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바할라 나」 14화 _ 한국에서 살려면…

신의 뜻대로

by 아노 Art Nomad

10.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오―우― 하사-」


안개가 자욱한 딸락Tarlac 시티, 모나스테리오Monasterio 성당 근처에는 성당으로 오르는 외길 외에는 모두 짙은 녹음이 깔려있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그 옆으로는 야자나무 잎이 빽빽하게 늘어져 있는 곳. 쑤아아아아―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 소리, 물안개와 숲 안개가 어우러져 만들어 낸 무지개는 숲 전체를 굽어보는 거대한 예수상과 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지상낙원을 만들어 냈다.


대나무, 높은 습도, 야자나무, 까무잡잡한 피부들, 물거품, 알록달록 무지개, 하얗고 수염이 덥수룩한 앵슨로색슨 예수.


이 아이러닉한 풍경 속에서도 가장 아이러닉한 것은, 단연 폭포와 절벽으로 고립된 숲에서 메아리치는 애국가였다.


「미친 호로 새끼! 야, 이 씨불놈아! 」


성철의 입에서 나온 것은 욕이라기보단 악다구니라 해야 알맞았다. 하지만 고래고래 소리치고 악다구니만 쓸 뿐, 반쯤 약에 취해 흔들리는 몸뚱이로는 꽁꽁 매인 매듭을 풀어낼 재간이 없었다.


「욕 참 찰지게 하시네요, 형님.」


애국가를 부르며 에이미의 팔을 썰고 있던 다윗은 윗입술에 튀긴 피를 혀로 살짝 훑고 콧물을 들이키며 말했다.


「어차피 시간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실컷 하세요.」


다윗은 에이미의 등에 올라타 앉았다. 생살이 찢긴 에이미의 팔 근육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혼절해 버렸다.


「이런 빌어 처 먹을 필리핀 새끼가, 나, 나한테 왜, 왜? 엉? 왜 다들 나한테 그러냐고!」

「제가 원래 남자는 머릿수 채우기가 힘들어서 잘 안 죽이는데, 형님은요, 입이 너무 걸어요. 그런 거, 걸레 씹었다고 하는 거죠?」


다윗의 호흡은 거칠었다. 뼈까지 썰려니 잘 썰리지 않는 에이미의 팔과 씨름하는 중이었다.


「아 씨, 더럽게 질기네.」


안젤라는 기절하지 않으려고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지만, 눈앞에 광경에 정신을 놓칠 지경이었다. 안젤라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마 나민, 수마살랑잇 까…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


다윗은 막 썰은 에이미의 팔로 머리를 긁적이며 기가 찬다는 듯 말했다.


「하 참. 아니 왜 막판에 다들 주기도문을 외는지 모르겠네. 있잖아요, 형수님. 한국말 알아듣죠? 잘 들어요. 구원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아요, 제가 지금 이렇게 천국으로 보내드리고 있잖아요. 진짜 어려운 건 살아서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고요, 예? 아시겠어요?」


짜증이 섞인 다윗의 고함은 웅장하게 울리는 폭포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공명했다.


「거의 다 왔어요, 여러분. 천국으로 올라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회개나 하시죠.」


다윗은 새까맣게 매니큐어 칠이 된 에이미의 손을 한성철의 머리에 얹었다. 잘린 팔에서 솟아나는 선홍의 피가 에이미의 팔을 타고 내려와 성철의 눈으로, 입으로 가득 흘러내렸다. 한성철은 어푸거리며 다급하게 외쳤다.


「얼마, 얼마가 필요해, 엉?」


그 말은 다윗에게서 일말의 자비심마저 지우는 소리였다. 다윗은 성철의 머리 위에 곱게 얹었던 에이미의 팔로 그를 가르치며 쏘아붙였다.


「아이 썅, 진짜. 그거 형님 돈도 아니잖아요! 있잖아요, 형님. 형님 마누라는 49억 가졌을 리도 없고 형님 가진 거 다 팔고 내장 탈탈 털어도 49억 안 나와요. 나는요, 내 인생에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빠만 찾으면, 국적을 얻으면, 군대만 갔다 오면! 한국에서 부자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고요. 근데요, 요즘 한국에서 부자 소리 들으려면 49억쯤 있어야 한 대요. 내 아빠가 엄마를 따먹은 루손 팜팡가주 앙헬레스에서는 평생 이천만 원 만져보는 게 소원인데. 국적에 사인만 하고 얼굴 한 번 안 비친 아빠의 나라에서는 49억이 있어야 한다고요!」


그는 마지막 고함을 지르며 둔기로 한성철의 머리를 내리쳤다.


한성철이 쓰러지는 걸 보고 잠자코 듣고 있던 안젤라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뭐요, 형수님.」

「그래서 이 사람들의 죽음이랑 그 돈이 무슨 상관이냐고.」

「하 참. 머리가 나빠요? 질문이 핀트가 나갔지만 지릴 거 같은 얼굴로 용기 내서 물어봤으니까 대답해 줄게요.」


다윗은 에이미의 팔을 내던져 버렸다. 그러곤 안젤라의 어깨를 잡아채 그녀의 고개 방향을 돌렸다. 힘이 한쪽으로 쏠려 바닥에 짓이긴 안젤라의 왼쪽 무릎에는 피가 번졌다.


「저게 뭔지 알죠?」

「라이즌 크라이스트…」

「뭐든 간절히 빌면 들어준다는 기적의 예수상이죠. 나는요, 아주 성실히 살인을 관리해 왔어요. 한 스무 명쯤 하늘로 보내고 나면 한 번씩 찾아가 속죄했죠. 지금까지 한 열댓 번 갔나? 그러니까 이제 피날레가 가까워져 온 거예요.」


안젤라는 질린다는 듯 눈을 감았다 뜨고는 나직이 바할라 나Bahala Na라고 읊조렸다.


「아니, 아직도 바할라 나Bahala Na라니. 형수님, 하늘은요,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거예요. 속인주의. 이런 말 들어봤어요? 한국인 신랑이랑 살아도 아마 처음 들어봤겠죠. 바할라 나Bahala Na나 찾는 걸 보니, 들을 짓을 안 해봤을 수도 있고. 뭐, 사람마다 절박함의 크기가 다를 수도 있는 거니까. 그니까 한국인은 한국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 뭐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감옥에, 감옥에 들어가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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