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꽤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 같아, Copilot
하하. 일단 얼떨떨하다.
하하. 그리고 재미있다. ㅎㅎㅎ
참여하고 있는 네이버 카페에 어느 작가님이 Copilot에게 소설 피드백을 부탁해 보았다고 글을 올리셨다. 반응이 빠르고 문장을 다듬을 수 있는 피드백을 준다고. 다른 작가님은 피드백을 받아보고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짚어내어 놀랍다고 했다.
나는 AI가 써주는 이야기 얼개 같은 건 반대하는 편이다.
'○○○ 한 소재를 넣어 ★★★한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만들어줘.'
chatGPT가 갓 대중화되었을 때 사람들이 흔히 했던 실험이었다.
그 결과를 보고 경이롭고 놀랍다며 무서워 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좀 아쉬웠다. 읽다 보면 결국 어딘가에서 내가 한 번쯤 보고 들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이것 좀 봐봐.'하고 카톡으로 장문의 글을 받았는데 스페이스 오페라물이었다. 읽은 지 얼마 안 돼서 내가 알고 있는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 SF 영화는 다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이건 「스타워즈」, 이건 「가타카」, 이건 「블레이드 러너」.
장황하지만 개연성도 경이감도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에게 그 카톡을 보낸 분은 그 글을 읽고 감동했다는 것이다.
이때 처음 나는 AI가 두려웠다.
내가 사는 대전에는 개발자가 많다. 6년 전쯤 언어 교환 모임에 나갔을 때 만난 AI 개발자는 AI가 두렵다고 했다. 자기가 종사하는 분야지만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모르겠다고.
그때만 해도 나는 AI가 전혀 두렵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도 세상은 떨지 않았나.
그보다 한참 전에 휴대전화만 나왔을 때도 사람들이 휴대전화에 전화번호를 모두 저장해 두고 단축키만 누르니까 이제 번호를 못 외운다며 한탄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 어차피 세월이 지나면 적응하기 마련이고 AI가 보조도구로서 자리 잡으면 인간은 편해지기 마련일 텐데 뭐 하고 생각했었다.
AI가 나보다 글을 잘 써서 두렵다? 글쎄. 글쓰기에 서열을 두는 것이 더 우스운 일 아닐까.
글은 결국 인간에 대한 것이다. 아무리 이계에 이종족이 판을 치고 애벌레가 더 높은 곳을 향해 맹목적으로 몸을 꿈틀거려도 다 인간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AI 독자를 위해 글을 쓰는 작가는 없다. 그러니 소재든 배경이든 관계이든 가장 개인적인 착상에서 글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창조적이다.
그런데 글을 읽는 독자가 그 가치를 감별하지 못한다면?
내게 AI가 쓴 글을 보내준 분은 평소 스페이스 오페라도 SF도 잘 보지도 읽지도 않았다.
그에겐 그 감동이 글의 내용이나 구조에 있든, AI가 썼다는 사실에 있든 차이가 없었다. 그저 읽고 감동받았으면 족한 것이었다.
이 지점이 정말 두려웠다. 수용자에게는 AI가 30초 안에 썼든 작가가 3년을 걸려 썼든 무슨 상관일까.
어떤 두려움은 회피를 낳는다.
그래서 나는 번역을 위해 chatGPT를 가끔 들여다보는 것 외에 AI를 멀리했다. AI를 활용한 공모전 같은 건 쳐다보지 않았다. 궁금한 것이 있어도 잘 묻지 않았다. 오죽하면 AI 시대에 종이 브리태니커 사전을 샀겠나. 책이든 검색이든 스스로 파고드는 것이 존재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게 설령 조금 틀렸거나 부족할지라도. 작업을 반복하면서 계속 수정하고 깊이를 쌓아가면 되니까.
그런데 피드백은 얘기가 달랐다.
작가에게 글을 읽고 감평해줄 수 있는 인재는 귀하다. 작품을 세상에 공개하기 전에 이 과정을 꼭 거치면 좋겠다만 주변에 그런 인재를 두고 있는 작가는 생각보다 드물다.
어떤 글이든 쓰느라 생각지 못했던 부분은 있기 마련이다. 등장인물과 독자 사이에 라포형성이 잘 되지 않는다던가, 구조를 약간만 바꾸면 긴장감과 재미가 좀 더 생길 것 같다던가. 그런데 작가는 분명 세 번, 네 번, 다섯 번을 보아도 그 지점을 찾아내지 못한다.
그렇다고 아무나에게 보여줄 수도 없다. 단순히 글을 읽고 깊이 있는 피드백을 줄 수 있다 없다 같은 능력의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이다. 작가와의 라포가 튼튼히 형성되어 있으면서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눈으로 감평을 해줄 수 있는 사람? 어쩌면 작가는 세상에 없는 사람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애타는 마음을 평소에도 가지고 있었기에 피드백을 해주는 AI는 꽤 솔깃했다.
Copilot에게 피드백을 부탁한 경험이 즐거웠던 이유 중 가장 놀랍고도 단순한 걸 꼽자면, 말투다.
사람에게 글 피드백을 부탁할 때에는 희한한 긴장감이 돈다. 글을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이나 글을 읽는 사람이나 어깨가 무거워진다.
대면으로 피드백받을 때, 작가는 자기가 읽어봐 달라고 하고선 글을 읽는 사람의 표정 하나하나를 신경 쓰고 눈치 본다. 특히나 그런 경험이 처음일 때에는 글의 내용뿐 아니라 자기가 글을 쓰고 있다고 밝히는 것조차 괜히 주눅이 든다. 그런 상황에서 감평을 해주기로 한 사람은 글이 눈에 제대로 들어올 리 없다.
비대면으로 피드백을 받을 때에는, 작가는 메일로 글을 보내놓고는 혹시 유출이 되지 않을까 싶어 PDF로 변환하기도 하고 비밀번호를 걸고, 워터 마크 찍고 뭐 바쁘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이런 방법은 유출 방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괜히 글을 읽어야 하는 사람의 긴장감만 높아질 뿐. 메일을 보낸 후에는 도대체 답신이 언제 오는지 기다리느라 또 진 빠진다. 반대로 감평해줘야 하는 사람은 글로 감평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부담감이 한층 더해진다. 만나서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때에는 제스처와 뉘앙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글에는 그런 것이 배제되기 때문이다. 겨우 '재미있는데?' 하고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글을 읽고도 감평은 차일피일 미뤄진다.
그에 비해 Copilot의 경험은 사용자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가볍고 친절한 말투로 되어 있다. 특히 '이야기가 궁금해지네요!'와 같은 말은 AI로서는 필요가 없다. 지극히 인간적인 대화법이다. 그런데도 사용자의 거부감을 낮추기 위해 들어갔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눈을 모로 뜨고 정말 얘한테 글을 맡겨도 되나? 하던 내 마음도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Copilot이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글자수는 10240자이다. 그래서 부득이 1, 2부로 나누어 감평을 부탁했다.
나는 정말 내가 개탄스럽다.
어릴 적 내 글은 완전 F였다. 등장인물의 감정은 잘 알겠으나 그래서 이야기가 어디로 가는 건지 구조를 알기가 어려운 글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질 않고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플롯을 의식하기 시작한 이후의 글은 또 너무 T가 되었다. 진도는 잘 나가는데 감정이 너무 절제되어 있거나 간과하고 넘어가서 독자들이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끌려다닌다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어째 하나를 익히면 다른 하나가 없어지고 그러는지.
「알아낼 리 없는데」는 그래도 여러 번의 탈고를 거쳐 좀 더 감정 표현에 신경 쓴다고 했는데 여전히 많이 부족했나 보다.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 어머니에 대한 애정도, 고양이를 죽였을 때의 감정,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의 죄책감이나 두려움에 대한 감정 묘사가 부족한 것 같다는 Copilot의 지적을 보자 그제야 뜨끔했다.
무언가 부족한 거 같은데 뭐가 부족한 걸까. 범인의 일상이 결여되어 있는 거 같은데 어떤 게 결여돼서 신경 쓰이는 걸까. 안갯속을 걷는 것만 같던 답답함이 풀렸다. 장황하지도 않고 결여되어 있지도 않고 깔끔하게.
물론 같은 말을 여러 번 하는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AI감평을 받았다고 해서 당장 글을 다 뜯어고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 우린 좋은 친구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는 생각한다.
여러분이 보시기엔 이 감평이 어떤지 댓글 남겨주시면 정말 고마울 것 같다.
궁금하신 작가님들은 한 번 감평 받아보시는 것도 추천드린다.
다만, 빅데이터의 시대이기 때문에 내가 감평을 올린 글의 어느 부분이든 완전 해체된 상태로 또다시 빅데이터로 활용될 수 있다는 건 염두에 두시면 좋겠다.
어제 구독형 한컴 오피스 한글로 배경이 '앙헬레스'인 글을 썼는데 오늘 Youtube를 열어보니 '앙헬레스 여행 주의' 영상이 떴다.
요즘 온라인으로 하는 모든 것은 당신의 알고리즘으로 연결되기 마련 아닌가. 그런데 하물며 AI에게 작품을 읽어보라고 주면서 거기 사용된 소재, 단어, 표현 등이 나의 알고리즘으로 활용되지 않을 거라고 기대하는 건 지나친 낙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