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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노 Art Nomad Dec 18. 2024

#36 「This Is Water」 2화

죽은 사람이 어떻게 기분을 느껴요?


「믿음이 없어진 너희가 나를 떠나라.」


은혜의 귀로 소리가 공명해 왔다. 물의 찰박임으로 인해 소리는 웅웅 거리며 뇌를 울리는 것 같았다. 은혜는 그 소리를 들은 것인지, 기억하는 것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피오 오오– 퍼엉! 피오 오오 퍼엉, 푸슉푸슉푸슉.     


멀리서 폭죽이 장중한 소리를 내며 터졌다. 한낮의 폭죽은 빛의 반사로 퍼져나가는 모습이 흐릿했지만, 일대의 모든 소리를 덮기에는 충분했다. 형형색색의 새들이 푸드덕 날아오르고 실업 좀비들의 텅 빈 눈은 일순간 모두 그쪽으로 향했다. 중년의 남자는 그 틈을 타 달아나려고 했다. 남자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린 무리는 허여멀겋게 눈자위를 뒤집고 그를 뒤쫓았다.      


펑펑펑! 푸슈슉 푸슉푸슉.     


또다시 퍼엉하고 폭죽이 터지고 ‘위 위시 유어 메리 크리스마스’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개 짖는 소리도 여전하고 신혼부부 무리와 실업 좀비의 무리가 엉켰다. 땅은 날아오른 새들의 그림자로 검은 얼룩이 졌다. 


타앙!      


이번에는 ‘퍼엉!’이 아니라 분명 ‘타앙-!’이었다.      


은혜가 떠 있는 수영장은 붉게 물들어 가고 리볼버 한 자루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은혜의 눈이 붉은 막으로 덮이고 온 세상이 붉어졌다.           



2.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그럴 리가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보면 모르시겠어요? 제가 죽었잖아요.」


상담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잠자코 있었다. 


「근데 제가 보이시는 걸 보니 선생님도 죽었나 봐요.」

「은혜 씨가 죽었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있었나요?」

「아뇨,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제게 뭐라고 하든 신경 안 써요.」   

  

상담사는 은혜가 더 할 말이 있을까 싶어 잠시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요즘도 매일 필리핀에 관한 기사를 검색하시나요?」

「아뇨, 요즘은 제가 죽어서 매일 하기 어렵더라고요.」 

「가장 최근에 본 기사는 어떤 것이었나요?」    

 

은혜는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초록 창 상위 포스트에 있던 것인데, 보수 발언으로 연일 화제가 된 여성 의원 사진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기억이 잘 나지 않으시면 억지로 생각해 내실 필요는 없어요」

「… 미친, 미친년이었어요」     


상담사는 순간 놀랐다. 은혜는 더 이상 두리번거리지도 불안해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초점이 뚜렷한 눈으로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거기 원수라도 있는 것처럼.      


「네?」

「왜 그 있잖아요, 예쁜 살구였는데 까보니 개살구였다는 그런 사람.」     


상담사는 은혜를 자극하지 않으려 반응을 크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은혜는 상담사가 눈을 조금 크게 뜬 것 만으로 자신에게 동조한다고 생각했다. 은혜의 말은 점점 빨라졌고 소리도 커졌다.      


「백옥 같은 피부에, 목에 주름 하나 없더라고요. 목에는 알이 굵은 진주 목걸이를 했던데 그런 건 얼마나 할까요? 아니 무슨 국회의원이 오진희 의원 에스테틱, 오진희 의원 네일숍 이런 연관검색어만 있던데. 그 사람이 뭐랬냐 면요,」     


‘박통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우리는 필리핀보다 못한 세상에서 살았을 것.’


은혜는 그 후로도 연신 입김을 뿜어가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고급 네일숍의 언니가 잠깐 졸다가 남긴 발톱 끝의 작은 각질 하나 필리핀 땅에 대어보지 못했을 자가. 어쩌다 그 땅에 발가락 정도는 닿았다고 해도 명석하고 반듯한 얼굴 아래 걸린 햇빛을 반사해 유난히 더 쓸모없어 보이는 진주 목걸이를 보고 하얗다 못해 핏대가 비치는 매끈한 손에 도움을 구하는 필리핀의 아이들을 경멸하고 비명이나 질렀을 게 뻔한 그런 자가 감히, 죽어 늘어진 그림자를 칭송하기 위해 한 나라 전체의 경제를 비웃다니. 그런 걸 애국심이라 생각하다니.」      


은혜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매일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만족할 그녀가 역겹다고 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은혜는 곧 의기소침해졌다.      


「타인의 비극을 우롱하는 사람에게는 나는 그럴 리 없다는 심리가 깔려있는 거 아닐까요? 그 사람… 대세잖아요. 그런 사람이 나 같은 사람도 이해해 줄까요?」     


은혜는 그 후로도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정보를 계속 나열했다.      


아시아의 노벨상 막사이사이 상에 대해서 아느냐.      


50년 대의 필리핀 남성들은 일본으로 기생관광을 다녔다, 그러던 것이 70~80년대엔 역으로 일본이 필리핀으로 기생관광에 나섰고 80년대 후반부터 한국이 필리핀 기생관광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상담사는 은혜에게 그 기사를 보고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물었다. 혹은 어떤 체험을 했는지도.     


「아직 이해를 못 하셨나 본데, 죽은 사람이 어떻게 기분을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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