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아앙' 엔터테인먼트의 서막
으아아아아악―!
원장은 체면도 잊고 비명을 질렀다. 밀려오는 예약에 마치 자동판매기처럼 앞 트임, 뒤트임, 쌍꺼풀 수술을 완벽하게 해내던 그는 밤이면 밀려오는 권태로움에 위스키를 퍼부었고 그 덕에 부정맥을 얻었다. 수술을 집도할 땐 심장이 느리게 뛰는 서맥(徐脈) 증상이 왔고 긴장이 풀리고 술을 한 잔 들이켰을 때 심박수가 분단 200회 이상을 웃도는 빈맥(頻脈) 증상이 왔다. 이번에는 확실히 빈맥(頻脈)이었다.
원장의 난데없는 비명에 상담실장이 제일 먼저 달려왔다.
문을 벌컥 열어젖힌 그녀의 시야엔 이런 모습이 들어왔다. 얼굴이 파랗게 질려 숨 가쁘게 호흡하는 원장과 그를 두고 네 팔을 허우적대는 나경.
「끼아 아악! 괴물이야!」
연달아 병원을 울리는 비명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상담실장이 가리키는 괴물은 바로 나경이었다.
나경은 경황이 없어 핸드백만 챙기고 원장실을 재빨리 빠져나갔다. 한 팔로는 얼굴을 가리고 다른 팔로는 어깨에 맨 핸드백을 부여잡고 나머지 두 팔은 허리춤에 공손히 둔 그녀를 보고 선뜻 그 앞을 막아서려는 사람은 없었다. 닿지도 않았는데 그대로 졸도해 버린 사람은 있었지만.
병원을 나선 나경은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은 안 될 거 같고, 규모도 작고 도망갈 곳도 없는 버스는 더욱 안 될 거 같았다. 택시를 잡아타려고 앱을 켰지만, 그마저도 최소 30분 거리에 있다는 말에 나경은 자신이 번화가에 나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안 되겠다 싶어 지나가는 택시라도 잡으려고 팔을 들어 올린 순간, 야속한 오른쪽 두 팔이 동시에 올라갔다.
우연히 그 꼴을 본 세 번째 차선 운전자는 브레이크에서 발을 뗀 채, 나경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고 그의 아우디는 바로 앞의 제네시스 GV80을 들이박았다. 제네시스 GV80의 운전자는 난데없는 사고에 화가 나서 아우디 운전자에게 따지려다가 나경을 발견하곤 그대로 주저앉았다. 안타깝게도 주저앉은 제네시스 GV80 운전자의 손을 옆 차선을 지나가던 페라리 로마가 짓이겼고, 제네시스 GV80 운전자의 비명이 압구정역 앞 6차선 도로를 메웠다.
놀란 페라리 로마는 그 자리에 급정거하여 제네시스 GV80 운전자의 손은 다시 페라리 로마의 뒷바퀴에 깔렸다. 급정거한 페라리 로마 덕에 뒤따라오던 맥라렌, 마이바흐, 람보르기니, 애스턴 마틴, 부가티가 차례대로 충돌 사고를 내었다.
그렇게 나경의 택시 잡기 소동은 럭셔리카 다섯 대, 슈퍼카 열일곱 대를 해 먹고 끝났다.
나경은 눈앞의 손실 규모 약 300억대의 교통사고를 보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저 다물어지지 않는 입만 네 손으로 막고 있었다.
이윽고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경찰은 다짜고짜 테이저건부터 쐈다. 다완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경찰차의 뒷좌석에서 나경은 생각했다.
신당에서 나오지 말걸. 뭐 하러 그때 그 명함을 받았을까. 영화가 뭐라고.
어차피 단역인데. 어차피 괴물 역인데.
무슨 생각으로 일면식도 없는 남자를 믿었을까.
그가 정말 팔 네 개짜리 인생을 바꿔주리라고.
3.
K - 크리처 엔터테인먼트 ‘크아앙’의 대표 오영진은 시총 1조 300억이 찍힌 오늘 자 기업정보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여기까지는 어떻게든 왔다. 그런데 앞으로도 이렇게 가능한가?
그는 한여름에 땀띠 날 것만 같은 최고급 가죽 의자에 기대어 눈을 지그시 감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크아앙’의 시작을 알리는 그 결정적인 만남에 대해.
때는 2000년대 초반이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아쌀한 날들이었다. A급 스타 하나를 데리고 다니며 온갖 영화, 드라마, 광고를 찍으러 다녔던 시절. 인사를 한 날보다 인사를 받았던 날들이 더 많았던 시절이었다.
영진이 데리고 다니는 A급 스타는 하필이면 액션을 잘했고, 하필이면 액션 각도가 기깔났다. 같은 남자가 봐도 침을 흘리고 반할 정도였으니까.
대한민국 액션 영화는 90년대 말미의 「쉬리」,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기점으로 다채로운 시도를 했다. 그만큼 관객들도 액션 장르에 대한 요구가 나날이 다양해지고 강도 높아졌다. 하지만 연출적인 욕심만큼이나 안전장치의 발전이 따오질 못해 촬영 환경은 늘 열악했다.
그렇다고 아직 어린 배우가 이거 저거 다 거절해 가며 작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욱이 해내면 확 뜰 게 뻔한 그 작품은 도저히 놓칠 수가 없었다.
문제가 되는 액션 장면은 바로 이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