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바할라 나」 12화 _ 미드도 아니고…

신의 뜻대로

by 아노 Art Nomad

7.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이게 지금 뭐 미드도 아니고.」


수지를 잃은 지 한 달 반. 민수는 많이 수척해졌다.


수척해진 민수가 아무리 진지하게 말을 해도 김영사에게서 처음 나온 말은 ‘아니,’였다. 뭐든 말머리에 ‘아니,’라고 덧붙이는 한국 사람이 많다는 걸, 민수는 수지를 잃고 처음 알았다. 민수는 매번 ‘아니,’로 시작할 줄 알면서도 다시 잡을 동아줄이 영사관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만 잘 봐주세요. 실종된 아이들 이름이요,」

「예, 저도 잘 보고 있어요. 수지, 마리, 루이, 시온, 테오, 사라, 주안, 안나, 요한, 유진, 조단, 제인 이게 어쨌다고요.」

「두 글자잖아요. 한국어로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이름들이잖아요.」

「장 사장님, 스펠이 다르잖아요! 스펠이! 보세요, 루이는요 L. u. i 알파벳 세 글자고요, 유진은요 E. u. g… 이다음이 뭐더라, i인가 e인가 아무튼 알파벳이 여섯 개라고요.」

「이름 글자 수만 이상한 게 아니에요. 얘네 거의 다 코피노예요. 얘네 한국 사람이라고요.」

「아니 그건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서류가 없으면 피가 한국 피여도 한국 사람이 아니라니까요.」


민수의 손이 미묘하게 떨렸다. 무릎은 이미 자리에서 반쯤 나와 있었다. 무릎이라도 꿇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김영사에게 끌려다닐 뿐이라는 것도 잘 알았다. 이미 김영사에게 거액의 뒷돈을 댔다. 이제 더는 빌릴 곳도 없었었다. 하지만 수사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그러지 마시고, 탐문 조사라도 어떻게…」

「아니이―, 장 사장님, 돈 많아요? 요새 정원가든 열지도 않는다는 소문이 있던데. 여기 경찰 애들은요, 피해자가 수사 지원금을 대지 않으면, 안 움직여요. 몇 년 살아보니 장 사장님도 아시잖아요. 이게 제가 하기 싫다는 게 아니에요, 어쩔 수 없다는 거죠.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인프라가 없는데 어떡해요. 아, 뭐 또 그러니까 새 출발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여기로 몰려드는 거 아니겠어요, 경찰이 부실하니까. 장 사장님도 마찬가지잖아요. 그… 수지가 없어져서 안타까운 건 알겠는데요…」


민수는 머리 꼭대기에 피가 몰리는 걸 느꼈다. 믿는 이에게 연대 보증을 잘못 서서 사기꾼으로 몰렸을 때도, 전과 딱지 붙이고 도망치듯 필리핀으로 넘어왔을 때도 나오지 않았던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거친 숨소리만 오갈 뿐 아무도 운을 떼지 않았다.


「큼, 거…」


그때껏 잠자코 듣고 있던 코리안데스크의 이 모 경감이 목을 가다듬었다.


「공조 요청, 해봅시다. 이쪽 경찰 수사 협조 요청도 하고, 국내에서 지원팀도 더 불러오고.」

「아니, 아직 시신이 나온 것도 아니고 용의자 특정도 못 했는데 무슨 수로요.」

「그건 사실 영사님 소관 아니지 않습니까. 지원요청 서류나 미리 써놔요. 일단 탐문해볼 테니까.」

「하이, 참… 경감님도. 거 어린네 하나 없어진 거 가지고….」

「김영사님, 앙헬레스 지겹지 않아요? 마닐라 가셔야죠. 이왕 파견 나온 거 저도 특진이나 좀 하게요.」

「그러다 아무 일 아니면 어쩌시려고요.」

「필리핀에 범죄가 뭐 이것만은 아니잖아요. 수사해 보다 안 나오면 대충 사기 친 놈 몇 잡든가, 아니면 국제 수용소에 있는 애들 몇 이송해 가면 되죠.」


뭐가 됐든 한국의 지원을 끌어들일 빌미만 있으면 된다. 유괴가 진짜든 아니든, 수사 지원만 들어오면 실적 올릴만한 건수는 얼마든지 있다. 대충 이런 말이었다.


김영사는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어렵게 승낙한다는 듯 거드름을 피웠다.


「… 뭐 정 그러시면 어쩔 수 없는 거죠, 뭐.」

「뭐가 됐든 우물이라도 파봅시다. 물이 나오나.」


얼마 안 가 수지가 TV에 나왔다. 국민 방송 ABC- CBN에 실종 아동 찾기 프로그램이었다.


범인을 특정할 단서 하나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수지 얼굴이 노출돼도 괜찮은 건지, 괜히 범인만 유리한 것은 아닌지. 아니, 아니지. 김영사를 의심하면 안되지. 그가 유일한 희망인데…


민수는 판단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8.


전단지를 한 움큼 쥔 민수는 귀를 파고드는 EDM 음악 소리에 속이 메슥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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