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뜻대로
한국 감옥에서 살려고 살인을 관리해 왔다는 다윗의 말에 안젤라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들큼한 피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빙고! 그런데 여기는 필리핀이잖아요. 웬만한 사이즈로는 국제수사고 검거고 뭐 이런 각이 안 나오는 거거든. 그래서 한 삼백쯤 필요했어요, 제물이. 이백 가지고는 택도 없더라고. 숫자 못 채우고 여기 애들한테 잡힐까 봐 조마조마했다니까요? 뭐, 걱정할까 봐서 하는 말인데 한국에는 사형제도가 없어요. 그러니까 제 걱정은 너무 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개새끼….」
「욕도 하실 줄 알았어요? 음… 민수 형님한테는 고맙죠. 제가 아무리 많이 죽였어도 인터폴 뜬다는 게 쉽지 않은 거거든요. 이렇게나 많이 죽였는데 안 잡히면 어쩌나… 걱정했다고요. 제가 진짜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애들까지 그렇게 만든 건 정말 유감이지만 어찌 보면 그 애들도 그게 나을 거예요. 제가 코피노로 살아봐서 아는데요, 살기 개 더러워요. 수지는 천국에 갔을 거예요.」
안젤라는 이제 한계에 달했다. 그녀는 발버둥 치며 소리, 소리를 질렀다.
「죽여버릴 거야! 너 이 개새끼, 죽여버릴 거라고!」
「그렇게 감정적으로 생각할 게 아니에요, 형수님. 결혼한 다음에 애 데리고 한국 들어가 봤어요? 사람 취급 못 받아요. 그렇다고 여기 죽치면 뭐 달라지나요? 사람을 벌레 보듯 하는 메스티소Mestizo놈들은요, 저들이 가진 권력을 나눌 생각이 없어요. 말로는 우릴 위한다면서 이 나랏돈이란 돈은 다 끌어가는 놈들은요, 어떻죠? 중국 놈, 일본 놈, 미국 놈, 한국 놈 아주 차고 넘쳤어요. 그러니까 우리 같은 사람은요, 이게 최선이에요. 이게 그나마 최선이라고요. 나는요, 감옥에서 돈도 모을 거고 나가면 직업도 갖고 한국 여자도 만날 거예요. 그러니까 형수님이 희생을 좀 해주세요, 아무한테나 적선하지 말고.」
다윗이 둔기를 들어 안젤라를 내리치려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둔기를 든 채 황망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안젤라의 얼굴은 초연했다. 그녀의 입가에는 비웃음마저 어렸다.
「그간 고생이 많았네. 한국인에게는 성실의 피가 흐른다더니. 과연 그런가 봐. 그런데 말이야, 네 피의 반은 필리핀의 느긋함을 닮았거든.」
다윗의 결박은 그리 야무지지 못했다. 발버둥 치던 사이 손목은 어느새 느슨해져 안젤라의 손이 자유로워졌다. 다윗은 순간 다급했고 도끼를 아무렇게나 내리찍었다. 안젤라는 가까스로 몸을 피했지만, 도망치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다윗의 도끼는 나무뿌리에 비스듬히 박혀 빠지지 않았다. 안젤라는 그 틈을 타서 쓰레기 마을 메스티사Mestiza 할머니가 준 호각을 불었다.
그것은 내장이 다 쥐어짜이는 듯한 수지의 비명이었다. 천국으로 인도한다며 사기 치는 악마를 본 에이미의 괴성이었고, 입에 걸레를 문 노친네의 검은 입이 뱉는 악다귀였다. 다윗은 재빨리 안젤라를 덮쳐 머리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안젤라는 빠져나가려 안간힘을 쓰면서 데스휘슬을 놓치지 않았다.
사라, 유진, 안나, 요한, 파올라, 이자벨라, 가브리엘라, 산다라, 크리스티나, 마리… 그리고 수지.
원혼의 소리는 사람의 소리보다 멀리 울렸다.
타앙!
총소리를 들은 다윗의 얼굴은 희열로 가득했다. 그의 계획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다윗은 아름다운 피날레를 위해 철저하게 연기했다. 총소리가 들리자마자 바로 무릎을 꿇고 손을 들었다. 곧 한국 경찰이 올 것이다. 그의 간절한 믿음이 보답을 받을 것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Put your hands up, bitch! (손 들어, 이 새끼야!)」
하지만 밀림 속에서 다가오는 자들은 필리핀 경찰이었다.
인터폴의 협약에 의하면 본국은 체포된 범인을 넘겨받을 수 있을 뿐, 체포는 어디까지나 현지 경찰의 권한이다. 그래서 코리안 데스크 이모 경감은 앙헬레스 경찰 국장을 꼬드겼다.
국제 범죄를 도우면 유명세를 타게 된다, 어쩌면 한국 뉴스에도 나올지 모른다. 그래, 아주 어쩌면.
한국 TV라는 말이 앙헬레스 경찰 국장의 그 둔한 엉덩이를 움직였다. 그야말로 앙헬레스 경찰이 총동원되었다.
민수는 총기를 소지하지 않고 후방에 남아 있는 조건으로 여기까지 함께 왔다. 안젤라의 데스 휘슬을 따라왔지만, 그는 그녀를 발견하고도 불안했다. 필리핀 경찰이 어떻게 대응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리고 민수의 직감은 불행히도 적중했다.
총성은 다윗이 실망할 겨를도 주지 않았다. 필리핀 경찰의 장총은 저격용 보다는 난사용이었다.
탕! 타탕! 탕탕탕탕탕 타앙—!
민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안젤라 쪽으로 뛰어들었다.
11.
필리핀 루손 팜팡가주 앙헬레스에 있는 「정원 가든」에는 오늘도 손님이 가득 차 있다. 여전히 글자가 어긋맞은 간판과 색이 다 바랜 천막이 무색하게도 근처 식당 중에 가장 빠르고 맛있는 집으로 알려진 탓이었다.
안젤라는 갓난쟁이에게 젖을 물리느라 일을 돕지 못했다. 하지만 직원들에게 연신 조심조심하라고 일렀다. 조심조심하라고 일렀을 뿐인데 직원들은 더 정확하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녀를 두고 한인타운 사람들은 ‘그래도 민수가 처복이 있었네.’ 하고 낮게 수군거렸다.
수지를 찾아 헤매던 무렵, 안젤라의 태중에는 아기 천사가 자라고 있었다. 남편 민수는 그녀를 구하고 끝내 수지의 곁으로 가버렸다. 안젤라는 그 아기 천사에게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못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수지. 내 사랑하는 아가.
베이비 수지는 이제 갓 백일을 넘겼다. 민수가 떠나간 지도 벌써 1년 가까이 되었다. 그래도 안젤라는 여전히 베이비 수지에게 아빠의 이름을 가르친다.
기억해, 아가야. 장 민자 수자.
이게 네 아버지의 이름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