "Morning, boys. How's the water?" And the two young fish swim on for a bit, and them eventually one of them looks over at the other and goes "What the hell is water?"


- David Foster Wallace


두 마리의 어린 물고기가 헤엄쳐가다가 반대편에서 오는 나이 많은 물고기를 만났다. 나이 많은 물고기는 짐짓 고개를 주억거리며 물었다.


「좋은 아침일세. 오늘 물맛은 좀 어떤가? 나 때는 말이야…」

「아, 예. 아 그렇군요. 네 그렇죠, 요즈음 물맛이, 참…. 아 어르신 때는 그렇지 않았군요.」


그와 헤어져 헤엄쳐가다가 결국 어린 물고기 하나가 말문을 열었다.


「아… 씨발, 꼰대 새끼. 그 나이 처먹어서 헤엄을 그렇게밖에 못 치면서.」


- 정은혜의 <심리 부검> 중 발견한 일기에서 발췌.



1.



여인의 감긴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다 곧 확 하고 여인이 눈을 크게 떴다.


점막 위로 가득 찬 물 때문에 시야가 뿌옇다. 하늘은 높고 키 큰 야자수 사이로 시릴 만큼 눈이 부신 햇살이 쏟아진다.


또 여기다. 회사 숙소, 비스타 베르데Vista Verde 리조트.


은혜는 여기가 어딘지 알았지만, 빠져나가는 방법은 몰랐다. 은혜는 발을 계속 버둥거렸다. 발은 수영장 바닥에 닿지 않았고 몸은 물 위로 떠 오르지도 않았다. 늘 죽지도 않고 딱 죽을 만큼 갑갑한 이 느낌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사방은 돌아보지 않아도 익숙한 풍경일 게 뻔했다.


마주 보이는 클럽하우스에는 대낮부터 오색 알전구가 반짝이고 무더위와 어울리지 않는 초대형 트리는 노란 별로 뒤덮여 바로 옆의 야자수와 대비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오른쪽 객실 밖에는 노래방 기계가 즐비할 테고, 곧 103호 야외 다이닝룸에서 필리핀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고함을 질러 대는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왼쪽 하늘에서는 드론이 날아오겠지.


은혜는 속으로 나지막하게 세어 보았다.


3, 2, 1.


드론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작은 앵앵 소리를 내며 그녀 쪽으로 다가왔다. 이어 세상의 모든 행복을 가진 양 헤실헤실 웃는 신혼부부가 걸어온다. 그 뒤를 빗과 메이크업 박스를 들고 종종 대는 웨딩 플래너와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는 사진사가 따른다.


왕왕.


리조트 입구를 지키던 강아지는 드론의 앵앵거리는 소리를 따라 짖고 그런 강아지에게 쫓기는 신부와 강아지를 잡으려 달려드는 신랑, 웨딩 플래너, 사진사, 경비원으로 인해 일대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경비원의 왼쪽 허벅다리로부터 가슴팍까지 걸쳐진 장총은 그가 뒤뚱거리며 뛰자, 불안하게 흔들렸다.


어디선가 익숙한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려왔다. 10월의 크리스마스 캐럴. 한낮의 태양과 때 이른 캐럴, 노란 크리스마스와 왁자한 소란이 낯설지 않은 평화롭고 평범한 필리핀의 아침.


은혜는 어차피 떠오르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깊이 더 깊이 가라앉고 싶었다. 그러나 어김없이 이즈음이면 불어 터진 몸이 다시 떠오르고 또 어김없이 그날, 그때를 다시 맞이했다. 그녀는 보지 않아도 다음 장면을 알았다.


한 무리의 한국 청년들이 클럽 하우스 쪽으로 걸어왔다. 그들은 중년의 한국 남자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방금 실직한 실업 좀비들이다. 삐그덕 대는 그들의 걸음은 기괴했고 녹아내릴 듯한 그들의 얼굴은 억울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모두 표정에 담고 있었다.


「그그러니까까 이게게, 어어떻게게 된된 거냐고요요, 아아버지지이—.」


중년의 남자는 짐짓 진중한 몸짓으로 이쪽으로, 저쪽으로 몸을 옮기며 무리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걸음이 더디고 생기를 잃는 좀비 같을지라도 이십 대의 청년 열세 남짓을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뭐뭐라라고고, 말말 좀 해보세요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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