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3 「알아낼 리 없는데」 후기

왜 글쓰기 앞에선 이렇게 무모해지는지.

by 아노 Art Nomad


「알아낼 리 없는데」는 작가들이 모여 만든 네이버 카페의 [단편 챌린지]에 응모한 작품이었다.


앞서 ‘창작의 날씨’가 24년 12월 31일 부로 서비스 종료될 것이라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이 플랫폼이 서비스 종료에 앞서 11월부터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갈 곳을 잃은 작가들이 소박하게나마 아지트로 네이버 카페를 열었다.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작가의 자질은 타고나는 것이다.’라고 했다.


처음에는 이 말이 그렇게 재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이 말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자질은 단순히 탁월함 같은 천재성을 말하는 게 아닌 거 같다.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 글을 진지하게 다루는 사람, 글을 진지하게 다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싶다.


2년여간 매일 같이 드나들며 글을 연재한 플랫폼이 엎어졌다. 그런데도 다들 다시 또 연재할 곳을 찾아 헤맸고 그들 중 누군가는 아예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버렸다. 또 다른 이는 새로운 공간이 열린 기념으로 소소한 글쓰기 공모를 열었다. 정말 자질을 타고난 작가들 아닌가.


이 소소한 글쓰기 공모전이 바로 [단편 챌린지]였다.


회원이 겨우 스무 명 남짓할 때 열린 공모전이었는데 요건이 만만하지는 않았다.


모집 분야는 호러 혹은 호러가 가미된 하이브리드 장르의 단편소설. 분량은 3000~17000자였고 비, 살인마, 저주, 귀신 이 네 가지 키워드 중 ‘비’를 반드시 포함하여 세 가지 이상의 키워드가 작품에 꼭 포함되어 있어야 했다.


평가 기준은 완성도, 참신함, 부합성, 감평 등이었다. 여기서 감평 항은 다른 작가들의 응모작도 읽고 무엇을 배웠고 무엇이 좋았고 무엇은 좀 아쉬웠는지를 반드시 남겨야 한다는 심사 조건이었다. 소설을 제출만 한다고 끝인 공모전이 아니었다.


나는 공모전 마감 5일 전에 이 카페에 가입했다.


나는 글 쓰는 속도가 느리다.


장편 첫 10화까지 쓰는데 수개월이 걸리고 단편에는 더 취약해서 몇 년씩도 걸린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마음을 접으려고 했다. 딱 5일만 버티면 되는데… 다른 사람들이 제출하는 거 보니까 해보고 싶어졌다. 하루 전에.


희한하지? 다른 건 욕심이 안 나는데 왜 글쓰기 앞에선 종종 이렇게 무모해지는지.


폴더를 열어 그간 써두었던 작품 중에 키워드 요건을 맞출 수 있을 만한 작품이 없나 살펴봤다. 그때 이 「알아낼 리 없는데」라는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11,000자 정도를 덜어내야 했다. 그 정도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알아낼 리 없는데」는 2023년 3월에 썼고 밀리의 서재 '기기괴괴 공모전'에 응모했던 작품이다. 본래는 다른 장편에 나오는 안타고니스트(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의 전사 격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알아낼 리 없는데」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된 건지 시간순으로 정리하려면 2022년 9월까지 거슬러 가야 한다.


2022년 11월 ‘메가히트유’라는 웹툰 시나리오 공모에 「당신은 거기 있었어요」라는 작품을 지원했다. 1차는 당선되었지만 아쉽게도 2차에서 떨어졌다.


같은 작품을 2023년 1월 SBS 드라마 공모전에 드라마 버전으로 지원했다. 또 떨어졌다.


그런데도 2023년 3월 '기기괴괴 공모전' 공고를 보니까 또 손이 근질근질했다.


원래는 「당신은 거기 있었어요」라는 작품에 거의 마지막 에피소드, 혹은 외전으로 넣으려 했던 이야기를 단편소설 「알아낼 리 없는데」로 만들어 제출했다. 그리고 역시 떨어졌다.


그런데 하필 [단편 챌린지]의 키워드 상당수가 이 작품과 맞아떨어졌다.


고양이 ‘저주’를 이용해 살인 실험을 하고 나무 ‘귀신’에게 시달리는 ‘살인마’ 이야기니까. ㅎㅎ


마감 3분 전에 [단편 챌린지]에 제출했다. 윤색하느라 다른 작품들을 볼 새가 없어 감평을 올리지 못했기에 심사 기준에는 부합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말 즐거웠다.


어떤 방식으로든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세상에 나오도록 보듬는 건 정말 즐거운 경험이다. 시간에 쫓겨 혹독했던 경험도 지나고 나면 그저 행복한 기억이 된다. 만약 그 이야기가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미숙하고 처음 만든 요리처럼 내놓기 부끄러운 상태였다면 그걸 좀 더 성숙하게 만드는 과정은 정말 짜릿하다.


소재가 어두운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자격 요건상 줄였지만, 글자 수를 줄이는 건 정말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 2/5 가량을 날려야 했기 때문에 과감하게 줄여야 했다. 살려둔 부분도 정말 필요한 부분만 간결하게 압축해야 했다. 줄일 때는 왠지 아까운 거 같더니 해놓고 보니 오히려 작가인 나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확연히 줄었고 메타포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명확해졌다.


소규모 공모전이었지만 주최자가 심사평을 정말 꼼꼼히 써주었다.


정성스러운 심사평을 읽고 몇 가지 깨달은 게 있었다.


나는 글을 잘 쓰고 싶다. 정말 간절히 간절히 잘 쓰고 싶다.


이 욕망이 글을 무겁게 만든다. 힘이 너무 실리는 것이다. ‘강’이 제대로 살아나려면 ‘약’이 있어야 하는데 모든 부분에 힘이 실려 ‘강’이 돋보이지 않는다. 「알아낼 리 없는데」는 특히 주인공이 프로파일러에게 하는 독백으로만 된 소설이라 더 힘이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외전의 주인공은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외전이라는 말 자체가 본편이 있다는 뜻 아닌가. 따라서 본편에서 억지로 떼어 놓는다고 독립이 되는 게 아니었다.


이수정 범죄심리학자님이 쓰신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라는 책이 책 제목부터 서늘한 이유는 사이코패스가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아낼 리 없는데」의 주인공은 성인이 되고부터 공감할 만한 '일상'이 없었다는 걸 심사평을 읽고 깨달았다. 그 이유는 사실 그가 주인공이 아니라 어느 장편의 서브캐릭터였기 때문인 것 같다.


그저 어린 시절 자라난 배경을 덧붙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장편의 서브캐릭터였을 때는 '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해도 될까? 그에게 서사를 너무 부여하게 되면 자칫 독자가 악에게 친밀감이나 동정, 동경을 품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질문과 '그래도 극 중 인물에게는 그만의 당위성이 있는 게 아닐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그래도 서사를 너무 많이 부여하지 말자는 결론만을 내렸다. 그것은 작가 아노의 선택보다는 자연인 아노의 선택에 가까웠다.


안타고니스트가 반드시 악인과 동의어는 아니기에 서사를 부여하지 않겠다는 결정이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게 나의 최선이었다. 어설프게 인간사를 다 이해하는 척 하기보다 솔직한 글이 더 나으니까.


장편에서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가 주인공이 아니라서.


하지만 단편에서는 그가 주인공이어야 했는데 그 차이를 인식하지 못했다. 인물의 전사는 늘리고 소설의 길이는 줄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의 「알아낼 리 없는데」 주인공은 개연성보다는 인물상만 남아버렸다.


그 외의 이 작품의 장점과 단점은 아래의 심사평 링크에 담겨 있다.


https://blog.naver.com/sngnovel/223635886039


문제는 알아냈는데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는 공모전 심사평을 받고도 깨닫지 못했다.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지적해 준 Copilot의 피드백은 뒤에 올 에피소드에서 다룰 예정이다.


애정하는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본편 격인 「당신은 거기 있었어요」가 범죄식물학을 다루는 소설이라 메인 테마를 고양이의 저주인 척하는 ‘불타는 나무귀신의 저주’로 잡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2 「알아낼 리 없는데」 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